빈오두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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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그레이 아울 (지식의풍경,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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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그레이 아울은, 1888년에 태어났다. 1차대전을 겪은 후 캐나다 땅에서 방황하다가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황야의 생활을 경험한다. 이제 그는 본명 아키 벨러니를 버리고 '밤에 다니는 사람 - 그레이 아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이 시기 이후 만난 모든 이들에게 그는 영국인 아버지와 캐나다 인디언 어머니 사이에서 자기가 태어났다고 소개했는데, 사후 알고보니 토박이 영국인이었다는 게 밝혀져 다들 깜딱 놀랬댄다.
그는 황야의 덫사냥꾼으로 살아가다가, 어느날 그 생활을 포기한다. 그리고 캐나다 북부의 황야와 비버들, 작은 동물들을 지켜주고 그들과 함께 사는 삶을 택한다. 이 책의 글들은 1930년 중반에 쓰여졌다. 그와 그의 비버들이 미국과 유럽에 널리 알려지면서 활발한 강연과 저술을 병행하던 시기에 쓴 책이다.  

책의 1부는 황야의 삶에 대한 단편들이 담겨 있다. 황야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어두운 오두막 안에서 불을 바라볼 때 문득 일렁이는 환상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몇 개 단편들은 인디언에 대한 글이었는데 '나무'라는 단편이 난 정말 너무 좋았다. 전설 속의 그것같은, 신화적인 느낌이었다.
그레이 아울은 캐나다 국립공원관리 관련한 공무원이었던 것 같다. 단지 황야를 헤매이며 비버와 여러 동물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던 그에게, 캐나다 정부가 국립공원 관련한 직업을 제안해준 것 같다. 그래서 덫사냥꾼이길 포기해 생계를 이어나가기 힘들었던 그레이 아울은 돈 걱정 없이 황야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레이 아울은, 보통 그런 사람 치고는 드물게도, 자국(캐나다) 정부를 대체로 칭찬해준다. 확실히 칭찬해줄만하다. 그 정부의 판단에 따라 캐나다 넓은 지역에 펼쳐진 황야들의 운명도 결정되었을 테니까.
2부에 실려 있는 글들은 대체로 그 비버 가족과 자신의 생활을 묘사한다. 아주 흥미롭다. 그레이 아울은 두 마리 비버 부부와 함께 살았다. 자기 오두막 안에 비버들의 오두막이 세워져 있었다. 이 작은 동물은 굉장히 영리하고, 목소리도 인간의 성대와 무척 유사해서 조금 익숙해지면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지도 알아들을 수 있다. 

이 우주를 지배하는 모든 자연 법칙이나 우리가 아는 자연 법칙 중에는, 때로는 아주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는 듯하지만 결국에는 꼭 지켜지는 법칙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보상의 법칙이다. 그 법칙은 내게도 그대로 적용되어 내게 일상의 형벌을 내리고 있다. 자연의 명백한 섭리를 깨고 수많은 야생 동물의 의식에서 그들의 유일한 안전 장치인 타고난 경계심을 약간 없애는 데 성공함으로써 나는 지금 그들을 보호해 주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밤마다 잠도 못 자고 거의 밤새도록 동물들의 활동 현장을 쉴 새 없이 순찰하다 오전에나 겨우 쉰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비버들도 틀림없이 살아 있을 것이므로, 나는 아마도 천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내 간섭을 속죄하기 위해 이처럼 밤낮이 바뀐 생활을 계속 하게 될 것 같다. (304쪽)

그레이 아울은 저지르기 쉬운 오류를 범하지는 않는다. 그 동물들을 인격화하지 않는다. 동물은 동물들일 뿐이다. 그들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예상외로 영리한 건 사실이다. 자신이 비버들, 다람쥐들, 무스, 작은 동물들을 지켜주는 게 무조건 좋은 일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보호받는 생활 속에서 이 작은 동물들은 본능적인 경계심이 무뎌지고, 그의 보호권을 벗어나는 순간 더 쉽게 죽거나 상처를 입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것 모두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언젠가 죽게 된 이후도 생각해야 할 것이고.
동물 애호, 정말 인류 발달의 리트머스 시험지일 것 같다. 이게 그 사회에서 어느 수준으로 이뤄지고 있느냐 하는 것. 난 사실 장애인들의 생활이 그 사회의 인권 수준을 판가름할 수 있는 가장 적나라한 시험지라고 생각해 왔는데, 인권 자체를 떠나 생명을 어느 정도로 존중하느냐, 인간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시험지가 아닐까 싶다.

동물 애호는 인류 발달의 검증서이다. 동물 애호가 등장하면 다른 것들은 거의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다. 인류 발달의 역사에서 동물 애호는 대개 마지막에 등장한다. 그래서 동물 복지가 인간 활동의 교육 과정에서 정말로 중요한 위치를 맡게 될 즈음이면 다른 사회 복지도 이미 수준 높게 개선되어 있는 것을 흔히 발견할 것이다. 국가가 업적을 평가할 때 동물 복지를 최하위로 두고 있기 때문에 한 나라가 달성한 문화 발달 수준을 동물 복지 정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326쪽)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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