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로니아찬가(세계문학전집46)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문학선
지은이 조지 오웰 (민음사, 2001년)
상세보기

그러게, 왜 '카탈로니아의 비극'이 아니라 '카탈로니아의 찬가'인거지? 읽으면서 내내 생각에 잠겼다.

1930년대 중반 스페인에서 일어난 내전. 모로코 식민지를 관리하던 프랑코 장군이 자국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당시는 유럽에서 파시즘과 나치즘이 점차 대두하던 때였고 소수의 지식인들은 이를 우려하고 있었다. 이 때 마침, 정열의 땅 스페인에서, 민주주와 파시즘의 전면적인 격돌이 일어난 것이다! 헤밍웨이, 조지 오웰, 그밖의 많은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공산당 계열의 '국제 여단'을 통해서건 조지 오웰처럼 자국의 진보정당을 통해서건 스페인으로 향했다.

그는 자국의 독립노동자당 - 스페인의 통일노동자당(스탈린주의자들에게 '트로츠키주의자'라는 무시무시한 낙인이 찍히게 되는)으로 내전에 참전했다. 통일노동자당은 옛부터 바스크 분리주의 운동이 강한 카탈로니아 지방에서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고, 그 지역에서는 가장 강력한 세력인 무정부주의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1937년 중반, 내전이 한창이던 중에, 공산당 계열의 공화국 정부가, 무정부주의자들 및 통일노동자당을 불법화하면서 많은 이들을 투옥시키고, 총살하고, 굶겨 죽이는 것에 그는 분노했다. 그 자신은 운이 좋게도 그 참혹한 현장에서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외국의 온갖 진보 언론들은 공산당 계열의 말만 따라 통일노동자당은 파시즘의 간첩이었다느니 어쩌구 저쩌구, 죽어간 동료를 모욕하는 데 분개했다. 자기보다도 젊은, 오직 민주주의를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스페인으로 온 외국인들마저 '의미없이' 죽어 갔다. 그는 이들의 죽음에 조금이라도 의미를 부여하고자 이 책을 썼을 것이다.

스마일리의 죽음은 내가 쉽게 용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마일리는 용감하고 재능있는 청년이었다. 그는 파시즘과 싸우기 위해 글래스고 대학의 자리를 내팽개쳤다. 또한 내가 목격한 대로, 그는 흠잡을데 없는 용기와 흔쾌함으로 전선에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그런데 저들이 그에게 해준 일이라고는 그를 감옥에 집어넣고 방치된 동물처럼 죽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막대한 인명이 희생되는 대전쟁의 와중에 한 개인의 죽음을 놓고 너무 법석을 떠는 것이 소용없는 일임은 나도 안다. 혼잡한 거리에 비행기가 폭탄 하나만 떨구어도 정치적 박해를 여러 번 가하는 경우보다 더 큰 고통이 생긴다. 그러나 내가 이런 죽음에 화가 나는 것은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투옥이 되고, 그것도 날조된 범죄 혐의도 없이 그저 맹목적이고 어리석은 악의로 인해 투옥이 되고, 혼자 내팽겨진 채 죽어간다는 것 - 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이런 따위의 일이 어떻게 전쟁의 승리를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인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277쪽)

한편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르포이다. 자신이 몸소 전장을 오가며 보고 듣고 총에 맞은 것을 기록했다. 그래서 정말 전장에 서본 사람이 아니면 말할 수 없는 것을 그는 말한다. 특히 아래 부분은, 파시즘에 대항해 함께 싸워왔던 통일사회당(공산당계)과 통일노동자당-무정부주의자 사이에 바르셀로나 시가전이 벌어진 현장을 기록한 것이다.

나도 지붕의 내 위치로 돌아갔다. 역겨움과 격분이 강렬하게 몰려왔다. 이런 사건에 참여하게 되면 미약하나마 스스로 역사를 만드는 셈이 되니 의당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그런 상황에서는 자잘한 물리적 일들이 늘 다른 모든 것을 짓누르기 대문이다. 전투 내내 나는 수백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기자들이 무척이나 그럴듯하게 내놓는 올바른 상황 <분석>이란 것을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내가 주로 생각했던 것은 이 비참한 내분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단지 밤낮으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지붕에 앉아 있는 일의 고생과 권태, 그리고 점점 심각해지는 배고픔뿐이었다. (181쪽)

생각해보라. 대의를 위해 머나먼 스페인 땅까지 갔거만. 같은 편끼리 서로 싸우고 심지어 서로를 죽이고 영국에서 같이 온 자신의 동료마저 억울하게 죽고 만다. 내전에 끝까지 참여하지도 못하고 도망치듯 국경을 벗어 나야만 했던 오웰이, 스페인 내전을 좋게 생각할리 있겠는가? 그러나 그는 대인배다.

일부는 전사하고, 일부는 불구가 되고, 일부는 투옥되었겠지. 바라건대 그들 모두가 여전히 안전하기를. 그들 모두에게 행운이 있기를. 그들이 전쟁에서 이겨 독일인, 러시아인, 이탈리아인 할 것 없이 모든 외국인들을 스페인에서 몰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내 역할에 무력함을 느꼈던 전쟁은 나에게 대체로 나쁜 기억만을 남겼다. 그러나 전쟁이 없었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이런 참사를 잠깐 보았다고 해서 꼭 환멸과 냉소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 경험 전체를 통해 인간의 품위에 대한 나의 믿음은 약해지기는커녕 오히려 강해졌다. (294쪽)

왜 일까? 옮긴이의 말이 가장 정확한 설명인 것 같다.

... 이것은 기본적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가 이제까지 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했을 때 느끼는 해방감과 설레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카탈로니아 찬가' 서두에 나오는 이탈리아인 의용병과의 만남에서도 그런 면이 여실히 들어나는데, 이런 새로운 실험과도 같은 관계를 눈앞에 두고 얼마나 마음이 조마조마했으면 <그에 대한 내 첫인상을 유지하려면 그를 두 번 다시 보면 안 된다>고 말했을까. 이 만남에서부터 시작해서 이 책의 서두에서 서술되고 있는 해방된 바르셀로나의 상황, 그리고 오웰이 거기서 맛본 희열은 나중에 공산당의 행태에서 느낀 실망감과 더불어 오웰의 작가로서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305쪽)

마지막으로 어느 블로거는 오웰의 경험에 대해 '역시 이데올로기란 다 부질없다'라고 말했다. 정확한 오독이고 무지한 발언이다. 이에 대한 답을 겸해, 오웰의 말을 마지막으로 포스트를 마친다!

『동물농장』,「나는 왜 쓰는가」141쪽
우리 시대처럼 소란한 세월을 살면서 이런 문제들을 회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넌센스이다. ...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이 되게 하는 일이었다.
스페인 전쟁과 1936-1937년의 기타 사건들은 정세를 결정적으로 바꿔놓았고 그 이후 나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 1936년 이후 내가 진지하게 쓴 작품들은 그 한 줄 한 줄이 모두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해> 씌어졌다.


Posted by 권고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