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들의대한민국:한국사회,속도·성장·개발의딜레마에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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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우석훈 (웅진지식하우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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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우석훈.
'88만원 세대', 지난 3월 30일의 강연회, 블로그의 포스트들, '샌드위치론은 허구이다', '왜 지구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 실은 그의 해제 등을 읽으면서 나는 이 사람을 참 좋아하게 됐다. 약간 반항아 기질이 있는 건 거리가 먼 관계에선 참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두면 피곤하다. 근데 내가 뭐 가까이 지낼 인연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어쨌든 좋다.  

내 주변의 선배들과 내가 아는 한국 사회의 좌파 지식인을 통틀어서 우석훈씨 같은 사람은 보기 힘들다. 경제학자 중에 유명한 좌파 지식인은 매우 드물다. 그 중에서 글을 잘쓰거나 강연을 잘해 대중적 인기를 얻은 사람은 더더욱. 한국 사회에서 좌파들이 학계, 예술계-특히 영화계, 시민단체 등에 사실상 은폐해 있다고 하는데 학계에서는 주로 사회과학 분야이거나 사학 쪽이지 경제학은 의외로 드문 것 같다. 서울대만 해도 맑스주의 경제학 교수 한 명 임용해 달라고 수십명의 대학원생들, 학부생들이 떼를 썼건만 결국 교수 꼰대들은 지들 꼴리는대로 해버리지 않았는가.

거기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럽에서 유학을 하고 온 젋은 좌파 학자들은 더 더 보기 힘들어졌다. 전부 미국 유학파들이야. 서울대도 그렇대는데 울 학교는 오죽하려는지. 도대체 미국으로, 미국으로 유학가는 행태를 이해할 수가 없다. 훨씬 더 발전한 정치 체제, 학계의 담론, 시민들의 수준, 가장 중요한 학비! 까지. 유럽으로 가지 않을 이유가 뭐냐. 누가 '영어 배우러 가겠지'라고 하던데 순간 완전 허탈해졌다... 그 말이 정답이다. 

어쨌든, 우석훈씨는 이 책에서, 한국 사회의 '건설 미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좀 생뚱맞은 이야기인 것 같지만 여전히 쉽게 쉽게 쓰니까 뭐.

42쪽
1970년대 자전거가 트럭과 경쟁 관계에 있었다면, 지금 돌아온 자전거는 승용차와 경쟁 관계에 있다. 늘 경쟁이라는 건 간단한 게 아니라서 이 사이에서 교묘하게 양쪽을 모두 잡으려는 것들이 있다. 탈것이라면 '떡대'라는 은어로 불리는, 7인승 정도의 SUV가 이런 부류다. "자, 여러분 자전거를 (차에) 싣고 자연으로 떠나시기 바랍니다." 자본의 분리와 결합의 마케팅을 볼 수 있는 한 사례다.
 

51쪽
김훈의 자전거가 자연을 새로운 타자 혹은 '연장된 자아'로 재인식하는 계기였다면, 이재오의 자전거는 "내가 가기 위해서 길을 만들어라" 하는 구시대에 속한 자전거였다. 서울을 비롯한 도시에서 이제 자전거는 자동차의 길을 뺏어서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강력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이 자전거들은 독단적으로 명령하는 구시대에 속한 존재가 아니다. 다가올 생태 시대의 전사들과 같은 자전거들의 게릴라전을, 이재오는 포장도로와 고속도로를 뛰어넘어 운하 옆을 지나가는 도로와 같은 대규모 군단의 행진으로 이해했다. 그의 자전거는 시대에 너무 뒤처진 상징이었다.

52~53쪽
잠깐 커다란 환경 현안 몇 가지를 놓고 우리 사회의 흐름에 대해 생각해보자. 가장 먼저 논란거리가 되었던 것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동강 댐 건설이었고, 그 다음이 새만금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는 약간 규모가 작은 논쟁이긴 했지만 서울 외곽순환도로의 북측 구간에 해당하는 사패산 터널이 있었고, 정권 초기를 온통 뒤흔들었던 전라북도 부안의 방사성폐기물 저장고 사건과 지율 스님으로 상징되는 경부고속철로 사건이 있었다. ...
시대적 상황이라는 관점을 적용해서 감히 지난 세 대통령의 생태적 문제의식 수준을 생각해보면, 제일 수준이 높았던 건 김영삼 대통령이었을 것 같다. 환경청을 환경부로 격상시킨 것도 그가 내린 결정이었지만, 환경 비전이라는 것을 만들어내면서 '공격적'으로 국가정책 틀을 환경 쪽으로 이동시킨 것도 김영삼 시기였다. 한국에서 환경 보존에 대한 의식이 가장 높았던 때는 역설적으로 1991년 3월 벌어진 페놀 사건을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던 몇 년간 이었고, 그 시기가 바로 김영삼 정부 때였다.
김대중 정부 때는 '말로만 하는' 환경 의식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동강 댐 건설 사건은 외형적으로는 환경 사건이지만, 내가 보기에 김대중 대통령이 이해한 동강 사건은 아무래도 '민주주의' 사건에 더 가까웠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기는 '말로도 안 하는' 시대였다고 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회상해보면 그가 대통령이던 시절이 박정희 시절 이상으로 한국 생태계가 '절단' 나는 시절이었다.
그가 물러난 지금 그의 재임 기간동안 발생한 3대 국토 생태 파괴 사건을 거론하자면, 첫째, 농업 포기, 둘째, 골프장 전면화, 셋째, 한미 FTA 추진을 위한 생태 공공성 포기를 꼽을 수 있겠다. 새만금 방조제도 큰 사건이기는 하지만, 역시 더 큰 관점에서 보면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국토 생태 관리의 근간을 뒤흔든 사건은 대부분 노무현이 "직접 챙기겠다" 하며 추진한 사건들이다. 
 

59쪽
새만금 방조제 위에 서면 의식을 가지고 있는 21세기 한국인은 이 시대가 만들어낸 가장 첨예한 미학적 기준 위에서 방황하거나 충돌하거나 때로는 괴로워하게 된다. 이 괴로운 시대의 시험대가 언제 끝나는가? 역사는 끝나는 법이 없으니 이제 청계천을 뒤이어 경부운하 혹은 대운하가 새로운 시험대로 등장했다. 이재오처럼 경부운하를 생각만 하면 뭉클해지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경부운하를 생각하기만 하면 불안해지거나 미안해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81쪽
청계천의 구조상 비가 올 때마다 많은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한다. 하지만 도시의 많은 죽음이 그러하듯이, 이러한 것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청계천은 아름다움이라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경제이성이나 상식, 그런 것보다는 아름다움과 감동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방식이라고 하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사건을 어떻게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의 용어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전기로 모터를 돌려 끌어온 물을 동아일보사 앞에서 시작해서 다시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청계천은 전형적인 도시 조경 사업이다. 물론 도시에서 정서 순화나 미적 휴식을 위해 당연히 할 수 있는 사업이고, 이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식의 사업을 수도만 틀면 나온다고 해서 '수도꼭지'라 부르기도 하고, 임시로 만들어놓은 물길에 물고기를 풀어놓는다고 해서 '어항'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프로젝트에 '생태복원'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는 않는다. .. 비만 오면 도시의 오염 물질이 한꺼번에 청계천으로 흐르고, 당연히 생명체가 살 수 없는 BOD의 피크치가 발생한다. 그러면 죽은 물고기를 걷어내고 또다시 물고기를 방류하는데, 이런 숨바꼭질은 청계천이 제대로 복원되는 날까지 끝없이 반복될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의 어린이들에게 이것이 '자연'이라고 가르칠 것인가? 지금의 그 어린이들이 언젠가 어른이 되어 물질의 순환과정과 물의 흐름을 알게 되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지금 이 순간에 배운 것이 아주 이상한 것이었음을 깨달을 것이다. 
 

89쪽
... 일반적으로 거주 양식에 충분한 돈을 지불하면 환경 문제와 보건 문제가 대체로 해결되거나 완화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단위면적당 최고의 비용을 지불한 한국식 요새형 주택인 주상복합에서는 오히려 비쌀수록 생태, 보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실제로 서울 강남 지역 10세 미만 유아의 아토피 발생률은 세 명 중에 한 명으로 전국 평균에 비하면 괘 높은 편이다. 그런데 이걸 다시 구주택단지와 주상복합단지로 나누어서 접근하면 환상적인 수치가 나올 것이다. ... 낡은 아파트가 초현대식 주상복합으로 바뀌면 인근 병원의 주부와 아이들의 병원 재방 횟수가 엄청나게 늘어간다. 공공 의료보험제도가 아니었다면 인근의 소아과와 여성 클리닉, 그리고 내과병원은 엄청난 돈을 벌 수도 있었을 것이다. 좀 슬픈 일이기는 하지만, 주상복합이라는 새로운 주거 양식이 증가한 시기와 '아토피 비즈니스'라는, 한국에서 가장 각광받는 초고속 성장 사업이 등장한 시기가 대체로 일치하고 공간적으로도 통계적 연관성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
... 이 구조에서 제일 불쌍한 경우는 부자 할아버지를 만나 생애 첫 10년을 주상복합에서 지내는 아이들이다. 이 가련한 아이들의 문제를 '인권' 문제라고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시대 미학, 그것이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다. 물론 우리가 공유하는 2008년 대한민국의 미학은 정상적이거나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미의 세계에서도 만약 '전도'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면, 우리가 공유하는 미학은 전도되고 왜곡된 형태의 것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대한민국만의 주도적인 미학은 '건설 미학'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153쪽
... 이명박을 정치적으로 꺾는다 하더라도, 그 다음에 우리는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선택할 대안은 있는가. 대안을 만들어낼 기반은 있는가.
경제학자인 내가 시대 미학을 고민하는 이유는 바로 이 질문의 끝에 서 있기 때문이다. ... 지금 한국에서 생태 미학은 정형화된 형상이나 미적 문법을 갖추지 못했으며, 스스로 어떤 것이라고 주장할 만한 상황도 되지 못한다. 그러나 건설 미학의 절정기로 되돌아가려는 이명박 대통령과 그 측근들을 생각하면 새로운 양식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 (국민들의) 비판이 정치적 반발 정도에서 그치고 아무런 예술적 정형화 없이 시간이 지나간다면, 사람들의 망각 속에 밀실 안에서 이루어진 몇 가지 결정만으로 조용히 불도저가 조령산맥으로 향할 것이다.
... 인간은 어차피 망각하는 동물이고, 아무리 높고 격양된 감정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런 감정의 굴곡은 사라지고 만다. 그렇기 대문에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들은 반드시 미학적 차원에서 형상회되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다른 방향의 사회가 열리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학자인 나는 지금 한국 사회의 전개 과정을 이끌 열쇠가 바로 예술가들의 손에 쥐여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을 바꾸는 것이 '경제의 힘'이었던 시대를 바꾸는, 그야말로 전격적인 패러다임 전환의 순간에 우리가 서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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