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읽을자유로쟈의책읽기2000-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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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이현우 (현암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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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그의 두번째 책. 책이 처음 나왔을 당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신형철씨의 발문 때문이었다. 발문이니 작가의말 같은 글부터 먼저 읽고 보는 독자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기까지 하는 그의 글, 읽고 나면 슬며시 미소짓게 된다.

"600쪽 밖에 안 된다." 책들의 면면? 한국 소설은 거의 없었던 것 같고, 주로 러시아문학이 몇 권 소개될 뿐, 대부분 철학.역사.인문서 들이다. 그는 하나의 주제를 두고 관련된 책의 목록을 만들어 책을 읽는다. 그래서 이 책과 같이 하나의 주제를 두고 서너 권의 책을 엮어 한 편의 서평을 쓰거나, 서너 편의 서평을 쓸 수 있게 된다.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 그렇게 책을 읽게 될 것 같다. 지금은 너무 두서없이 읽는다.

요컨대, 책을 읽는 게 교양이 아니라 책을 읽지 않는 게 교양이다. 한 권의 책을 읽느라고 다른 열 권의 책을 놓치게 되는 것이 현실인 상황에서 '독서의 기술'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비독서의 전략'이다. 물론 이때의 비독서는 책을 전혀 읽지 않는 '무독서'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비독서란 "무수히 많은 책들 속에서 침몰당하지 않기 위해 그 책들과 체계적으로 관계를 맺고자 하는 하나의 진정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비독서가는 책에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다. 어떤 책이 다른 책들과의 관계 속에 처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책 읽기를 스스로 자제하는 사람, 그가 비독서가다. 45쪽

이 대목을 인용한 이유는 장정일씨의 신간 때문이다. 그 역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책을 읽고 서평을 썼다(<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두 서평가의 생각이 달라서 흥미롭다. 로쟈씨의 경우, 인용된 대목을 보면 알 수 있듯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책과 교양의 범람 속에서 '비독서가'의 태도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는 뉘앙스다. 그 배경에는 방대한 분야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고 싶은, 알고자 읽고자 하는 욕망으로 가득한 로쟈 이현우가 있을 것이다. 장정일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권 한 권들을 꾸준히 부지런히 읽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나'가 바뀌고 세상도 바뀔 수 있다고 말했던 것 같다. 두 사람의 태도는 책을 고르는 방식의 차이에서도 드러난다. 로쟈 이현우씨는 읽기로 마음먹은 책을 사거나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장정일씨는 주로 헌책방에 들러 읽는 것 같다. 헌책방에서 책과 만나는 우연에 기댈 줄 아는 사람은 조금 더 여유롭고 느긋한 사람일 것이다. 재미있게도 저자는 자신이 장정일의 팬이라고 고백한다.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부지런히 읽어 왔고, 80년대 시절 그의 시를 읽으며 신선한 충격에 휩싸였었다고 말한다.

잠언에 밑줄을 긋는 한, 우리나라의 소설 독자들은 아직 소설을 취급할 줄 모른다고 말해야 한다. 확실히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잠언에 밑줄을 치는 소설 독자는 소설 속에서 교훈을 발견하도록 편향된 질 낮은 문학 교육의 희생자들일지도 모른다. 나아가 잠언에 밑줄을 치는 독자는 소설나부랭이를 읽는 일에 긍지를 느끼지 못하고 부끄러워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소설 가운데서 잠언을 발견하고자 하는 안쓰러운 노력은 소설나부랭이를 읽는 소모적인 일을 뜻있게 만들자는 보상심리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장정일의 독서일기5> 161쪽, 243쪽에서 재인용

아래는 읽고 싶다고 생각했던 책들.


르네 마그리트 / 수지 개블릭 지음 / 천수원 옮김 / 시공사 / 2000
뉴캐피털리즘 / 리처드 세넷 지음 / 위즈덤하우스
일본 우익사상의 기원과 종언 / 문학과지성사 / 2009
거꾸로 가는 나라들 / 판카즈 미시라 지음 / 강수정 옮김 / 난장이 / 2009
말의 미학 / 미하일 바흐친 지음 / 길 / 2006
문화의 기원 / 르네 지라르, 김진석 옮김 / 기파랑 / 2006
외투 / 고골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읽고 쓴 글들을 참을성있게 꾸준히 읽어 나갔는데, 가장 설렌 대목은 마지막 부분이었다. '웰컴 투 벤야민베가스!' "
하지만, 아도르노의 표현을 빌자면, "벤야민의 매력 앞에서는 자석처럼 끌리거나 몸서리치며 거부하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러니 벤야민을 조금이라도 읽어본 독자가 벤야민이라는 이름을 자주 들먹이며 벤야민 읽기에 나서는 것은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며 오히려 '자연현상'에 가깝다. 마치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487쪽 아래는 그의 안내문이다. 벤야민베가스에 들어서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맑스주의의 향연, '발터 벤야민 - 도시의 천사', 이후, 2001
프리즘, '발터 벤야민의 초상', 아도르노 지음, 문학동네, 2004  (좀 어려움)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 '발터 벤야민', 한나 아렌트 지음, 문학과지성사, 1983
한 우정의 역사 - 발터 벤야민을 추억하며, 게르숌 숄렘 지음, 한길사, 2002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 그램 질로크 지음, 효형출판, 2005

정말 요긴하게 쓰게 될 듯한 목록이다. 이런 안내야말로 먼저 읽은 자로서 뒤따라 오는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벤야민만 안내해주는 게 아니다. 나로서는 벤야민보다 더욱 끌리는 철학자.

레비나스가 문제 삼는 것은, 스피노자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존재하고자 하는 노력', 즉 존재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자 끈질기게 노력하는 자기보존욕이다. 그것이 그 자체로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타자의 현현으로서의 타인의 얼굴 때문이다. 우리에게 무한책임을 떠맡기면서, 우리로 하여금 '대속적 주체'로 다시 깨어나도록 발목을 잡는 그 얼굴은 이방인과 과부와 고아의 얼굴이다. 아, 젠장, 나는 나대로 좀 살고 싶은데, 어쩌자고 내 앞에 있는 당신은 헐벗은 이방인이고 젊은 과부이며 배고픈 고아인가? 그런 물음을 무겁게 등에 짊어질 때 우리는 '사랑의 지혜'로 가는 도상에 서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500쪽

이 구절을 접하고 나자, 몇년 전 대학 철학 입문 강의에서 접했던 철학자 '레비나스'를 제대로 알고 싶다는 마음이 불끈 솟았다. 그래서 교보까지 가서 조그마한 책을 한 권 샀다.


사랑의 지혜, 알렝 핑겔크로트 지음, 동문선, 1998 : 샀음.
콜린 데이비스, 엠마누엘 레비나스, 다산글방, 2001
필립 네모, 윤리와 무한, 다산글방, 2000 : 절판됨.

필립 네모의 <윤리와 무한>은 인터넷으로 알아볼 수 있는 모든 책방과 서점을 뒤져 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로쟈씨의 말에 따르면 오역도 적은, 레비나스 본인의 말을 기록하였기에 그의 철학에 입문하는 데 최적의 책이라고 하는데 사서 읽을 수가 없다. 아주 얇고 가격도 아주 싸다. 억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근 몇년 만에 철학 책을 읽겠다는 의지가 샘솟고 있건만 책이 없어 읽지 못하다니. 며칠 전 도서관에서 빌렸으나 노느라 이 얇은 책마저 다 읽지 못하고 조금 뒤에 반납하러 가야 한다.
이런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배가 부른 것 같은 느낌이다. 확실히 나도 책을 많이 좋아하나 보다. 거참.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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