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자전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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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홍은택 (한겨레출판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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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랬다. 아니 웬 여행기? 저자 이름도 처음 봤다.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내가 지금 여기서 언감생심 여행이라니? 그래도 선물받은 책이니 한번 읽어보자, 어딘가에 분명 빛나는 대목이 있을거야, 그런 마음으로 펴들었다. 색색의 사진 덕택에 부담없이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랬는데, 하 이것참 다시금 깨닫는 바이지만, 신뢰할 수 있는 이가 선물한 책이라면 가리지 않고 읽어보는 게 좋다. 적든 많든 그 안에서 깨닫는 바가 분명 있을 것이니. 읽을 가치가 있는 책들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나는 무엇을 느끼고 깨달았나? 독서 혹은 책읽기 라는 행위의 보잘것없음. 무능함. 아니지 이는 애시당초 과도한 기대를 해 왔던 나의 잘못이니, 정직하게 말하자면 책읽기 라는 행위의 실상. 오랜 세월 언론에 종사해온 마흔이 넘은 중년 남성의 자전거 여행기. 동부의 태평양에서 서부의 대서양까지, 구불구불 6000km를 자전거로 횡단한다. 저자는 어느 정도 운동을 가까이 하며 살아왔지만 자전거로 산 하나를 넘는 건 차원이 다르다. 그 끊임없는 오르막, 근육이 끊어지고 찢어질 듯한 고통. 육체에서 비롯되는 생생한 감각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사무실 의자에 편히 앉아 커피를 마시며 상상할 뿐이다. 글쓴이의 생생한 고통과 감각은 고작해야 한 문단도 안 되는 몇 줄의 문장으로 표현된다(근본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게 전부다. 나는 참 보잘것없다.
사실 새삼 실망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읽는다는 게 원래 그런 것이니까. 100 을 경험하고 체험한 사람이 그것을 글로 쓰면 10 정도나 전달되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10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기에, 충분히 재밌고 즐겁고 흥미롭기에, 내 삶을 바꿔놓을 수 있기에 우리는 계속 읽는 것 아닐까. 그러나 '읽기' 본래의 실상을 인정하지 않고 그 이상으로 과도하게 기대해서도 안 된다. 마치 더 많은 책을 읽기만 하면 무조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거나, 더 지혜로운 사람 혹은 더 이성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정신은 정신만으로 독보적이지 않다.

겨우 몇 주 전까지도 몸이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아서 힘들어했는데, 이제는 몸이 나를 끌고 가려고 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니라 '나는 움직인다. 고로 존재한다'로 바뀌어가고 있다. 전부터 나는 내 몸을 손님처럼 잘 모셔야 할 별도의 존재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몸이 점차 주인이 되고 그 전에 내 주인이라고 생각하던 정신이 몸의 지시를 따라간다. 이번 여행의 주제가 몸의 발견으로 변해간다.
원래부터 몸과 정신이 분리된 두 개의 실체가 아니라, 움직임을 통해 합쳐지는 자기의 두 가지 질료인지도 모른다. 245쪽 

요즘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아래는 저자가 여행지의 한 숙소에서 다른 한 여행자의 메모를 번역한 글이다. 여느 명언이니 하는 것들과는 그 수준이 다른 것 같아 굳이 다 옮겼다.

바라는 것(Desiderata).
소란스러움과 서두름 속에서도 평온함을 유지하기를. 정적에 싸인 곳을 기억하기를. 쉽게 굴복하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를. 당신의 진실을 조용히 그리고 분명하게 말하기를.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심지어 아둔하고 무지한 사람들에게도 귀를 기울이기를. 그들도 그들 나름의 이야기가 있으니. 사납고 나쁜 사람들을 피하기를. 그들은 영혼을 갉아 먹으니.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면 공허해지거나 잠시 기분이 나아질 뿐. 세상에는 항상 당신보다 낫거나 못한 사람들이 있거늘.
앞이를 계획하는 것만큼 지금까지 이뤄낸 것들을 음미하길. 아무리 보잘것없는 일이라도 그것이 당신이 할 일이라면 그 일에 흥미를 잃지 않기를. 시간에 따라 운은 변할 수 있지만 그것은 변하지 않는 당신의 천직이 될 것이니. 사업을 할 때는 조심하기를. 세상에는 사기가 판치고 있으니. 그러나 이것 때문에 좋은 일들에 대해 눈감는 일이 없기를. 많은 사람들이 높은 이상을 위해 분투하고 있고 영웅적인 노력들로 세상에 가득 차 있으니. 당신 자신이 되기를. 관심이 있는 것처럼 가장하지 말기를. 사랑에 대해 냉소적이지 말기를. 아무리 무미건조하고 정나미가 떨어지는 일들이 벌어져도 사랑이야말로 잔디처럼 끊임없이 솟아나는 것이니.
젊음의 것들을 우아하게 단념하면서 세월의 흐름에 순응하기를. 갑작스런 재난에서도 당신을 지켜줄 영혼의 힘을 키우기를. 그러나 상상의 것으로 스스로 괴롭히지 말기를. 두려움의 대부분은 피로와 외로움에서 싹트나니. 엄격한 자기수양을 넘어서 자신에게 온화하기를. 당신은 우주의 자녀이니. 나무와 별보다 못한 존재가 아니니. 당신은 여기에 있을 권리가 있거늘. 그리고 당신이 의식하든 못하든, 우주는 마땅히 그래야 하는 대로 끝없이 펼쳐지고 있으니. 그러므로 신과 융화하길. 신이 당신에게 어떤 모습이든 간에. 그리고 삶의 시끄러운 혼란 속에서 당신이 무엇을 열망하고 무엇을 위해 다투고 있든 간에 당신의 영혼과 조화를 이루길. 세상은 거짓과 허영과 무너진 꿈으로 가득 차 있어도 여전히 아름답거늘.
조심하기를. 행복하기 위해 분투하길.

앨리슨 지음, 홍은택 옮김,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190쪽에서 발췌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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