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체호프. 너무 좋다. 아주 좋다. 특히 이 두 중편소설은, 참 마음에 든다. 44살에 죽은 사람. 평생동안 가족의 밥벌이를 걱정해야 했던 사람.
표지 참 예쁘다. 내가 읽은 책 중에 내용과 어울리고 동시에 아름다운, 넘버 쓰리에 포함될 만하다(나머지 둘은 문학동네에서 펴낸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창비에서 펴낸 공선옥의 '명랑한 밤길'). 작가정신 이라는 출판사도 눈여겨 보고 있다. 국내에서 아주 유명하진 않은 현대 작가들이나 유명한 해외 작가들의 미번역 작품들을 주로 펴낸다. 꽤 잘 팔리는 책도 몇 개 있는 것 같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같은.
민음사에서 나온 고전문학 시리즈 중에 '체호프 단편선'이 있다. 이 책을 읽고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번역된 다른 작품을 찾던 중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산지 한 달 하고 보름 가까이 지났는데, 펴 보니 줄간격도 널찍하고, 금방 읽었다. 
김연수씨의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이라는 단편에서 처음 깨달은 건데, 곱씹어 생각할수록 더 많은 것이 보이고, 들리고,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게 되는 작품이 있다. '산다는 것은'도 마찬가지다. 그리 복잡하지 않는 줄거리에 분량도 짧다. 문장들도, 통독할 때에는 확 눈에 띄는 게 많진 않았다. 근데 그 표현들, 책 뒤표지에 적힌대로 '시적인' 표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 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읽게 된다.
누구에게도 해 끼치지 않고, 나의 생존을 나 스스로 책임지는 것. 단단히 땅을 딛고 서 있다는 평온함과 자신감. 삶은 여기서부터 비롯해야 할 것 같다. 사랑이든, 가족이든, 여행이든. 밥벌이를 책임지는 것.
'결혼 3년'은 '산다는 것은' 보다는 명쾌하고 쉽게, 그러나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이 쓸쓸하게 고독함을 그린 작품이다. 개인적인 심정에 와 닿는 부분이 많았다. 옮기고 싶은 문장도 많았고. 사랑 혹은 삶에서 거역할 수 없는 것처럼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고, 뒤늦게 사랑하고,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라프쩨프처럼 살고 싶지 않다. 야르체프의 낙관을 평생동안 마음에 품고 살고 싶은데. 알 수 없는 노릇이지. 그래, '살다 보면 알게 되겠지'.

아, 그 밤은 정말 외로웠다. 금방이라도 누군가가 "이제 네가 떠날 때가 되었다"고 소리칠 것 같았고, 시시각각 떨리는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던 그 외로움의 시간들... 두베취냐를 떠나는 것은 아쉽지 않았다. 아쉬운 것은 가을을 맞은 내 사랑이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 그 높은 사랑의 탑에서 이제 추락할 거라고 느끼자 너무나도 끔찍했다. (산다는 것은, 134쪽)
'모든 것을 다 주겠다니.' 그는 무더운 날씨에 집으로 가는 길에서 그가 했던 사랑의 고백을 곰곰이 되새겨보며 스스로를 조롱했다. '모든 것을 다 줄거요라니... 완전히 장사꾼 같군. 너의 모든 것이 도대체 누구에게 필요하단 말이냐!' (결혼 3년, 198쪽)
"이해할 수 없군. 왜 당신들은 사랑을 인정하지 않지? 만약 하루에 15시간 쯤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나도 분명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텐데." (", 292쪽)

체호프 참 좋다. 소설을 다 읽으면 희곡들도 읽고 싶다. 사실 체호프는 소설보다 희곡으로 훨씬 더 유명하다.

산다는 것은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안톤 체호프 (작가정신,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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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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