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대학살(현대의지성94)
카테고리 역사/문화 > 서양사
지은이 로버트 단턴 (문학과지성사,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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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쪼끔 어려운 책 읽었다. 어렵다는 말을 들으면 이 책 선물해준 ㅇㅎ은 비웃을 게 틀림없다. 올 초에 선물받은 책인데 서론 부분만 읽고 괜히 재미없을 것 같아 몇 달 동안 묵혀 두었다. 읽고 나니, 역시나. 자기 전공 분야에 관한 책이어서 그런지 꽤 재밌다.
이 책은 역사서다. 18세기 프랑스를 주 무대로 한다. 역자 서문이 책의 내용과 의의를 매우 충실하게 잘 요약하고 있다. "당시 농민들의 민담, 파리의 한 인쇄소에서 벌어졌던 고양이 죽이기 소동, 몽펠리에 주민의 도시 설명서, 경찰 수사관의 조서, <백과전서>의 서문, 한 시민의 서적 주문서 등을 소재로 하여"(옮긴이 서문, 6쪽) 쓴 여섯 편의 논문을 모아 놓았다. 논문 모음이라는 말에서 예상할 수 있는 각 장章 사이의 지나친 독립성이나 어려운 학술 용어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전체가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술술 읽게 된다.
이 책에 대한 찬사 중의 하나는 주목받지 못했던 과거의 유산을 사료로 삼아 역사를 기술했다는 점에 있다. 왜 주목받지 못했을까? 앞의 목록을 다시 살펴보면 쉽게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몽펠리에'라는 특정 도시에 사는 '한 명'의 시민이 쓴 설명서를 가지고 그 도시 혹은 그 도시에 사는 특정 계층의 일반적인 성격을 이끌어 내는 일은 얼핏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한 시민의 서적 주문서와 파리의 한 인쇄소에서 벌어졌던 고양이 죽이기 소동도 마찬가지다. 보통은 하나의 대상에 관한 일정 수 이상의 자료가 모여야 학문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아주 특수하고 개별적인 사료와 역사적 일반성을 연결해주는 마법의 열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이 책이 보여주는 마법의 방법론은 바로 민속학과 인류학이다. 이러한 작업이 가능한 이유에 대해 옮긴이는 "아주 개별적이고 특이한 글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상징의 체계 속에서 표출된 것"(옮긴이 서문, 9쪽)이기 때문이라고 요약한다. '상징의 체계'라는 단어를 "사회가 함께 받아들이는 관용적 표현의 틀", "사회사가들이 복원시켰던 컨텍스트"라는 표현으로 대체해도 상관없다. 물론 여기에도 약점이 있다는 사실을 저자는 인정하고 있지만, 다음과 같은 멋진 말로 책을 마무리해낸다.

그러나 나는 우리 누구라도 최종적인 해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점은 계속 변화하며 역사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최종의 결과'나 최종의 말이 주어질 수 없다. 그러나 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을 할 사람은 역사가가 과거로 탐험을 할 때 그들은 사라진 인류와의 접촉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던 마르크 블로크일 것이다. 역사가들의 직업적 인습이 무엇이건 그들은 자신의 코를 따르고 후각을 신뢰해야 한다: "좋은 역사가는 전설 속의 식인귀를 닮았다. 인간 육체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이라면 그는 자신의 제물을 그곳에서 발견할 것임을 알고 있다." 375~376쪽

그럭저럭 근사한 책이다. 역사학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심이 생겼다. 나의 관심은 끝 간 데 없이 뻗어나가고 있다!

2011.7.


그녀(빨강 모자 소녀)는 단지 죽음의 아가리 속으로 걸어 들어갔을 뿐이다. 그 이야기가 심금을 울리는 것은 18세기 이후에 그 이야기가 얻게 되곤 하였던 해피 엔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재난이 지니는 불가해하고 비정한 성격에 있는 것이다. 86쪽

즉 텍스트는 아무리 견고한 듯이 보인다 할지라도 비판적인 독서를 통하여 '담론'으로 분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가라면 경찰의 보고서가 불변하는 실재의 견고한 응집체라고 취급하기에 앞서 주저하여야 하며, 과거를 확실하게 재구성하기 위하여 그 응집체를 문서 보관소에서 캐내어 체로 거르고 함께 엮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보고서는 문학이 아직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시절에 작가와 저술의 본질에 대한 함묵적인 가정 위에 세워진 그 자체의 구성물이다. 226쪽

작가는 자신을 먹여주는 손을 결코 물면 안 되는 것뿐만 아니라 적의 진영에 있는 모든 손까지도 내리쳐야 한다. / 이렇듯 '보호'는 문필 생활의 기본적인 원리로 기능하였다. 그것의 존재가 보고서에서 도처에 나타난다는 사실은 또 다른 현상인 문학의 시장이 없었다는 사실을 더욱 두드러지게 보이게 한다. 240쪽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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