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혹은여행처럼인생이여행에게배워야할것들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정혜윤 (난다, 2011년)
상세보기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읽는 정혜윤 씨의 책. 아마 인터넷서점 뉴스레터에서 신간 소식을 처음 접했을 것이다. 인터넷서점을 이용하지 않은 지 이삼 년이 넘었지만 뉴스레터는 계속 받아보고 있다. 많은 책이 팔리는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여러 분야를 균등하게 소개하는 편이다. 알라딘 MD들의 글은 유명한 서평가들 못지않게 박식하고 재밌다. 종이신문 북 섹션 중에는 한겨레신문이 가장 알차면서 내 취향에 가깝고, 예스24보다 알라딘 뉴스레터가 더 깔끔하고 내 취향에 가깝다.

지난 휴가 때 이음에 들렀다. 도서출판 텍스트에서 내는 만인보 시리즈 신간 하나를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서점에 없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이 책을 발견했고, 후회하지 않겠다 싶어 샀다. 서점을 나와 동숭아트센터 꼭두까페로 향했다. 까페 마당에 앉아 커다란 샌드위치 하나, 아메리카노 큰 잔 가득 먹고 마시며 담배도 태웠다. 마침 날씨가 좋아 기분도 덩달아 둥실둥실 두둥실. 지인은 약속 시간을 한 시간 가까이 넘겼지만, 그리 불쾌하지도 않았다.

대학 다닐 적, 바쁜 직장생활 짬짬이 세게 곳곳을 여행해온 저자는 어느 순간 '왜 우리는 여행하듯 살아가지 못할까' 라고 생각한다. 여행과 담 쌓고 살아온 나로서는 이해하되 마음으로 공감하진 못했지만 여행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어떨지 모르겠다. 저자는 자신의 여행이 시작된 지점에서 삶을 다시 여행한다. '가족'. 남자와 여자가 각자의 여행길 어딘가에서 만나 한 아이를 낳았던, 그 출발점. 그 특유의 문체로 자신의 가족사를 유머러스하게 풀어헤치는 걸 보며 의도하지 않은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이제 저자는 여행처럼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인생을 들려주는 모든 사람"을 여행지 삼아.

이 책은 그래서 인터뷰집자 여행기이다. 충북 음성군의 시갈골문학회 회원들, 사진작가 임종진, 버마 이주노동자 소모뚜, 나무 사학자 강판권, 진딧물 연구자 김효중, 시인 송경동, 지도공 송규봉, 라틴어 연구자 안재원. 이들의 삶이 이번 여행의 목적지였고 그들을 만나는 순간은 여행 자체였다. 저자는 이들의 삶을 여행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다른 많은 여행자들처럼 이들의 공통점은 뭔가 추구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다른 많은 여행자들이 그러하듯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과장하지도 않고 과오나 성취 양쪽 모두에 야단법석을 떨지도 않는다. 이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두려움을 갖지 않고 이미 일어난 일을 절망이나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는 근본적인 불행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하나의 '조건' 정도로만 받아들인다. 그들은 영감으로 가득 찬 신묘한 말을 하는 현인이 아니라 자신의 손과 발과 눈과 머리를,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도 세계에게도 냉담하지 않았다. 일정 변경이 없는 여행이 없는 것처럼 매끄럽기만 한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함에서, 낯선 지방에서 우리는 서로서로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란 점을 알고 있음에서 그들의 여유, 그들의 강함, 그들의 미소, 그들의 자유, 그들의 관대함이 나왔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그들은 자신을 계속 걷게 하는 그 무엇인가를 찾아낸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조차도 원래부터 알던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 그들은 발견한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들은 뭔가를 발견한 것일까? 18쪽

감동적이고 흥미롭다. 그들의 삶 자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여행처럼 살고자 마음먹은 저자에게서도 비롯되었을 것이다. 여행지마다 인상적인 풍경이 있었는데 몇몇 대목은 들려주고 싶다. 먼저 충북 음성군의 시갈골문학회.

한충자 할머니는 자기가 뭐 시인이 되겠단 생각도 없었고 그저 어디 가서 읽고 쓰고 남의 시도 좀 읽어볼 시간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고만 말한다. 이명재 할머니는 오직 배우는 것만이 부럽다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부럽지 않다고, 잠 안 오면 책 읽어야지 뭐하냐고 말한다. (...)
나는 끝없이 많은 질문을 갖게 되었다. 무식하다는 것은 뭘까? 배운다는 것은 뭘까?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노력한다는 것은 뭘까? 농산꾼이 밤에 시를 지으면 그 시는 농사꾼의 낮도 바꿔놓을 수 있을까? 일하고 돌아온 사람들에게 밤의 시간은 무엇일까? 먹고 자고 쉬는 것 말고 우리도 밤의 시간에 뭔가를 한다면 그것이 또 우리를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가? 무엇이든 당연시하거나 무심코 보아 넘기지 않는다면 그런 탐구와 관심이 우리를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가? 할머니들이 글자에 눈이 멀어 있었다면 우리들은 지금 무엇에 눈멀어 있는 걸까? 이제 우리가 눈멀었던 그 무엇에 눈을 뜬다면 우리 역시 얼마나 기쁠 것인가? 92쪽
라디오PD라는 직업 덕택에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다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비슷한 사연을 가끔 종이신문 사람 난에서 접하곤 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내게 충격을 주고, 내 삶에 직접 와 닿아 삶 전체를 다시 돌이켜 보게 만들진 못했었다. 

'배신의 평범화' 시대에 소모뚜가 말한 "우리 친구 아닌가?"라는 말은 '친구 되기'의 본질을 알려준다. (...) 이 질문은 내겐 소모뚜가 행한 선택과 포기와도 연결된다. 그에게 '나는 누구의 친구인가?'라는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그리고 '이 세게 속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혹은 행동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라는 선택과 관련되어 있다(나란 사람의 정체성 혹은 운명은 사주팔자, 별자리나 혈액형, 기질에 달려 있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140쪽

일 년에 한두 번 대학로나 서울역 광장 먼발치에서 보곤 했던 사람. 그가 고향을 떠나 돈을 벌고, 머나먼 타국에서 이주 노동자 운동과 버마 민주화 운동을 시작한 것은 스스로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질 줄 알았기 때문이다. 매 맞고 착취당하는 동료들을 보며, "우리 친구 아닌가?"라는 질문을.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내 친구들이 내가 너무 멀리 가지 않도록 붙잡아 줄 거라고. 그러므로 그들이 곧 나이기도 할 거라고. 지금 이 순간,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불에 타버린 포이동이다. 그곳에 살고 있는 어른들과 아이들이다. 나는 누구의 친구인가?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렇게 마음을 매핑하는 지도의 좌표가 X축 Y축으로 구성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도 합니다. 둥근 지구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3차원의 일을 2차원으로 옮기는 것이 좌표인데, 이 말은 인간이 복잡한 의사 결정을 할 때는 결국 중요한 두세 가지로 할 수밖에 없단 말이기도 합니다. X축 Y축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 돈으로 할 것이냐? 명예로 할 것이냐? 혹은 다른 것으로 할 것이냐? 이 좌표가 나와야 출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확고부동한 정북향을 가질 수 있을까요? 생각해보면 나침반에 있어 정북향의 본질은 떨림입니다. 결국 우리는 떨면서 가는 것입니다. 238쪽

지도제작자 송규봉씨의 이야기는 책을 통틀어서 가장 새로웠다. 지도가 이렇게 흥미로운 사물이자 개념일 줄은 몰랐다. 그는 눈에 보이는 세계의 정보로 다른 세계를 구축하는 사람이다. 지도 그리기가 이렇게 낭만적인 일이었다니.

(...)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라틴어의 카르페 디엠, 그날 그날 즐겁게 살라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카르페 디엠의 철학적 의미는 매 순간 매 순간이 축적되어 역사가 된단 것입니다. 그 순간들이 모여 나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 말을 크게 보면 하나의 순간에 모든 것을 걸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라틴어 속담에 한 방울의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건 한 방울의 물이라도 떨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라는 말입니다. 라틴어에 Festina lente, 천천히 서둘러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말입니다. 천천히 서두른다는 것은 뭐지요? 
어쨌든 뭔가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간다는 말입니다. 263쪽

라틴어 연구자 안재원씨. 그는 글로 이미 안면이 있는 사람이다. 매주 토요일 나오는 한겨레신문 북 섹션에 격주마다 한 면 가득 글을 쓰고 있다. 위의 발췌문은 특별히 인상적이었다. 내가 바라고 또 닮고자 하는 삶의 태도, 신념, 가장 근본적인 자세 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평을 쓰기 전에 이 대목만으로 한 시간 동안 글을 썼다.

그밖에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내겐 어떤 여행지보다 충격적이고, 새롭고, 감동적이고 흥미로웠다. 시인 송경동씨의 삶이 그러했을 줄은, 그가 지금 여기서 그토록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는 이유를 알게 된 듯했다. 진딧물 연구자 김효중씨 - 진딧물이 그렇게 다양하고 오래 된 생물인 줄 몰랐다. 한량이나 다름없었던 한 대학생이 선배의 삶이 멋있어 보여 연구자의 길을 걷고, '순교자'가 되겠다는 낭만적인 태도로 공부를 계속 하고, 결국 그것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모든 인터뷰이들의 이야기가 그렇듯 그의 이야기는 단지 진딧물에 대한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것, 거기서 시작되는 새로운 관계, 삶의 태도와 의미 에 대한 것을 담고 있다.

휴가 복귀하는 지하철에서 책을  펴들었었다. 평소처럼 겉표지를 벗기고 독서를 시작하려 했다. 그런데 이게 신기하게 두 겹으로 되어 있었다. '뭐지?' 펼쳐 보니 안쪽 면은 태양으로 가득 차 있고, 조그만 점처럼 보이는 우주선이 지나는 사진이 인쇄돼 있었다. 본문에서 발췌한 짧은 글귀와 함께. 세상에, 이게 뭐람. 지금도 책상 위에 놓여 있다. 이런 겉표지는 처음 보았다. 깜짝 놀라면서 신기했고 또 즐거웠다. 표지 안쪽 면이 보이게 방 한 구석 벽에 붙여 놓으면 참 근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 난다는 문학동네의 임프린트 출판사다. 편집인은 김민정. 문학동네의 김민정 씨라면 그 사람이 맞을 것이다. 한겨레신문에 '시인 김민정'으로 칼럼을 쓰고 김남일 소설가의 장편소설 <천재토끼 차상문>의 편집자이기도 했던. 잘은 모르지만, 참 멋진 사람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삶이 내게 하나의 여행지가 되어줄 것 같은 사람, 친구가 되면 좋겠다 싶은 사람 말이다. 잘은 모르지만.

여행하듯 살기. 정혜윤 씨는 단지 산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그러고 싶지 않다고(혹은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하나 보다. 전에 읽은 책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에서 그는 우리는 독서를 하며 세계를 두 번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여행이란 독서 못지않은 살아가기의 방식이었던 것 같다. 이제 그는 새로운 방식의 여행을 시작했다, 세계를 다시 살아가는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낸 듯.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문체를 낭만적 혹은 감상적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하고 또 진부하다. 그와 같은 말투로 읽고 쓰고 살기란 내게 버겁다. 하지만 그가 나아가는 모습, 그래서 나아지고자 하는 모습은 꼭 닮고 싶다. 나 나람의 독특한 '살기'의 방식으로 - 그가 만났던 여행자들처럼. 
 


나는 나 자신보다 세계가 미치도록 궁금했다. 내가 사라지는 그 순간들은 너무나 황홀했다. 세계를 사랑하며 나는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75쪽

어느 날 아침, 아무 일도 없던 평범한 아침, 단지 새 한마리가 날고 있을 뿐인 그날조차도 나의 길은 그려지고 있으니, 나의 길은 결코 몰랐던 새로운 세계로 이어지고 있으니, 나의 길은 그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면 홀연히 지워지지 않으니, 길을 잃었다고 생각될 때조차 길은 이어지고 있으니, 어딘가 갇혀 있는 것 같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길은 이어지고 있으니, 이렇게만 말하고 싶다. 그대가 한 일을 슬퍼하지 말지니, 그대가 걸어온 길도 슬퍼하지 말지니. 241쪽

하루하루 공부를 하는 것은 거대한 어떤 것의 어깨를 딛고 올라가는 겁니다. 텍스트들이 머릿속의 눈이 됩니다. 그 눈으로 흘러가는 것들을 봅니다. 그 눈으로 볼 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라틴어 구절은 Amor vincet omnia, 사랑이 모든 것을 극복하리라, 입니다. 265쪽

책을 읽을 때는 나는 나지만 또 나는 내가 아닌 것처럼, 보르헤스가 셰익스피어를 읽는 자는 그 순간 셰익스피어고 호머를 읽는 자는 그 순간은 호머라고 했던 것처럼, 여행지에서 우리는 우리지만 우리가 아니기도 하다. 우리는 하나지만 수없이 많은 영혼이다. 272쪽


Posted by 권고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