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면안돼거기뱀이있어일리노이주립대학장의아마존탐험30년
카테고리 역사/문화 > 문화일반
지은이 다니엘 에버렛 (꾸리에,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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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씨의 서평집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1>에서 소개받은 책이다. 나는 그의 서평을 신뢰한다. 『잠들면 안돼, 거기 뱀이 있어』라는 특이한 제목의 책(거기다 소설이 아니라 논픽션, 문화기술지라니)에 대한 서평을 읽고 났을 때 설레기까지 했다. 빨리 읽어보고 싶다! 하지만 서점에서 발견했을 땐 가격에 놀라 몇 차례나 발걸음을 돌렸다. 결국 몇 달 전 지갑 사정이 조금 여유로워진 찰나를 놓치지 않고 질러 버렸다. 이 책 한 권이면 다른 책 두 권을 살 수 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을 애써 다잡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당시의 내 과감함에 매우 만족한다. 그때 사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먼저 번역자의 노고에 무척 감사하다. 아마 피다한 말은 지금껏 단 한 차례도 한글로 표기된 적이 없었을 것이다. 한국어에는 없는 피다한 말의 음소와 성조를 표시하기 위해 스스로 방법을 고안해내신 것 같다. 거기다 본문 맨 끝에 한글표기와 번역 방식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고 문법 및 음운론 참고 도서 목록도 밝혀 놓았다. 피다한 말과 문화를 연구했거나 하고 있을 한국인 언어(인류)학자가 있는지 모르겠다. 누군가 이 책을 통해 연구에 도움을 얻어 한국어 텍스트를 출판한다면 나 개인에게도 한국 사회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무척 고마운 일이다.
 
저자는 아마존 원주민인 피다한 족을 개종시키기 위해 선교단체의 체계적인 도움을 받아 정글에 도착한다. 피다한 족은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기독교로 개종한 적이 없는 소수 부족이다. 그들은 단일 언어, 즉 피다한 말만 할 줄 안다. 그래서 그들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다른 언어의 도움 없이 말을 배워야 한다. 게다가 피다한 말은 지구상 여느 언어들 못지않게 독특하다. 지금까지 발견된 모든 언어 중에서 모음 세 개 자음 여덟 개로 음소가 가장 적다(영어는 대략 40개, 한국어는 대략 29개이다). 성조의 ‘음절 길이’가 언어 규칙으로 존재하며,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말 외에 휘파람, 콧노래, 외침, 노래라는 별개의 ‘담화 채널’들이 존재한다. 저자가 겪은 어려움은 나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어릴 적부터 숱하게 접해온 영어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이렇게 애를 먹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성경을 피다한 말로 번역하겠다는 종교적 사명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데 말만 배우고 싶다고 해서 그럴 수 있는 게 아니다. 저자 이전에 두 명의 선교사가 머무르긴 했다. 그럼에도 원주민과 백인 선교사 사이에 문화적 차이는 크고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다. 저자와 가족이 피다한 마을에 살면서 겪은 고난, 정글의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 피다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친해지면서 발견한 경이로움, 그로 인해 스스로가 변화하고 또 백인 기독교 문화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하는 모습을 흥미롭고 심지어 긴장감 넘치게 들려준다. 저자는 피다한 족과 그들의 마을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근의 까보끌루 사회(원주민과 이주민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도 묘사하고 분석한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은 대중적인 인류학 문화기술지로서 손색이 없다. 미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는 사실은 책 뒤표지에 적힌 서평지와 신문의 숱한 찬사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이 책은 1부 ‘삶’과 2부 ‘언어’, 3부 ‘깨달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피다한 문화를 관찰하고 경험하여 기록한 1부, 피다한 말을 다루는 2부, 3부는 이십여 년 동안 피다한 사람들과 지내며 얻은 개인적인 깨달음을 담고 있다. 나는 특별히 이 책의 2부 ‘언어’를 읽으면서 놀랐고 감동했다. 내 생각에 이 장章은 이 책을 단지 인류학 문화기술지에 머무르지 않게 하는 핵심적인 부분이다. 여기서 저자는 언어(인류)학자로서 피다한 말을 분석한다. 저자는 언어학의 기본 개념들(진리조건, 한정, 치환, 순환 등)을 예를 들어가며 친절히 설명한다. 나처럼 언어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개념들이 피다한 말의 무엇에 해당하는지, 해당하는 것이 없다면 왜 그러한지도 예를 들어 설명한다. 
 
피다한 말에 대한 언어학적 분석은 크게 두 측면으로 나뉜다. 음운론과 통사론(문법)인데, 먼저 외부인들이 듣기에 ‘동물이 울부짖는 것 같은’ 피다한 말의 음운론을 간단히 요약해본다. 
 
피다한 말에 음소가 적은 이유는 단순하다. 많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담화 채널들은 각각 다른 유형의 정보를 전달하는 문화적으로 선택된 방법이다. 그만큼 중요하게 기능한다. 음소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반면 일반적인 말 채널만 활용하는 영어나 불어, 나바호 족 언어 등에서는 음소가 훨씬 중요한 기능을 한다. 이와 같은 분석은 문화가 음성 구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현대 언어이론의 가설을 흔드는 것이다. 물론 저자의 분석을 거꾸로, 즉 음소가 적기 때문에 채널이 다양해진 것 아니겠냐고 물을 수 있다. 이 주장은 언어가 문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기존 언어학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여기에 저자는 여러 반증을 제시한다. 음소가 많은데도 휘파람 말과 같은 담화 채널을 가진 멕시코 남부의 랄라나 치난텍, 서아프리카 요루바 같은 말을 예로 든다. 이들은 피다한과 반대로 다른 말보다 자음과 모음을 훨씬 자주 사용하여 음소의 의사소통 부하량이 너무 높기 때문에 휘파람 말을 사용한다. ‘문화가 언어에 영향을 미친다’는 저자의 대大이론은 통사론에 대한 연구에서 더욱 강하게 뒷받침된다.
 
다음으로 통사론(문법). 저자는 긴 분량을 할애해 촘스키의 이론을 비판한다. 촘스키 이론을 요약한 부분을 먼저 발췌해보자. “(촘스키의) 보편문법이란 세상의 어떤 언어에도 적용되는 보편적인 문법이라는 의미로, 비교적 적은 수의 ‘원칙과 변수’가 작동한 결과로 언어마다 문법적 규칙이 달라진다는 가설이다. 우리는 원래 어떤 문법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태어나며, 어떤 환경에서 자라느냐, 또 주변 사람들이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이러저러한 문법적 속성의 스위치가 선택적으로 켜지고 이로써 문법을 습득하게 된다고 촘스키는 주장한다. 예컨대 보편문법의 추론에 따르면,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들으며 자란 사람은 ‘주어생략’이라는 변수를 선택함으로써 문법을 습득한다. 이 변수를 선택하면 영어처럼 주어를 반드시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389쪽) 
 
여기서 저자는, ‘문법’보다 ‘의미’가 언어에서 더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의미’가 대체 뭘까? 저자의 설명을 통해 이해해보자. 철학과 언어학은 의미를 ‘지시’와 ‘뜻’으로 나눈다. ‘지시’는 쉽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말할 때 가리키는 어떤 대상에 대해서 서로 동의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뜻’은 평가와 용법, 두 개념으로 구분할 수 있다. 평가란 대상, 행동, 자질에 대한 말하는 사람의 생각을 표현하는 말이다. 용법이란 낱말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또 어떤 낱말과 함께 사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의미란 낱말이나 문장이 가리키는 대상, 어떤 낱말이나 문장이 사용되는 방식, 다른 낱말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동의하는 것이다. 피다한 말에도 당연히 의미는 존재한다. 하지만 의미는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서로 동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와 다르다. 문화적 환경에 따라서 제각각 가치관이 다르고 믿음이 다르기 때문에 의미도 달라지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연구 태도를 두 가지로 요약한다. 첫 번째로, 문화가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태도. 피다한 문화가 좋은 예이다. “피다한 말에 숫자가 없는 것은 문화적 제약(경험의 직접성 원칙: 피다한 사람들은 자기가 직접 보거나 아는 사람이 직접 본 내용만 말한다)의 결과이다. 이러한 문화적 부산물은 다시 인식론적인 결과를 낳는다. 즉, 숫자가 없는 환경에서 평생을 지낸 피다한 마을의 어른들은 수를 세는 것을 아무리 가르쳐도 배우지 못했다.”(391~392쪽) 두 번째, 문화적 가치가 문장구성, 어휘구조, 소리구조(언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접근법. 직접적으로 저자의 연구 방식이 여기에 속한다고 스스로 밝힌다. 예를 들어 경험의 직접성 원칙으로 피다한 말을 이해하고자 하는 작업이 여기에 속한다.
 
그 작업의 핵심에는 ‘순환’이라는 개념이 있다. 먼저 순환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넘어가자. “순환이란 전통적으로 어떤 항목 안에 같은 종류의 다른 항목을 넣을 수 있는 특성을 의미한다. (…) 시각에서 순환을 찾는다면, 거울을 앞뒤로 놓고 볼 때 거울 속 그림이 끊임없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현상을 들 수 있다. 청각에서 순환을 찾는다면, 증폭기가 자신이 만들어낸 소리를 빨아들여 다시 증폭함으로써 증폭이 끊임없이 반복되어 삑삑거리는 소리가 나는 현상을 들 수 있다. 통사론에서 말하는 순환이란, 구나 절과 같은 어떤 단위를 같은 유형의 다른 단위 속에 집어넣는 것을 말한다.”(403쪽) 보편문법 이론은 순환이 모든 ‘문법’에 존재하며, 이는 인간의 유전자에서 비롯되는 보편적 자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다양한 문장을 예로 들며 피다한 문장에는 ‘순환’이 없음을 증명한다. 촘스키와 그 지지자들의 이론이 틀렸다는 것이다. 피다한 말은 어떤 구도 하나 이상의 한정限定사를 가질 수 없다. 또 복문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단문이다. 그 이유는 문화적 가치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어제 본 남자가 여기 있다”는 문장을 보자. ‘남자가 여기 있다’는 주절은 새로운 정보를 담고 있는 ‘표명’이다. 이는 청자가 직접 확인 가능하다. 그러나 안긴문장의 구舊정보 ‘(내가) 어제 (봤다)’는 화자가 사실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청자의 입장에서는 직접 확인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안긴문장은 표명이 아니고, 그 때문에 경험의 직접성 원칙을 위반한다는 것이다. 피다한 말에는 안긴문장이 없다.
 
저자가 보기에 보편문법 이론 지지자들은 문법 바깥의 영역, 예를 들어 담화나 이야기 같은 영역을 외면해 왔다. 연역적 접근의 실험실적인 엄밀함을 위해서, 자신들의 이론을 고수하기 위해서 말이다. 실제로 피다한 사람들의 담화와 이야기를 들어보면 문장(문법) 바깥에서 순환이 존재한다. “이야기가 여러 부분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하위 플롯도 있고 등장인물이 사건들이 얽히고설키며 온갖 관계를 맺는다. 다시 말해 문법은 유한하더라도 우리가 하는 말은 무한할 수 있다는 뜻이다.”(420~421쪽) 그러므로 순환은 문법의 일부가 아니라 “인간 두뇌의 본질적인 능력”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인간의 유용한 인식도구이기 때문에 언어에 도입된 것일 뿐이다. 현대 사회와 같은 ‘개방적 의사소통’ 사회에서는 많은 정보를 한 문장으로 묶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여기서 순환은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된다. 그러나 피다한과 같은 ‘폐쇄적 의사소통’ 사회에서는 많은 정보를 하나로 묶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순환이 그다지 유용하게 사용되지 않는다. 
 
촘스키는 언어학이 귀납적 접근을 통한 현장 연구를 하지 않고도 이론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론이 연역적 접근에만 몰두할 때, 이론이 본래부터 가진 빈틈은 넓어지고 어느 순간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게 된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지키는 데에만 급급하다. 저자는 토마스 쿤의 ‘과학 혁명’을 언급하며 오늘날의 언어학이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언어는 특별한 보편문법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인식의 일반적 속성의 부산물”일 뿐이다. “어떤 언어든 그것이 생겨난 배경이 되는 문화의 중요한 가치관을 깰 수 없다”. 그러므로 언어학자들은 “문법, 즉 언어의 작동방식보다 문화에 기초한 의미와 문화마다 다양하게 작동하는 제약이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이 책의 구성으로 돌아가 보자. 1부 ‘삶’, 2부 ‘언어’, 3부 ‘깨달음’. 사실 책을 다 읽은 직후에는 1부와 2부 사이에 논리적 연관은 없어 보였다. 1부는 피다한 문화에 관한 인류학 문화기술지이고 2부는 언어학자로서 피다한 말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결과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2부를 요약하려고 다시 읽으면서 놀랐다. 책의 구성 자체가 저자가 내린 결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문화에 기초한 의미와 문화마다 다양하게 작동하는 제약”을 살펴보기 위해 먼저 피다한 문화를 관찰, 경험한 내용을 2부로 두고 그 뒤에 피다한 말을 분석한 언어학 연구를 배치한 것이다. 2부에서 새로운 학문적 태도를 주장하고 동시에 저작 전체를 같은 방식으로 구성했다. ‘메타(meta)-‘라는 개념은 항상 나를 헷갈리게 한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사용해도 괜찮을 듯하다. 이 책은 메타 언어학 텍스트이다. 
 
저자는 피다한 말을 비교적 완벽히 터득한 최초의 외지인이다. 말을 배우려고 피다한 사람들과 아마존 정글에서 수십 년 동안 함께 살았다. 어느 순간 최초의 목적이었던 ‘개종’이라는 사명은 사라지고 만다. 피다한 문화의 주요 가치인 ‘경험의 직접성 원칙’은 그에게 과학자로서 가져야 할 학문적 태도를 상기시켰다. 또 기독교를 전파하려면 피다한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심어줘야 했다. 저자는 그러한 것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피다한 사람들은 ‘미래’를 중요시하지 않았다. 그는 그들의 삶과 인성을 존경하게 되면서 자신을 성찰하고 결국 기독교를 믿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피다한 말을 배우고 문화를 연구하게 되면서, 연구자 본인의 삶이 극적으로 변화한 것이다.
 
예상치도 못하게 아주 멋진 책 한 권을 읽었다. 서평을 쓰는 데 예닐곱 시간은 걸린 것 같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이 책을 통해서 태어나 처음으로(!) 언어학의 기본 개념을 이해했고 거기다 흥미까지 느꼈다. 분에 넘칠 만큼 많이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고작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인데 말이다. 즐겁고, 설렌다.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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