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개의봄역사학자김기협의시병일기
카테고리 시/에세이 > 테마에세이
지은이 김기협 (서해문집, 2011년)
상세보기

2011년 1월에 1쇄가 나왔다. 그쯤 신문에서 신간 광고를 봤었다. 김기협 이라는 이름은 처음 보았었다. 지은이의 모친으로 짐작되는 할머니가 웃고 있는 사진이 커다랗게 실려 있었다. 소개 문구를 보며 ‘아 이 책도 꽤 재미있겠다’, ‘언젠가 꼭 읽어 봐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 이동 도서관에서 우연히 보고 얼른 가져왔다. 공부할 게 많아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버스에 오를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일단 들어가고 보니 빈손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책을 편 지 이틀 만에 다 읽었다. 일단 읽기 시작하니 다른 일을 신경 쓸 마음이 싹 사라졌다. 한 편씩 읽어 나가면서 그 다음, 그 다음이 궁금해 졌다. 거의 다 읽어 갈 때 동료가 다가와 무슨 책이냐고 물었다. 한 5분 동안 혼자 흥분해서 칭찬을 늘어놓았다. 끝에 덧붙이길 ‘지금 마음 같아서는 올 한 해 읽은 책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하다’고 했다. 지금도 생각이 크게 변한 건 아니다. 다만 내가 이렇게 놀라며 감동 받은 책이 한 두 권이 아니었다는 것과, 올 한 해 읽은 책들과 남은 두어 달 동안 더 읽을 책들을 쭉 늘어놓고 거기서 다섯을 꼽는 순간을 상상해 보니, 어쩌면 다섯 손가락에 들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열 손가락 안엔 분명 들 것이다.
 
아흔을 바라보는 모친이 기력을 잃다 결국 쓰러진다. 마침 가까운 곳에 살던 셋째 아들이 모친을 병원에 모시고 시병하며 쓴 일기이다. 다만 그 셋째 아들이 위로 형 둘이 있는 삼형제 중 모친과 가장 사이가 안 좋았다는 것, 본인이 밝히는 것처럼 오랜 세월 어머니를 진심으로 미워했고 또 스스로를 불효자로 인정해 왔다는 게 색다르다. 시병 초기만 해도 아들은 자식 된 도리로 나서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모친의 건강이 점차 나아지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게 저절로 기뻐 친형과 모친의 친구들에게 전해주기 시작한 게 이 책의 출발점이다.
 
지은이의 부친 고 김성칠은 육이오 전쟁 중 괴한의 총격에 피살되었다. 부친이 결혼 생활 7년여 동안 쓴 일기는 1993년에 『역사 앞에서』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나중에 기회가 닿는다면 역시 읽어보고 싶다. 해방 직후 최고의 인텔리로서 당시 최고의 직장이던 ‘금융조합’에서 일하다 학문에 뜻을 두고 경성제대 조선어문학부에 입학한다. 거기서 이남덕 선생을 만나 결혼한다. 이남덕 선생도 당시 조선 여성으로서는 극소수에 포함되는 인텔리였다. 남편이 죽은 후 다행스럽게도 대학 교수 자리를 얻어 네 자식을 키우며 수십 년간 국문학 교수로 일했다.
 
그래서 지은이의 가족사는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과 매우 밀접하다. 모친은 죽은 아버지의 일기를 수십 년이 지난 1987년에 자식들에게 보여주었다. 모친이 일기를 뒤늦게 내놓으면서 밝힌 이유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흔적을 마흔이 넘어 처음 본 지은이는 그 일을 계기로 어머니를 더욱 미워하게 된다. 일기를 묶어 책으로 낸 이도 지은이다.
 
(…) 가까운 사람끼리는 즐거움만이 아니라 괴로움도 함께 나눈다는 사실. 운명이 주는 괴로움은 아끼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가장 통렬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운명에 대한 원망이 아끼는 사람에 대한 원망으로 모습을 바꿔서 나타나기 쉬운 것이다. 어떤 고통 앞에서도 주어진 인연을 등지지 않는 것, 그것이 인간으로서 나 자신을 지키는 길이다. 11쪽
오늘 어머니를 뵙고 돌아오면서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산다는 게 무엇인가. 이 세상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애틋한 마음 일으키고 베푸는 것을 넘어서는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합리적’ 사고라는 것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구석이 많기는 하다. 그러나 삶의 의미 전체를 합리적 사고 아래 놓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어머니가 얼마나 더 오래 이승에 계시든 내가 붙어 있지 않아도 나름대로 어느 정도 편안하고 즐거운 생활을 영위해가시리라는 것은 합리적 판단일 수 있다. 그러나 어머니가 내 존재를, 그리고 나와의 시간을 아끼고 즐기시는 것보다 더 절실하게 내 존재와 시간을 필요로 하는 다른 일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이것은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333쪽
 
나이 육십의 아들이 아흔 된 모친을 시병하는 모습. 어머니가 쓰러지고 나서야 처음으로 어머니 얼굴에 뽀뽀를 하는 아들. 마음속 미움이 점점 사라지고, 아들 된 도리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즐거워 매일같이 모친 곁에 머무르는 자신을 보며 지은이는 많은 것을 깨닫는다. 어머니의 삶도 더 넓고 깊게 이해하게 된다. 위 발췌문에서 보듯 이는 곧 보편적인 인간 삶에 대한 깨달음과 성찰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이 책은 어머니의 일상을 대신 기록한 일기에서 더 나아간다. 세상과 삶에 대한 가치관, 타인을 대하는 태도 모두가 바뀌는 과정을 담은 육십 먹은 아들의 일기이기도 하다. 
 
책 속 문장은 거의 다 높임법으로 되어 있다. 어머니 일상을 대신 기록하는 일기이니 당연하다. 사실 요즘 한글맞춤법을 뜨문뜨문 공부 중인데 띄어쓰기를 보며 경악하던 참이었다. 높임말 어미까지 결합했을 때 본용언과 보조용언, 보조동사 같은 것들이 어떤 식으로 부고 떨어지는지 문장 하나하나가 예시나 다름없다. 독서 초반부만 해도 서술부 형태와 띄어쓰기에 신경이 쓰여 내용에 집중이 안 될 정도였다. 물론 지은이도 글로 먹고 산 분이시지만 편집자도 꽤 고생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은이가 어머니와 나누는 대화를 보며 발견한 게 하나 있다. 지은이가 대화할 때 말하는 방식과 내용이 최근 읽은 『비폭력 대화』와 아주 비슷하다. 아니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같다. 요양원에 모시기 전까지는 이남덕 선생님의 기억력과 사고력이 쓰러지기 전으로 회복되지 않았었다. 그래서 대화를 나눌 때면 말뿐만 아니라 표정과 눈빛, 몸 상태 전체를 살펴야 했다. 어머니가 뭐라 말을 하면 지은이는 비폭력 대화의 네 가지 요소, 관찰 느낌 욕구 부탁 을 온전히 갖추어 대답한다. 이런 식이다. 어머니가 어떤 말을 하거나 몸짓을 하면, 무엇을 보고 그러는지(관찰) 확인한 다음, 어머니의 감정이나 심리를 묻고(느낌), 어떤 욕구에서 비롯되었는지 확인하고(욕구), 어머니가 바라는 바를 구체화하여 되묻는다(부탁). 지은이가 『비폭력 대화』를 읽고 익히진 않았을 것 같다. 삶에서 얻은 경험과 지혜 그리고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스스로 터득했으리라 생각한다.
 
지은이는 어머니 삶을 아름답고 덕스러운 것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어머니가 보였던 실수나 남(지은이를 포함해)에게 준 상처도 애써 숨기지 않는다. 역사학자답게 본인이 알고 이해한 데까지만 바탕으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은이가 전하는 이남덕 선생님의 모습은, 아름다워 보였다. 특히 일주일이나 이주일 만에 아들을 보았을 때 어머니 얼굴에 떠오르는 웃음, 미소, 환한 기운을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차 올랐다. 정신적으로는 건강을 거의 회복하신 뒤 아들 데리고 장난을 치시는 모습에선 웃음이 나와 혼자 뒹굴기도 했다. 쉽지 않았을, 어쩌면 힘겨웠을 평생을 보내고 난 뒤에 보여주는 선생님의 모습은 ‘진짜’다. 그래서 여느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과는 다른 무게가 있다.
 
(…) 노랫가락으로 이야기하시는 까닭이 뭐냐고 나중에 형이 여쭐 때는 웃음을 잠깐 거두고 보통 화법으로 대답하셨다. “말하면서 산다는 게 너무 힘들어.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 이젠 노래나 부르고 살겠어.” 257쪽
햇볕과 바람과 꽃. 그것으로 어머니는 더 바랄 것 없이 행복하시다. (…) 이건 외워둬야겠다, 마음먹고 기억해둔 대목이 하나 있다. “인생이란 게요, 지내다 보면 아름다운 것들을 갈수록 더 많이 찾아내게 된단 말입니다.” 342쪽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사람 가리지 않고 주기 딱 좋다. 나처럼 부모와 오랫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람이더라도 느끼고 얻는 게 많을 것이다(관계 회복 여부를 떠나서). 책의 만듦새도 훌륭하고, 표지도 나무랄 데 없다. 지은이가 말하듯 서해문집에서 책 하나 참 잘 만든 것 같다. 짝짝짝! 


Posted by 권고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