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대화
카테고리 인문 > 심리학
지은이 마셜 B. 로젠버그 (바오출판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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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보자. 책머리에 구입한 날짜를 적어 놓았다. '08.03.15.' 2008년 3월 15일. 휴학하고 작은 대학생 단체에서 막 일을 시작한 때였다. 책발에 찍힌 작은 도장으로 봐서 홍익문고에서 샀다. 삼 년 하고 육 개월이 넘어 읽은 셈이다.
 
내 책꽂이는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읽은 책과 읽을 책. 읽을 채은 언제나 열다섯 권 언저리다. 크게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손안에 들어온 지 최대 일 년이면 다 읽는다. 이 책을 예외적으로 오래 기다리게 한 이유는, 지금 생각해보면 두 가지였다. 첫째, 재미없을 것 같아서. 둘째, 불편해질 것 같아서.
 
첫째 이유는 이 책이 자기계발서라는 점과 관련 있다. 자기계발서란 대체로 저자가 직접 이래라 저래라, 가르치고 훈계하기 바쁘다. 어떤 목적을 이루려면 자기 방법을 독자가 한시바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기다 나는 대부분의 자기계발서가 애타게 추구하는 목적들에 동의하지도 공감하지도 않는 편이다. 더 많은 돈,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성공, 더 많은 인정 등등. 그러니 수많은 저자들의 시시콜콜한 가르침에도 거부감이 든다. 다만 '비폭력 대화'라는 목적에 뜻이 통해 구입한 것이다.
 
나는 말을 심하게 하곤 한다. 상대의 말에 울컥할 때, 타인의 비난(처럼 느껴지는 많은 것들)을 방어하고 싶을 때 자주 그런다. 그러고 나면 항상 후회한다. 내가 왜 그랬을까. 숨 한 번 쉴 만큼만 참았다면. 버릇을 고치고 싶었다. 한편 그래서 책 읽기를 자꾸 미루고 싶었던 것 같다. 못나고 잔인하고 이기적인 나와 대면하는 일은 그리 달갑지 않다. 사람에게서 직접 지적당하는 것보단 낫지만 책이라고 기꺼이 받아들이긴 힘들다. 내 입에서 튀어나왔던 잔인한 말, 부당하게 분풀이했던 일, 그렇게 상처 줘 등지고 만 사람들의 얼굴을 떠오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애초 예상대로 구체적인 실천 지침을 담고 있다. 먼저 나 혹은 상대의 발화를 불러일으킨 구체적인 사실을 '관찰'하라. 관찰에서 비롯된 나 혹은 상대의 '느낌'(감정)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라. 나 혹은 상대의 어떤 '욕구'에서 그런 느낌이 생겼는지 따져보라. 그리고 그 욕구를 해결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나 혹은 상대에게 부탁하거나 요청하라. 관찰, 느낌, 욕구, 부탁. 이 네 가지가 비폭력 대화의 핵심이다. 각각의 과정을 어떻게 수행할지 설명하고 직접 경험한 사례를 든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대화란 남과 나눌 뿐 아니라 나 자신과도 나누는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비폭력 대화는 나 자신을 보살피는 데도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아래 발췌한 구절은 모두 우리가 자신과 비폭력 대화를 수행할 때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을 담고 있다. 
 
(...) 나는 이 선생님에게 "교육청의 방침 때문에 성적 평가를 해야만 한다"는 표현을, "나는 ~을 원하기 때문에 성적 평가를 하기로 선택했다"고 바꿔서 말해보라고 제안했다. 그 교사는 "나는 내 직업을 유지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성적 평가를 하기로 선택했습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재빨리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내가 하는 일에 책임감을 느끼게 하거든요."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당신이 그렇게 말하기를 바라는 겁니다." 43쪽
 
저자는 이 방법을 단계별로 제시한다. 소개하면 이렇다.
"~해야 한다"를 "~을 선택한다"로 바꾸기
1단계: 아주 하긴 싫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해야만 한다고 말해온 일을 모두 적어보자. "내가 처음으로 그것을 적어보았을 때, 그 목록이 얼마나 긴가 보고는 왜 내가 대부분 시간에 인생을 즐기지 못하면서 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2단계: 이런 일들을 꼭 해야만 하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그것들을 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한다는 것을 명백히 인정한다. 항목마다 "나는 ~을 하기로 선택한다"로 토를 단다(저자의 말에 따르면 무지막지한 저항감을 불러올 수 있다). 
3단계: 그 선택 뒤에 있는 동기를 찾아낸다. 그리고 각 항목을 다음과 같이 다시 쓴다. "나는 ~을 원하기 때문에 ~을 하기로 선택한다." "돈이 근본 동기라는 것을 인식하자, 나는 바로 경제적인 수입을 보충할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임상보고서 하나를 더 쓰느니 아무리 험한 일이라도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198~199쪽)
 
본문에서 예로 든 나치 전범 아이히만 역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히만을 포함한 나치 고위 관료들은 자기 조직의 언어를 따로 이름 붙였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관청 용어' '사무 용어' 쯤 된다. '윗사람(조직)이 명령했으므로 나는 그것을 해야 한다. 따라서 일 자체나 일의 결과는 내 책임이 아니다.' 저자는 비폭력 대화를 적용해서 우리 자신의 선택과 책임을 드러내자고 주장한다. 그래야 선택의 동기를 명확히 인식하고 따져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에게 의미하는 바가 많은 대목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해야만 한다"나 "하지 않으면 안 된다"와 같은 명령에 굴복하기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다. (...) 비폭력 대화의 기본 전제 중 하나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가리켜 글렀다든가 나쁘다고 할 때, 우리가 정말로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의 행동이 우리의 욕구와 조화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란 것이다. 만약 우리가 비판하는 상대가 자신일 경우, 우리가 실제로 말하는 것은 "나는 지금 나 자신의 진정한 욕구와 조화되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다"이다. 192쪽 
 
특히 화가 날 때와 같이 같이 힘든 상황에서 비폭력 대화를 활용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다음과 같이 연습할 것을 권한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의 분노는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비판이나 꼬리표 달기, 그리고 비난하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자신의 머릿속에서 제일 자주 떠오르는 "나는 ~한 사람이 싫다"는 비판적인 말을 단서로, 머릿속의 이런 부정적인 비판을 다 열거한 후 자신에게 물어본다. "내가 저 사람을 이렇게 비판할 때, 내가 원하는데 갖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보다는 자신의 충족되지 못한 요구에 기반을 두고 생각하도록 훈련할 수 있다. 222~223쪽
 
타인을 비난할 때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흔히 "니가 잘못했기 때문에 혼내는 거야"라고 말한다. 비폭력 대화에 따르면 이는 나의 행동이나 감정의 책임을 타인에게 씌우는 대표적인 방식이다. 타인의 행동을 도덕주의적으로 재단하는 것이다. 이 말을 비폭력 대화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먼저 직접 관찰한 상대의 행동을 밝혀주고 거기에 동의하는지 확인한다. 그 다음 그것이 내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러고 나서 중요한 것은 타인의 그런 행동이 나의 어떤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음을 인식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것이다. 자기 행동에는 결과가 따르고 스스로 책임져야 함을 가르쳐주고 싶다는 욕구 같은 것 말이다. 그 다음에야 자기 행동의 책임을 인정할 것으로 부탁/요청한다 등등.
 
그밖에 비폭력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여러 이점이 있다. 옮긴이 후기와 각 장 별로 소개된 경험담을 읽고 나니 무척 마음이 동했다. 서평을 쓰다 아직 나 자신이 비폭력 대화를 완전히 습득하지 못했음을 알게 됐다. 결국 비폭력 대화의 핵심을 요약 정리한 표를 본떠서 손바닥만한 크기로 만들었다. 주머니나 지갑에 넣고 다니려 한다. 읽는 사람마다 하나씩 얻을 게 있는 책이다. 기회가 닿는 대로 여러 친구들에게도 추천해 봐야 겠다.

 
덧. 글의 처음과 끝이 매우 다르다. 부끄럽게시리.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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