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 씨의 새 책이 나왔다. 고종석 씨가 추천사를 쓰셨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녀는 인세의 절반을 기부하기로 했다. 도서관에 반납한 뒤라서 기부처를 확인할 수 없다. 몇몇 비정규직 장기투쟁사업장이 포함되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많이 팔리는 것도 아닐 텐데, 그녀의 서울살이란 책에서 볼 수 있듯 언제나 가난하고 팍팍했을 텐데. 

이번 책은 저자의 서울살이 십여 년에 대한 에세이를 모았다. 어릴 적 살았던 남대문, 대학에 들어가 살게 된 왕십리, 그리고 옥수동. 
왕십리와 옥수동은 몇년 전 재개발이 시작됐다. 그가 살았던 집도 자주 갔던 순대집도 치킨집도 사라졌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일부를 계속 해서 잃어 왔다. 사랑을 잃어 왔다. 그녀는 지금 어디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어디든 좋다, 모두 다 사라지지만 말아라. 내 곁에 있기만 하여라. 

충격적일 정도로 내밀한 고백들이 책 안에 있다. 저자의 삶은 아주 강렬하다. 그녀는 계속 글을 썼고 책을 냈다.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만큼 적나라한 삶을 경험해본 사람은 적잖을지 몰라도, 그만한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 지나쳐 가라. 반드시 그칠 날이 올 것이다. 그 희망만이, 내 편이다. 그것만이 내 것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도 그 희망만은 내 것이다, 옳지, 이것만은 내 것이다. 하나도 갖고 있고 싶지 않았던 그 망할 놈의 기억들과 함께. 그것들과, 이 집 술만은 고요히 내 곁에 있다. 
오직 이것만이 내 편이다. 296~298쪽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이 문장들과 닿을 만한 어떤 것이 내 안에도 있나 보다. 내 것, '유일한 나의 무엇', '내 옆에 머무르리라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나의 편'을 오랫동안 찾았었다. 사람은 중요하다. 친구는 나의 일부이자 내 존재의 경계의 기둥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언제나 혼자다. 나도 그도 서로가 서로에게 개입하기를 꺼린다. 그 무모한 짓을 쉽사리 하려고 하지 않는다. 친구란 내 경계의 기둥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경계 안쪽, 들판의 가운데에 서 있어야 하는 기둥은 다른 누군가로부터 비롯되어선 안 된다. 오로지 나로부터 비롯되어야... 이게 무슨 소리람. 

어쩌면 불쌍하면서 무섭기까지 해서 두 배로 슬펐는지도 몰랐다. 어찌할 수 없는 슬픔, 상상할 수도 없는 슬픔은 두려움을 동반하기 마련이니까. 슬픔과 두려움이란, 사실 그렇게 착 붙어 있는 거였다. 23쪽

옥수동을 떠나던 날도 다른 날과 다르지 않게 스산했다. 검둥이의 뺨에 내 뺨을 대고 누웠다. 검둥이가 고개를 들고 얼굴을 핥았다. 그럴 때면 아주 조금, 손톱만큼은 구원받은 기분이 들었다. (…) 검둥이는 알아들었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얼굴을 싹싹 핥더니 이부자리 위에 냉큼 드러누웠다. 162쪽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주위에는 다이어트하려고 하는 거라고 온갖 엄살을 떨었지만 울화를 식혀보려고 그 짓 한다는 것보다 그렇게 말하는 게 훨씬 덜 비참했다. 한의학에서는 걷는 것이 마음에 쌓인 심화를 내려주는 가장 빠른 길이라 했다. 216쪽

다른 거 다 떠나서. 여기에 발췌한 구절들을. 나는 진심으로. 내 온 마음으로. 모두 다,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뜨겁게안녕도시의힘없는영혼들에대한뜨거운공감과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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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현진 (다산책방,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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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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