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을 택한 이유는 책이 유일한 스승이어서가 아니라 책이 언제나 내 옆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몰라 힘들고 막막할 때 내 손을 잡아준 것이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책에서 구한 것은 가르침이 아니라 위로였는지도 모릅니다. 책에서 세상의 이치나 인생의 진리를 발견했다고 믿은 적도 있습니다만, 또 다른 책이 번번이 그걸 무너뜨린 걸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마녀'라니, '처방'이라니! 인터넷서점에서 책 고르듯 제목만 보고 말았다면 읽을 일 아마 없었을 거다. 마녀는 뭔 마녀래 생뚱맞게, 대체 처방은 뭘 처방하겠대? 홍익문고 1층에서 책을 뒤져보다 발견했었다. 서평집 자체가 꽤 드무니까 어떤 책인가 싶어 한 번 살펴 보았다. 읽어본 책이 몇몇 눈에 띄고 서평 도서 목록이 심상치 않아 오, 싶었다. 


<순례자의 책>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김이경 선생님 책이다. 

처음에는 그의 이력에 눈길이 갔지만, 이렇게 서평집까지 읽고 나니, 전적으로 신뢰할 만한 서평가로 삼기로 했다. 저자는 거의 하루도 빼먹지 않고 도서관에 간다고 한다. 대체로 도서관에는 신간 서가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각종 매체의 서평란이나 서평지를 참고해도 언제나 소리소문 없이 묻히는 책은 있기 마련이다. <마녀의 독서처방>에는 저자가 그렇게 해서 새롭게 발견한 책이 상당히 많이 소개되어 있다. 나도 블로그/각종 매체의 서평란/서평지를 꾸준히 접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처음 보는 책이 적잖아 순식간에 부끄러웠다. 


존댓말로 쓰여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괜히 말도 길어지고, 불필요한 살이 덧붙기 쉽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나 어렵지 않다. 아주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여느 말랑말랑한 산문집처럼. 그런데 읽다 보면, 글쎄. 행간에서 저자의 비관, 절망, 좌절을 엿볼 수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마녀의 독서처방>이 지성의 낙관을 일깨울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말한다. 지성의 낙관 이라니. 무학의 통찰에 세상이 박수치는 시대에. 지성의 낙관. 누구도 이성과 합리를 신뢰하지 않는 상대주의의 시대에. 보편과 이성을 여전히 붙들겠다는 의지로 읽었다. 


전체적인 느낌 하나를 꼽으라면, '우아하다'고 말하겠다. 저자의 서평은 하나같이 우아하다. 군살 없이, 은근하면서, 외롭고, 아름답다. 그러면서 사회적으로 적절하다. 문학과 비문학의 비중이 고르고, 논픽션에서 인문학 / 사회과학서까지 두루 소개한다. 신간과 구간을 가리지 않는다. 이만큼 수준 높은 서평가는 찾기 힘들지 않을까. 프레샨북스에서 필자로 섭외하면 참 좋을 텐데. 무슨 사정이 있으신가. 내가 연락해볼까. 


나라면 이 책을 두고 '마녀', '처방', 그리고 요런 로맨스소설스러운 디자인은 입히지 않았을 거다. 속지 디자인도 어찌나 화사한지. 이렇게 우아한 책을 두고. 

다음 책 언제 내실려나. 엄청 기다려진다. 


가슴에 원망이 쌓일수록 말을 멈추고 책을 펼치랍니다. 고칠 수 없는 남의 허물을 들추기보다 고쳐야 하는 제 허물에 마음을 쓰라고 합니다. 그것만이 부끄러움을 더는 길이라고요. 더는 부끄럽지 않기 위해 이제는 입을 닫아야겠습니다. 160쪽


책의 쓸모를 믿습니까? 나는 믿습니다. 느닷없이 봉변을 당한 마음을 달래주는 것도, 다리미 대신 양복 바지의 날을 세우는 것도, 딱딱한 책상에서 베개 노릇을 해주는 것도, 팔팔 끓는 라면 냄비를 받쳐주는것도 책입니다. 참으로 쓸모 많은 물건이지요.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책의 가장 큰 쓸모는 침묵을 견디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말문이 막힐 정도로 기막힌 일을 당했을 때 그 막막한 침묵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책입니다. 317쪽




마녀의 독서처방

저자
김이경 지음
출판사
서해문집 | 2010-08-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독서가 마녀가 특별한 책을 처방해 드립니다!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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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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