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읽었다. 1936년에 쓴 작품. 이 르뽀를 다 쓰고 오웰은 스페인으로 향한다.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는 영국 북부의 탄광 지대를 직접 발로 뛰며 쓴 취재기다. 광부들을 만나고, 그들의 집을 방문하고, 막장에 직접 들어간다. 2부는 '민주적 사회주의와 그 적들'라는 제목이다. 정치 평론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민주적 사회주의자' 조지 오웰이 당대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에게 보내는 글이다. 


그리고 내가 본 그 순간 동안, 내가 익히 본 적이 없는 어둡고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나는 "우리가 느끼는 것하고 똑같이 그들이 느끼는 건 아니다"라고 한다면, 그리고 슬럼에서 자란 사람들은 슬럼밖에 상상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건 우리의 오산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때 내가 그녀의 얼굴에서 본 것은, 까닭 모르고 당하는 어느 짐승의 무지한 수난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모진 추위 속에, 슬럼가 뒤뜰의 미끌미끌한 돌바닥에 꿇어앉아 더러온 배수관을 꼬챙이로 찌르고 있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운명인지를, 내가 알듯 그녀도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28쪽


1부의 취재기는 문학적 완성도라는 면에서 뛰어날 뿐만 아니라, 실제 당시 영국의 주거 현황을 살피는 사료로도 활용된다고 한다. 그만큼 세밀하고 현실에 밀착되었다는 뜻이다. 이 책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도 1부의 탄광 묘사다. 직접 허리를 굽히고 수 킬로미터를 걸어 막장을 다녀온 경험을 글로 썼다. 정말이지, 엄청나게 생생하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광부들이 물 한 대야로 상반신을 씻는 순서까지 적었다. 목욕탕 하나가 탄광마다 마련된다면 광부들이 얼마나 편안해 할지 알려준다. 


적어도 지켜보는 동안에는, 우월한 인간들이 계속 우월하기 위해서는 광부들이 피땀을 흘려야만 한다는 자각을 똑똑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우리 모두가 지금 누리고 있는 비교적 고상한 생활은 '실로' 땅속에서 미천한 고역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빚지고 얻은 것이다. 눈까지 시커메지고 목구멍에 석탄가루가 꽉 찬 상태에서 강철 같은 팔과 복근으로 삽질을 해대는 그들 말이다. 49~50쪽


2부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맞아. 저 먹물들, 사회주의자들. 

옮긴이의 말, 너무 길다. 스스로 "긴 뒷글로 독자를 괴롭혀드린 건 아닌지 송구스러운 마음"이라고 밝힌다. 오웰의 삶과 저서, 당시의 시대적 배경, 후대에 와서 오웰의 이 저작이 어떤 가치를 인정받았는지, 등을 알려주는 건 충분히 의미있다. 하지만 본문을 침범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길고, 옮긴이 개인의 정치적 관점과 평론까지 담는 건 과하다는 생각도 든다. 

읽은 지 2~3주가 지나고 나니 읽던 당시의 흥분은 가라앉는다. 앞으로도 꾸준히 르뽀를 찾아 읽을 생각이다. 논픽션 하면 미국이라는 걸 요즘 알아가고 있다. 정말 많구나. <인 콜드 블러드>를 매번 사야지 사야지 하면서 못 사고 있는데, 얼른 읽어보고 싶다. 



위건부두로 가는길

저자
조지 오웰 지음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 2010-01-1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조지 오웰이 영국 북부의 탄광 지대에서 겪은 생생한 체험담노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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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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