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국가 - 소말리아 어부들은 어떻게 해적이 되었나

피터 아이흐스테드 지음 | 강혜정 옮김 | 미지북스 | 2011년


르포르타쥬. 소말리아 해적과 관계된 거의 모든 사람을 만난다. 

소말리아 국내 정치가 이렇게 복잡한 줄 처음 알았다. 한국인이 흔히 말하는 '소말리아'는 사실 세 개의 지역으로 나뉜다. 홍해로 들어가는 아덴 만에 인접한 '소말릴란드', 그 옆 아프리카의 뿔 끄트머리에 위치한 '푼틀란드', 그 아래 모가디슈가 포함된 '소말리아'. 소말릴란드는 최근 소말리아 해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 주체로 주목받고 있다. 세 나라 중 치안이 그나마 가장 안정된 곳이기 때문. 하지만 1991년 독립을 선포한 뒤로 소말릴란드를 국가로 승인한 나라는 아직 없다. 국제 원조, 지원 등으로부터 고립된 상태다. (소말릴란드 , 푼틀란드 

'블랙 호크 다운'의 무대 모가디슈가 위치한 '소말리아'는 지금도 거의 내전 상태다.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 세력('알샤바브')과 과도연방정부 간의 전투가 치열하다. 알카에다 같은 국제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이 알샤바브를 신병 훈련, 무기 제공 등으로 후원한다. 아덴 만 건너편 예멘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한겨레 토요판 '예멘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소말리아 해적들이 어쩔 수 없이 해적 행위로 내몰리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는가?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해적 행위의 근본 원인이 가난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난의 원인은 소말리아 해역에서의 불법 어업, 유독성 폐기물 투기, 그리고 가뭄이다. 212쪽


소말리아에는 사실상 '국가'가 없다.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와 거의 흡사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국가'라는 정치체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경찰, 군대, 행정 같은 것이 한 사회를 어떻게 지탱하고 있는지. 소말리아 앞바다는 원래 해산물이 풍부한 곳이다. 1990년대 초의 내전으로 국가가 사실상 부재한 상태가 되자, 예멘을 비롯한 인근 나라의 어부들과 각종 외국 어선이 소말리아 앞바다를 누비고 다녔다. 오늘날 소말리아 해적들 대다수는 이로 인한 어업 생산량의 감소가 해적 행위를 유발했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만나본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해적 행위의 초기에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해적은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사회적 행위다. 

불법 어업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유독성 폐기물 투기'다. 2004년 쓰나미가 인도양을 휩쓸었다. 소말리아도 큰 피해를 입었다. 쓰나미가 끝난 뒤에 소말리아에 남겨진 것은, 해변의 막대한 '쓰레기'였다. UN 조사관들의 보고서에 따르면 "소말리아 연안의 유해 폐기물 투기는 1980년대에 시작되어 내전 시기까지 계속되었다. 방사성 우라늄 폐기물, 납, 카드뮴, 수은, 산업 폐기물, 병원 폐기물, 화학 폐기물, 가족 가공에 쓰이는 약품, 기타 유독성 폐기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폐기물 투기가 '불법'적으로 자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조사관들은 "'유해 폐기물 처리에 관한 계약'이" 오래도록 지속된 소말리아 내전이 한창인 시점에서 논의되고 타결되었다는 점에서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라고도 지적했다." 내전이 한창인 시기에, 누가(군벌인지 정부 관료인지) 협력했는지도 모호한 협약으로 자국 앞바다에 핵 폐기물을 포함한 유해 폐기물이 합법적으로 버려지고 있었다. 


협상이 타결되면 몸값은 납치된 선박의 갑판 위에 떨어뜨려주는 것이 상례다. 배에 타고 있던 해적들은 그 자리에서 돈을 나눈다. 비율이 항상 같지는 않겠지만, 유엔 감시단에 따르면 납치범들은 통상 30퍼센트를 갖는다. 납치범들끼리는 전체 금액을 균등하게 분배한다. 다만 처음 배에 오른 사람, 즉 '점퍼'는 두 배 혹은 별도의 '보너스'를 받는다. 보너스는 현금일 수도 있고 도요타 랜드크루저 같은 물품이 될 수도 있다. 동료와 다툼을 벌인 경우에는 벌금을 문다. 작전 도중에 사망한 해적의 가족에게는 보상금을 지불한다. 그리고 배가 정박된 항구에서 배를 지키는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10퍼센트를 갖는다. 지역 사회 협력자들은 10퍼센트를 갖는데, 여기에는 부족 장로, 지방 관료, 해적과 동료들을 묵게 해준 주민 등이 포함된다. 돈을 댄 자본가가 20퍼센트를 가져가며, 정치권의 협력자들과 이익을 나누기도 한다. 납치 후원자가 30퍼센트를 갖는다. 106쪽


현재 소말리아의 해적 행위는 수익률이 매우 높은 '사업'이나 다름없다. 소말리아 현지의 청년들에게도, 자본가들에게도, 정체 모를 '손'들에게도. 세계 각국의 번쩍번쩍한 군함이 인도양 전역을 감시한다고 해도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나이지리아 삼각주 유전의 풍경을 보여준다. 부패한 정부, 석유 대기업, 유전 인근 빈민들 간의 갈등과 다툼을 다룬다. 한 이탈리아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추적하기도 한다. 이탈리아는 소말리아 앞바다에 폐기물을 버리는 대가로 무기를 공급했고, 이 사실을 취재하던 이탈리아 기자는 총에 맞아 사망했다.

세계에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너무 멀리서 일어나는 일이다. 한국에선 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난 더 알아볼 마음이 없다. 그러고 싶지가 않은데. 




해적국가

저자
피터 아이흐스테드 지음
출판사
미지북스 | 2011-11-04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소말리아 해적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수많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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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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