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은, 북스피어에서 만든 경품, 마쓰모토 세이초 200자 원고지. 이런 출판사다.) 


출판계에서 연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북스피어 http://booksfear.com/475 에서 나온 책. 아마 트위터의 소개글을 통해 처음 알았을 것이고, '논픽션'이라는 단어에 이미 구매의 씨앗이 자리잡았으며, 결국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와 같이 샀다. <인 콜드 블러드>와 함께 서평을 쓰려 했으나 아직 읽지 못했다. 주말동안 어떻게든 한 편은 써야겠다 싶어 쌓인 '읽은 책' 중 그나마 부담없어 보이는 <미스터리의 계보>를 골랐다.


책에 대한 감상보다는, '논픽션'이란 무엇인가, 이 책이 말하는 '논픽션'은 어떤 글을 의미하는가, 지금까지 내게 논픽션적 글쓰기란 무엇이었는가, 이런 게 더 궁금했다. 본문 마지막에 실린 조영일 교수의 해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요즘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생각 하나는, 어쨌든 문학은 거짓이라는 것. 공지영 씨의 소설 <도가니>에서 불만이 싹텄다 http://gomacoma.tistory.com/367 . 이 책에 대한 장정일 씨의 서평을 읽고 더 확실해졌다. 최근에는 잠정적으로 이런 결론 http://gomacoma.tistory.com/674 . 문학은 '지식'이 아니지 않을까. 


이 블로그의 카테고리 분류인 '문학'과 '비문학'은 사전적 의미의 '픽션'과 '논픽션', 즉 탄생 당시의 의미다. '허구'와 '사실'. 이런 분류에서는 역사서도 산문도 다 '논픽션'이다. 미국의 도서 시장은 일단 책을 이렇게 나눈 다음, 그 하위분류가 있다. 한국(과 아마도 일본)에서는 이러한 분류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두 나라는 논픽션을 그와 같은 큰 범주가 아니라 보다 작은 범주, 고유의 형식이 있는 비문학적 글 로 이해하는 듯하다. 아래의 인용문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단 이 책의 '논픽션'은 '추리 소설적 구조를 차용한'이라는 의미로 덧붙여서 이해해야 한다. 일본에는 이와 같은 글이 상당수 존재하는 모양이다. 이 책은 추리 소설의 구조와 무척 유사하다. 드러나 있는 사소한 단서, 구체적인 장면과 정보에서 시작해 의미를 품은 덩어리 - 진실 같은 단어로 부를 만한 - 를 향해 나아간다. 


조영일 교수는 "한국에서 논픽션이 발달하지 못한 것은 사회소설(노동문학/민중민족문학)이 쇠퇴한 후, 티브이 시사다큐가 사실상 그 역할을 대신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서사구조는 기본적으로 추리소설의 그것을 따르고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 제시되고 왜 그런 사건이 일어났는지 심층 취재를 통해 추적해 갑니다. 저는 논픽션을 역사서가 아닌 다큐멘터리라고 부르는 이유도 기본적으로 이런 서술구조의 유사성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그가 인용한 일본의 역사 연구가 나리타 유이치의 말이 잘 설명해준다. " (...) 하나는 마쓰모토 세이초가 문제 삼고 있는 토픽 하나하나가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 <일본의 검은 안개>에서는 결과에서 원인을 찾는 서술방법을 사용합니다. (...) 이에 반해 역사학은 원인에서 결과를 묘사하는 서술 스타일을 취합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근대문학, 그러니까 장편소설의 핵심을 리얼리즘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리얼리즘이란 허구이되 그냥 허구가 아니라 '사실과 같은 허구'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근대소설은 어떻게든 자신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것을 내세우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 문학을 둘러싼 픽션(허구)과 논픽션(사실)의 숨바꼭질은 어떤 의미에서 필연적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근대적 장편소설의 물적 토대(필자: 즉, '신문')를 살펴보는 것만으로 쉽게 짐작 가능합니다."

"'논픽션'이라는 단어 자체가 픽션과 함께 한 쌍으로 쓰이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로, 1912년 <퍼플리셔즈 위클리>가 베스트셀러를 발표할 때 '픽션과 논픽션'으로 구분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미야베 미유키가 이런 부류의 저서를 '다큐멘터리'라고 부르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 가끔은 문자 기록물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일본에서 이 단어는 논픽션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즉 이 책의 '논픽션'은 '르포르타주'와는 다른 종류의 글을 지시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온 '논픽션'은 '르포르타주'에 가까웠다. 기본적으로 '사실'을 '추적'해 나가는 글이다. 심증은 있더라도 물증이 없다면, 거짓으로 꾸며내지 않고 거기서 멈추는 태도. 추적해온 사실들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가장 잘, 가장 묵직하게 말해주리라 믿는 글쓰기.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는 글. 내게는 이런 글이 가장 아름답다.


이 책과 같은 종류("추리소설의 그것")의 '논픽션'은 처음이다. 추리 소설적인 흐름이 매우 흥미로웠다. 보편적으로 흥미로운 글쓰기 중 하나가 추리 소설이기도 하고. 독자를 사건에 몰입하게 하는 데 이만한 방법도 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쓰모토 세이초의 논픽션은 사실 좀 아쉬웠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개인과 사회를 오가며 시점을 확대 축소하는 과정에서 작가 개인의 직관과 통찰, 즉 때려 맞추기가 지나친 감이 있다고 생각했다. 도사님 말씀 같달까. 그건 실은 그런 겁니다. 물론 그의 직관에 대부분 동의하지만, 그래도 그건 그저 때려 맞추기 아닐가. 즉 '과학'도 '지식'도 아닌 거다. 나는 르포르타주가 더 좋다, 이게 더 건강한 글이라는 생각도 들고. 말하지 않을 줄 아는 글. 다 드러내지 않는 글. 그럼으로써 독자 개인이 직관하고 통찰할 수 있게 하는 글. 


일을 시작하고 난 뒤로 미국의 단행본 논픽션 시장에 대해서는 마냥 부럽다. 미국 언론산업의 구조와 역사에서 미국 특유의 시장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 같다.(출판 시장은 잠재적 필자와 독자, 생산자와 수요자가 있을 때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다. ...퇴고하면서 생각해보니, 편집자의 역할이 이런 시장을 창출하는 것도 포함된다. 무책임하게 지적하고 말 일이 아니구나.) 한국에 번역되는 인문사회과학 미국 번역서 중 아마 절반 이상이 르포르타주일 것이다. 미국 의료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파헤친다든가, 복지, 빈곤, 노동, 과학, 언론 등 거의 모든 주제를 두고 미국 출판계는 '책'으로 만들어 낸다.(여기서 '책'은, 고유한 물성과 인간의 지적 능력에 적응해오며 진화한 고유한 지식의 형태, 틀, 그릇이라는 뜻.) 굳이 '르포르타주 책'이라고 쓴 이유는, 한국에서 르포르타주는 대부분 시사주간지라는 매체(책이라는 매체가 아니라)에 담기기 때문이다. 최근에 와서 한겨레 신문 토요판은 주간지 못지않은 심층적인 기사를 담기 시작했고, 여러 종이신문이 비슷한 변화를 꾀하는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무척 반갑다. 일본에서는 르포르타주보다 논픽션이 더 강세인 것 같고, 미국은 그 반대인 듯하다. 이런 현상도 뭔가 나라마다 언론, 출판, 문화 등 산업과 문화가 어우러지면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 같은데. 한국? 르포고 논픽션이고, 뚜렷하게 분화된 시장 자체가 없다. 


사이비 같은 서평이다. 쓰면서 내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자료 없이, 조사하지 않고 쓰려니 그냥 다 짐작이고,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개념어가 부족해서 글이 지저분해지고, 단어도 정확하게 사용하지 못한다. 에구 답답해. 




미스터리의 계보

저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출판사
북스피어 | 2012-06-0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불편하지만 매력적이어서 피해갈 수 없는 순간들!사회파 미스터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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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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