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러한 역사의 교훈은 '이슬람', '기독교권', '이교도', '투르크'와 같은 단어들의 사용을 포기하는 일이 상당한 용기를 요구한다는 것, 자신과 자신의 속한 사회를 과감하게 비판할 수 있는 열린 자세를 요구한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아직까지 이러한 용기를 내지 못하는 까닭에, 이슬람 군대에게 공격 받은 기독교 유럽이라는 신화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268쪽


명쾌하고, 선명하며, 생생한 책. 위의 인용문은 저자의 문제 의식이자 이 책의 비판 지점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 지난 천년 동안 유럽과 서아시아 일대에서 있었던 기독교 국가 혹은 군주, 군대와 이슬람 국가 혹은 군주, 군대의 연합-동맹-협력의 장면을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그린다. 오늘날 서구가 가진 '이슬람'이라는 관념, 그것이 떠오르게 하는 장면, 서구인들이 가진 이슬람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등이 사실 아닌 것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8백 년이 지난 오늘날 돌이켜보아도, 아랍어를 사용하는 3천 명의 무슬림들이 용병이 아닌 독일 황제의 공식적인 신민의 자격으로 저 멀리 북쪽의 추운 롬바르디아의 평원까지 와서 이탈리아 도시들 사이의 내전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은 놀랍게 여겨진다. 그러나 단테와 아퀴나스의 시대에 알프스 산맥을 배경으로 이탈리아의 무슬림들이 밀라노와 볼로냐의 병사들과 맞서 싸우는 장면이 우리의 눈에 기이하게 비친다면 그것은 단지 역사적 무지의 산물일 따름이다. 우리가 너무도 쉽게 끌어안은 '기독교 유럽'이라는 관념, 성당을 방문할 때나 바흐의 푸가를 들을 때마다 가슴 떨리는 느낌을 선사하는 이러한 관념은 거대한 유럽의 전통 속에서 이슬람이나 유대주의의 흔적을 모두 지워버렸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역사적 기억을 말소해온 이러한 과정이 역전될 때까지, 크레모나나 페라라 같은 도시를 지키기 위해 밀라노의 군대와 맞서 싸우던 아랍인들의 모습은 앞으로도 터무니없이 느껴질 것이다. 119쪽


"역사적 무지의 산물일 따름"이라는 말이 참 인상적이다. 사실을 찾고 탐구하려 노력을 포기하는 것은 곧 게으름이나 마찬가지다. 아, 과학철학 공부하고 싶다 참말. 




십자가 초승달 동맹

저자
이언 아몬드 지음
출판사
미지북스 | 2010-06-15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기독교와 이슬람은 서로 교류하는 친구였다!우리가 알지 못했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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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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