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에 정답은 없다: 출판편집자를 위한 철학에세이
변정수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9년 

아주 재밌고 도움도 많이 된 책이다. 많은 대목에서 공감했다. 그러니까 이만큼이나 발췌해 놓았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여간 이 출판계라는 곳은 기묘한 곳이다. '편집자'들은 더 그렇다. 참 일반화하기 섣부르지만, 단일 직업군에서 이만큼 언어가 풍성하고 사회적 교양 또한 부족하지 않으며 문화생활에도 충실한, (한마디로 세계와 나와 타인 사이에서 자신만의 균형을 이미 찾아낸) 사람들은 보기 힘들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임금은 어느 업종 못지않게 박봉이며, 평균 정년은 턱없이 낮다. 

"편집자는 저자의 '스태프'이다. 편집자는 궁극적으로 '자기 소멸'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다."(237쪽) 작가도 될 수 있고, 당장 관심 분야의 대학원에 갈 만하고, 읽고 이해하는 정도의 외국어를 하나쯤(대부분 영어이긴 하나)은 다들 하는 이들이 그 모든 정신 노동의 직업과 다른 점은 단 하나, 저자의 스태프로서, 작업이 진행되어 갈수록 그 결과물이 윤곽을 드러나는 마지막 순간에 가서는 완전히 자기를 소멸하는 것이 가장 성공적인 일이라는 것. 

이 작업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판단이다.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인지 매뉴얼도 척도도 없다. 짧은 시간 안에 문제 없이 만들어 저자와 독자 모두 만족하는 책을 만들면 된다. 그 저자와 독자는 내 안에 있으므로 내 안의 저자와 독자부터 만족시켜야 한다. 그리고 가공한다. 가공은 독자를 위해 저자의 것을 가공하는 일이다. 가공을 실행하는 결정부터 가공의 정도와 수준과 척도는 모두 오롯이 내가 판단해서 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조정한다. 나는 단지 좋아요, 나빠요 하지 않고 무엇이 어떻게 나쁜지 무엇이 어떻게 좋은지를 그에게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 변정수 씨는 이를 메타언어, 라고 부른다. 

한두 해로 될 일이 아니다. 저자가 이야기하듯 지금껏 뭘 보고 듣고 읽고 말하고 생각하며 살아왔는지로 축적되는 지성의 정수다. 그래서 '편집자로 사는 것'이라 이름붙인 것이다. '편집자로 일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프레시안북스에서 시작되어 편집자들 우글대는 트위터 상에서 시끌시끌했는데, 몇몇 편집자들이 지적했듯 사실 이 둘은 다른 층위의 이야기다. 하지만 현실의 편집자들은 잦은 야근에 시달리고, 3년이 채 못 되어 회사를 옮기는 일이 일반적이고, 박봉이다. 그런데 우리보고 '편집자로 살라고'? '저녁 있는 삶'을 달라! 그러는 한편으로 마음속에 다들 '나는 책을 만든다'는 자부심을 품고 산다. 핵심적인 지점이 여기에 있다. 그 책이란 내 돈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사장의 돈과 저자의 글로 만든 것이라는 점, 그 책은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팔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그래야 나 역시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점. 그래서 나는 잘 만들어 많이 팔아야 한다. 책은 절대로 상품이다.(그러나 나는 또한 이런 믿음도 품고 있다. 우리가 지성, 이라 이름 붙이는 것은 읽고 쓰기가 받쳐져 사유함으로써 기를 수 있으며, 책은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것 중에서는 그러기 위한 최고의 형식이다.)

나 말고도 다음과 같은 생각들을 하는 친구가 있는 모양이다. 친구를 만나 너는 나와 첫 책을 내자, 고 요구하는 짓 말이다. 나도 몇몇 친구에게 그런 말을 했다. 손가락 걸고 약속한 친구도 있다. 당연히 아무한테 그러지는 못한다. 그의 말과 글을 접해본 적 있어야 하고, 그가 자신의 말과 글을 위해 현재를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와 약속한 다음 나는 속으로 다짐한다: 그때가 되었을 때 나는 너의 말과 글을 알아먹을 줄 아는 인간이 꼭 되겠다. 너의 말과 글로 책을 만들고 그걸 많이 팔 줄 아는 인간이 되겠다.(적어도 들인 시간당 최저임금만큼은 벌 수 있도록.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지만.) 그럴 줄 모르면 나는 그와 함께 책을 만들지 못한다. 다른 좋은 출판사와 다른 좋은 편집자를 소개해줘야 한다.(물론 이 일은 언제든 가능하다.) 

하여간 다짐만 자꾸 하는 내게 무척 유익했던 책이다. '능동성'과 '책임감', 내 식대로 이해하면 '성실함'으로만 에디터십의 계발이 가능할 것이라는 대목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모든 것은 '판단'으로 시작해서 '판단'으로 끝난다는 대목도.



정확히 말하자. 이 모든 문제는 텍스트의 의미를 꼼꼼히 이해하려 들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 추상적으로 말하면 편집자가 저자에 대한 책임을 놓아버렸을 때, ... 이것은 본질적으로 태도의 문제이지 지식의 문제가 아니며, 모르는 것을 가르친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 텍스트를 읽는 동안 긴장을 놓치지 않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37쪽)


의미의 구조물로서의 책을 만들어내는 과정 하나하나는, 설계도대로 시공하는 일이 아니라 설계도 자체를 완성해가는 과정일 뿐이며, 의연히 '설계자'에 준하는 판단이 요구된다. 예컨대 쉼표 하나, 토씨 하나를 넣고 빼는 일에도 주어진 '정답'은 없다. 그저 편집자의 '판단'이 있을 뿐이다. (47쪽)

판단은 판단의 주체인 자신에게만이 아니라, 그 판단을 사는 출판사에게 가치 있는 것이어야 하며, 그 판단을 통해 만들어진 책을 사는 독자에게 가치 있는 것이어야 하고, 그 판단의 가치를 믿고 저작물의 출판을 허락한 저자에게 가치 있는 것이어야 한다. ... 설득력 있는 근거가 뒤따라야 하는 까닭이다. (70~71쪽)


요컨대 경험은 조직되었을 때만 쓸모가 있다. ... 흔히 일종의 '영감'이라고 여겨지는 '직관적 통찰'의 대부분은 그저 '잘 조직된 경험'의 소산인 경우가 많다. (94쪽)


생산된 보편적 의사소통 수단으로서의 글말과 책의 상품적 완성도 사이의 긴장 위에 '가공'으로서의 '원고 교열'이 존재한다. ... 무슨 이름으로 부르건 그것이 본질적으로 저작물의 훼손임에 분명하다면, 그 한계는 정확히 그 정당한 목적에 부합하는 데까지이다. 책의 상품적 완성도를 높인다는 목적, 의사전달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목적에 부합해야만, 그것을 '훼손'이 아닌 '교열'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123쪽)


오로지 내 삶에 깊숙이 작용하는 말에 한해서 그 의미를 포착하려 애쓸 뿐이다. ... 요컨대 자신의 삶(삶 속에서의 구체적 필요)과 유리된 텍스트로는 말을 제대로 배울 수 없다. (138쪽)


그 엄연한 사실을 망각할 때 교열은 훼손이 된다. 디자인에 절제가 필요한 이상으로 교열에 절제가 요구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166쪽) 편집자로 하여금 절제할 수 있게 하는, 완벽주의와 절제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게 한 힘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저자에 대한, 자신이 가공하는 텍스트에 대한 '토씨 하나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는 존중 어린 애정이다. (167쪽)


편집자의 가공작업이란 전략적 행위이다. ... 가공작업의 준거는 오로지 그 책이 누구에게 어떤 목적으로 전달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편집자의 전략적 판단에 있다. (169쪽)


글쓰기를 게을리 하는 편집자는 적어도 가공능력 향상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 같은 내용의 문장을 놓고 30개 이상의 변형된 버전을 만들어보는 훈련을 일상적으로 해보기 바란다. (177쪽)


사람은 누구나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낯선 상황에서는,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무서운 것은 바로 그것이다. '내가 알고 있던, 내가 나라고 믿고 있던 나'와는 다른 '낯선 나'를 발견하는 것. 낯선 상황이나 낯선 사람, 낯선 대상이 아니라 너무나 익숙하다고 믿어왔던 자기 자신에게서 '이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 결국 언제나 문제는 자신의 존재를 세상 안에서 얼마나 상대화할 수 있는가이다. (208쪽)


메타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는 것은 섬세한 가공능력의 핵심적 관건이기도 하다. 편집자가 일종의 '비평가'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비평언어야말로 대표적인 메타언어이다. (215쪽)


텍스트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기실 자신과 대화하는 데 가장 유력한 매개는 독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책에 씌어 있는 내용을 알게 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내용이 자신의 삶에 던지는 질문에 진지한 대답을 마련하는 대화의 과정이 독서이다. 어떤 외부의 정보(자극)에 대해서도 그것을 자신을 향한 질문으로 변형시킬 줄 안다는 것, 바로 거기에서부터 메타언어를 창출하는 메타적 시선이 시작된다. 그 수많은 질문들이 '나'를 그저 '나'인 채로 내버려두지 않고 치열하게 '자기설명'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이끌어줄 것이다. (219~220쪽)


다시 강조하지만 '에디터십'의 본질은 누가 뭐래도 '능동성'에 있다. 에디터십의 위기는 능동성의 위기이며, 편집자라는 직업적 커리어를 통해 에디터십을 성장시켜간다는 것은 더욱 능동적인 사람이 되어간다는 뜻이다. 대상으로서의 텍스트에 대해서건 상황으로서의 출판환경의 변화에 대해서건, 스스로 능동적으로 대상/상황을 장악하지 못하는 편집자에게는 아무런 발전의 여지가 없다. (22쪽)

그렇다면 '능동성'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나는 사람을 능동적으로 만들어주는 심리적 동인을 '책임감'에서 찾고 싶다. 물론 어느 직업치고 '책임감'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없겟지만, '능동성'의 이면을 굳이 '책임감'이라고 지목하는 것은 에디터십의 계발을 염두에 둔 탓이다. (31쪽)





편집에 정답은 없다

저자
변정수 지음
출판사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9-09-25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편집에 정답은 없다』는 출판 현장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기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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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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