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 타운 - 양쯔 강에서 보낸 2년

피터 헤슬러 지음 | 강수정 옮김 | 눌와 | 2003년 (원작 2001년)


트위터의 한 이웃이 추천한 책.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런 책은 좀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는 말에 고민하지 않았다. 생일 선물로 받았으면 하는 책으로 올려놓았고, 목록을 본 친구가 선물했다. 2003년이니 십 년 전에 나온 책이다. 신국판보다 조금 더 큰 판형, 490여 쪽의 두께. 

내게 선물하기 전에 친구는 먼저 읽고 꽤 괜찮은 책이라고 했다. 책을 다 읽은 나도 그에게 참 괜찮은 책이라고, 너무 좋은 책이라고 답했다. 미국 현지에서는 꽤 큰 인기를 얻었고, 2011년에 발표한 <컨트리 드라이빙>(중앙북스)은 아마존 베스트셀러에도 올랐다. 우리는 현재의 판매 지수로 짐작한 한국에서의 판매 부진을 잠시 분석했다. 친구는 표지가 패착이라고 했고, 나 역시 공감하며 제목 역시 아쉽다고 덧붙였다. 리버 타운, 이라는 제목은 책의 내용에 적절하고 부제 역시 명료하게 내용을 요약한다. 하지만 모호한 제목과 건조한 부제가 결합되어 결국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느낌이다. 

무엇보다 한국에서는 이런 종류의 책, 국제정치와 관련된 책들은 대체로 판매가 부진하다. 일단 한국에서 이런 종류의 글이 하나의 장르로 독자들의 머릿속에 뚜렷히 자리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바다 건너 나라 사람들의 삶의 풍경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나는 이를 한국인들의 특성으로 치부해왔는데, 한 선배가 다른 가설을 내놓았다. 한국인들에게는 식민 지배의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서구에서 인류학 같은 것, 이런 기행문 같은 글의 역사 자체가 제국주의 식민 지배와 함께 시작된 것 아니냐는 말이었다. 그의 지적에 동의했다.  


행복하고 행복하게 일하고, 안전하고 안전하게 귀가하자. 

나는 이 말을 그날의 기도문으로 삼기로 했다. 행복하고 행복하게, 안전하고 안전하게. 나는 울퉁불퉁 생채기가 난 산허리를 지나면서 이 말을 반복했다. 그런 다음 우장 강을 향해 서쪽으로 흘러가는 깊은 계곡의 물가로 내려갔다. 429쪽


하지만 우장 강 위 높은 언덕에 적당한 곳을 찾아 저녁을 먹고 테드 윌리엄스의 자서전을 읽었다. 나는 남은 평생 동안 봄마다 이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그는 레드 삭스로 이적해갈 때 별로 ‘행복하고 행복하지’ 못했고, 나는 그 점을 높이 샀다. 그리고 그의 말투는 다분히 미국적이었다. 잘난 척 건방도 떨고, 속어도 서슴지 않고 썼으며, 글에는 묘한 리듬이 있었다. 나는 특히 이렇게 시작하는 첫 부분이 좋았다. “나는 지금껏 이 세상에 살았던 그 누구보다도 더 위대한 타자가 되고 싶었다….” 439쪽


1996년, 20대 중반의 두 미국인 청년이 중국 서부의 쓰촨성 푸링이라는 도시에 도착한다. '중미우호단', 책에서는 '평화봉사단'으로 번역된 교류 사업의 일환으로 푸링의 한 사범대학 외국인 교수로 부임한 것. 그 마을에서 보낸 2년의 시간. 생전 처음 백인을 만난 보통의 중국인들을 만나고, 대부분 소작농의 아들딸으로 대학에 진학한 매우 소수의 청년들인 학생들을 가르친다. 저자는 대학과 도시의 일상에 적극적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했고, 문학 전공자답게 많은 것을 보았고 들었고 그것들을 놓치지 않으려 메모했다. 2001년에 원작을 발표하기까지 오래 쓰고 곱씹었을 것이다. 문장은 모난 데 없이 물 흐르는 듯 부드럽고 유려하다. 

기승전결의 구조를 무난하게 갖추고 있는 책이다. 분명한 컨셉과 거기에 어울리는 제목도 달고 있다. 원제 역시 리버 타운River Town인데, 조금은 도식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푸링을 끼고 흐르는 양쯔 강의 풍광과 함께 푸링 사람들의 삶을 엮고 대비한다. 당시 산샤 댐은 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그래서 그는 강물에 잠기고 말 마을과 절벽 같은 것에 대해서도 썼다. 


나는 늘 혁명이니 계급투쟁이니 하는 주제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종신직을 갖고 있지 않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레이스는 그런 것들과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문학의 마르크스주의적인 해석을 들어야 한다면, 학생들이 교실을 청소하는 대학에서 듣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56쪽


이걸 보고 웃어야 되나? 이게 정말 웃기는 거 맞나? 공격적이고 위험한 건 아닌가? 어떤 면에서 내가 공산주의에 대해 가장 혐오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점이었다. 465쪽


나는 책의 중반부에서 적지 않은 분량으로 양쯔 강의 풍경을 그린 부분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지루하다는 생각도 들어서 얼른 넘어가려고 했다. 그보다 주인공(저자)이 만난 중국인들, 그가 본 것들, 2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친해지게 된 그 사람들과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좋았다. 그가 가르친 학생들은 여느 미국인들보다 셰익스피어를 잘 이해했다. 누구나 중국의 고시를 열두 편 이상 암송할 수 있었다. 저자의 중국어 개인 수업을 맡은 사범대학의 두 선생, 쿵과 라오는 대조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두 사람 모두 문화대혁명 당시 유년기를 보냈고 당시를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쿵은 고아이고, 공산당원이다. 하지만 쿵은 공산당의 폐해와 단점, 중국 사회의 문제를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는 지금의 중국 공산주의가 자유를 억압하고 전체주의적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동의하지만, 중국의 많은 엘리트들이 그렇듯이 미국적 자본주의보다 중국적 공산주의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굳이 분류를 하자면 신념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오히려 회의주의자에 가깝다. 문화혁명을 되돌아보는 당시 중국인들처럼, 후대의 누군가가 당시를 돌아보며 비웃고 조롱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 역시 비웃을 것이다. 

저자는 중국인들의 삶의 배후에 있는 것을 볼 줄 알았고, 또한 자신의 삶과 그 삶이 있던 사회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균형 잡힌 시선, 뛰어난 관찰력과 분석의 능력, 여러 나라의 역사를 알고 현재의 사회를 비교하기까지, 충분히 지적이면서도 산문의 미를 잃지 않는다. 


윌리엄 제퍼슨 포스터는 연극의 해설을 맡았는데, 마지막 장면이 끝난 후 자리에서 일어나 무리를 했다. ... 녀석은 늘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였다. 수업 시간에도 사전에 코를 박고 있다가 잠깐 쉬는 동안 슬그머니 다가와 또박또박 발음에 신경 쓰면서 이렇게 묻곤 했다. “조루증 문제는 좀 괜찮으신가요?” ... 그리고 덩샤오핑의 고향인 광안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태어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이면서도, 어처구니없게 앵글로색슨계 백인 같은 이름을 가져다 붙였다는 사실도 마음에 들었다. 467쪽


그 애도 잘 지낼 것이다. 대부분은 그럴 것이다. 그들은 강하고, 착하고, 재미있고, 슬프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늘 잘 견뎌낸다. 꼭 찬란한 건 아니지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오래 머물 것이다. 490쪽


<아마존>을 읽으면서 이 책을 자주 생각했다. 나와는 관계 없는 먼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 이 책은 중국인들의 복잡한 가치관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몇 가지 제공해주지만, <아마존>이 그렇듯 내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솔직한 문장과 담담한 묘사로 그려지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 생생해 혼자 집에서 읽다 수시로 울컥했다. 맞다. 좋은 책이다. 이런 책은 좋은 책이 맞다. 




리버 타운(양쯔강에서 보낸 2년)

저자
피터 헤슬러 지음
출판사
눌와 | 2003-08-0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 푸링에서의 생활을 묘사하고,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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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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