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레즈 데께루․밤의 종말(외), 프랑수아 모리악 지음, 전채린 옮김, 범우사

최윤 선생님 수업에서 읽은 첫번째 책이다. 프랑수아 모리악은 195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표지는 많이 구리다. 범우사 세계문학선 시리즈가 대개 그렇다. 두번째 책인 까뮈의 '페스트'도 범우사 번역본을 읽고 있다. 작가의 얼굴을 중심적인 이미지로 박아 놓는데 아주 촌스러워 보인다. 그치만 두 작품 모두 훌륭하게 번역해 놓았다.
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떼레즈 데께루' '호텔에서의 떼레즈' '의사를 방문한 떼레즈' '밤의 종말'. 제목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모든 단편이 떼레즈 데께루 라는 이름을 가진 한 프랑스 여성의 삶을 그리고 있다. 연작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첫 단편 '떼레즈 데께루'를 1927년에 발표했고 마지막 단편 '밤의 종말'은 1935년에 발표했다.

밤에 우리는 우리가 참고 있던 흐느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 같다. ('떼레즈 데께루', 63쪽)
잠이 그녀를 해방시켜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누워 있어야 하나! 아르쥘루즈의 침묵이 잠을 못 들게 했다. 떼레즈는 바람 부는 밤을 더 좋아했다 - 나뭇가지의 끝없는 호소는 인간적인 안온함을 감추고 있다. (", 89쪽)
나의 사랑이란 한 마리의 두더지야. 한 마리의 눈먼 짐승이야. 마치 한 인간이 우연하게 다정한 인간과 사랑에 빠지는 일이 가능하기나 한 것처럼! 그런데 이 세상에 다정한 인간이 존재하고는 있는 걸까? 여자건 남자건 우리가 사랑을 하는 쪽일 때 우리는 다정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을 받는 쪽일 때에는 절대로 다정한 인간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호텔에서의 떼레즈, 152쪽)
그들이 식당의 내 주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약간의 인간적인 열기를 느끼게 해주고 있다는 것도, 또한 내 시선 속으로 인간이 들어오고 그들이 어떤 사람일까 짐작을 해본다는 일만으로도 내 인생에서는 벌써 굉장한 일이라는 것도 그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하고 있었을 것이다. (", 152쪽)

아주 인상적이었다. 일단, 80년이 지나서도 동아시아의 한 청년에게 대단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내면묘사! 만약 작가 프로필을 전혀 모르는 채로 책을 읽는다면 작가가 여성인가보다 싶을 정도로 여성의 심리를 사실에 가깝게 그리고 있다. 게다가, '떼레즈 데께루'라는 자신이 창조해낸 가상의 한 여인의 삶을 어떤 식으로든 끝맺어야 한다는(작가는 사실 그녀를 구원하고 싶어 했다) 생각 자체가 무척 흥미롭다. 자신이 만들어낸 인물에 아주 깊이 몰입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레포트 때문에 세 번이나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수작 정도는 될지 몰라도 걸작이라는 생각까지 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수업 시간 때 최윤 선생님, 다른 학생들이랑 토론을 하고, 두 번 세 번 읽으면서, 굉장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문학적인 완성도 뿐만 아니라 어떤 시대 정신을, 시대적인 증상과 그에 대한 작가 나름의 주장을 발견할 수 있다. 1920-30년대, 전쟁을 겪은 유럽 사회의 혼란 속에서 한 여성이 강고한 가부장적인 가족 속에서 억압받는 모습을 그림으로써 작가 자신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페미니즘적인 메세지를 강력하게 담고 있다.

떼레즈 데께루 밤의종말(외)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F.모리악 (범우사,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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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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