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이한 지음 | 미지북스 | 2012년



“그걸 누가 몰라? 문제의 본질이 뭔지 살펴봐. 목적이 중요해. 공동체가 나서서 무엇이 미덕인지 결정해줘야지. 손 놓고 있으면 안 돼.” 샌델은 허리케인 피해자들을 이용해 돈을 버는 행위는 지나친 탐욕이므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구제 금융을 받은 월스트리트 금융사의 보너스 잔치는 실패를 포상한 것이므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어렵지 않다. 상식과 양심에 따라 그때그때 판단하면 되고, 판단할 수 있다.


여기서 상식과 양심을 직관과 감성으로 대체해보자. 이는 대다수 시민들이 복잡한 도덕 문제를 대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미국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도 다르지 않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사례들은 흥미진진하다. 샌델은 우리로서는 도무지 답을 알 수 없어 보이는 딜레마를 두고 간단하고 명쾌하게 해답을 제시하는 것 같다. 


샌델이 소개한 “철로를 이탈한 전차의 딜레마”는 정치철학의 대표적인 딜레마이다. 그는 이 사례를 통해 도덕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정치철학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곰곰이 기억을 떠올려보자. 샌델이 뭐라고 설명했더라? 사실 샌델은 직접적으로 해답을 제시하지 않았다. 책 전부를 읽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그의 해답을 알게 된다. 타인을 위한 희생은 공동체가 규정한 훌륭한 미덕이며, 개인은 공동체적 자아의 일부분이다. 그러므로 뚱뚱한 행인은 자발적으로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행인은 악덕을 저지른 것이고 공동체에 의해 비난받아 마땅하다. 


행인이 자신을 희생한다면 우리는 그의 희생에 감탄하며 칭송할 것이다. 그러나 행인이 자신을 희생하지 않더라도 공동체 전체가 그를 비난해야 하는가? 비난할 수 있는가? 아니다. 우리가 행인을 밀어 넘어뜨리기를 망설이는 이유는 바로 행인이 그 자체로 목적인 존재,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인을 밀거나 밀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자신의 몸을 던져 전차를 멈추고 다섯 명의 인부를 구할 것인가는 다른 누구도 아닌 행인 자신의 판단에 달려 있다. 전차의 딜레마는 독자의 흥미를 돋우기 위한 흥미로운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스스로의 주인이라는 것, 다른 사람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웅변해주는 사례이다. 스스로 목적인 존재로 살아가기 위한 개인의 자기 결정권, 이것이 바로 마이클 샌델의 정치철학이 외면하는 것이며 책의 저자가 옹호하는 자유주의의 핵심 가치이다. 


샌델을 따라 직관과 감성에 항복해서는 안 된다. 문제가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비루하더라도, 이성적인 정당화를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격렬한 선동, 감정적인 호소, 수사와 아첨이 난무하는 가운데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으로서 스스로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다. 이 책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시민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 직업인으로서 쓴 기고 글. 내가 이런 말 하기 부끄럽지만, 정말 괜찮은 책이다. 사실 <정의란 무엇인가>를 빌미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 더 나은 제목이었어야 한다. 정치철학 공부한답시고 까불었던 나 같은 애들이 꼭 읽어야 하는 책.  <기획회의> 331호(2012. 11. 5.)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저자
이한 지음
출판사
미지북스 | 2012-10-22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정의란 무엇인가] 이후 2년, 130만 한국 독자들은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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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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