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 평범하지 않지만 평범한 소수자들의 이야기

인권운동사랑방 엮음 | 오월의봄 | 2013년



녹취록을 읽고 또 읽으며 글쓰기를 시도할 때에서야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을 보고 듣는다는 게, 숨기려는 속살을 파헤치거나 짐작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돌아볼 때 연결되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 다시 돌아볼 때면, 전에는 연결되지 않았던 장면들이 연결되거나 연결되었던 장면들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 연결을 보는 것, 비어 있는 자리를 비어 있는 그대로 보고 침묵을 침묵인 채로 듣는 것, 그걸 통해서 지금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에서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이, 너를 만나기 위한 나의 자세여야 한다.(14쪽, ‘책을 내며’)


말하는 사람이 있다. 듣는 사람이 있다. 쓰는 사람이 있다. 그것을 읽는 사람이 있다. 이 책의 이야기들 뒤에는 이렇게 네 사람이 있다. 여러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으로 보이지만, 이 책의 특징은 바로 이들의 ‘사이’에 주목한다는 점에 있다. 


말하는 사람은 대개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어떤 정체성 때문에 차별받는 사람들이다. 비혼모와 장애인, 여러 성 소수자들―게이·레즈비언·성 전환자, 이주 여성과 이주 노동자, HIV/AIDS 감염인, 그리고 바로 우리 일하는 사람들.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 그러니까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의 일부 혹은 되고자 하는 자기의 어떤 모습 때문에 제도적으로, 인격적으로, 물리적으로 불편을 겪고 괴롭힘을 당한다. 


2007년 노무현 정부 아래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정부는 ‘출신 국가, 언어,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범죄 및 보호 처분 경력, 성적 지향, 학력, 병력’ 등의 사유로 차별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입법 예고안을 발표했다. 주류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몇몇 차별 금지 사유에 대한 극심한 반대가 있었고 그 결과 정부는 위의 일곱 가지 사유를 삭제한 채 법안을 내 놓았다. 차별금지법의 함의와 사회적 영향력, 누구나 차별을 반대하는 것 같은 사회적 분위기에 비해 사회적 논란의 규모는 초라했다. “무언가를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는 것은 그것의 부재를 선언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한 인권 운동 단체 ‘인권운동사랑방’은 2011년 ‘변두리스토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래서 이들은 차별받는 혹은 차별받은 적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다. 여러 시민 단체의 활동가뿐만 아니라 자원 활동가들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책의 꼭지마다 인터뷰어, 녹취자, 그것을 읽고 글로 쓴 저자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다. 대부분의 글에서 각각의 역할을 맡은 사람이 다르고 글을 쓴 사람이 인터뷰이의 얼굴을 모르는 경우도 많은 듯했다. 바로 이 점이 독특했다. ‘쓰는 사람’이 우리 ‘읽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말하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다는 것. 


‘쓰는 사람’은 낯모르는 사람들의 삶과 사연을 전해 듣고 우리에게 전한다. 그들은 사이에 선 사람, 외면당하는 소수자들의 삶을 우리 무탈한 ‘읽는 사람’에게 전해야 하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사건을 둘러싼 풍경을 삭제하고 간결한 보고서 형식으로 쓰려고 했다. 하지만 “사실을 재현하기보다는 우리의 설렘이나 먹먹함을 표현하자는, 그러나 이야기들에서 문자가 되어 가라앉지 않는 생생함을 재현해보자는 욕심” 때문에 형식을 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쓰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전해 들은 삶을 1인칭 화자의 일기나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글로, 3인칭 화자의 시선 아래 놓인 이야기로 풀어 놓는다.


책을 읽는 내내 ‘말하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사이에 대해서 생각했다.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듣는 사람과 쓰는 사람을 거쳐 지금 우리에게 닿는다. 듣는 사람과 쓰는 사람은 타인의 삶을 전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하지만 읽는 일이란 얼마든지 손쉬울 수 있다. 들은 이와 쓰는 이가 우리에게 글 속의 긴장과 침묵을 살펴 달라고, 말한 이의 삶에 다가가 달라고 조곤조곤 요구해도 우리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채로 그냥 읽을 수 있다. 


삶의 구체적인 사연을 담은 글들이 그렇듯이 대개 흥미롭지만, 그중 어떤 글은 인상적이었고 어떤 글은 밋밋했다. 또한 각각의 사연 뒤에 덧붙은 “반차별운동을 함께 모색하고 실천해온 활동가들”의 글들은 대개 지루했다. 말하는 사람과 읽는 사람 사이의 연결 고리를 보태려 했다고 서문에서 그 기획 의도를 설명하고 있지만, 대부분 활동가들이 쓸 법한 전형적인 글로 보였고 감성적인 수사가 난무한 채 섣불리 단정 짓는 글도 있었다. 대상에 정확히 가닿지 못하는 모호한 단어들이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세 번의 키스’에 덧붙은 글 ‘찰나의 풍경’은 인상적이었다. ‘찰나의 풍경’을 쓴 사람은 ‘성적소수자문화환경을위한 모임 연분홍치마’ 활동가 김일란 씨다. 그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꺼내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순간을 재현하고 싶다”는 바람, 즉 “매우 치명적이면서 정서적인 차별을 받는 상황에서 한 개인이 느끼는 감정적 사건”을 재현함으로써 “성적 소수자들이 ‘차별’을 받으면서 느끼는 ‘감정’을 (카메라로) 포착하고, 그 감정의 의미를 (이미지로서) 소통 가능한 것으로” 만들겠다는 바람은 고스란히 글과 작가 사이의 이야기에 대입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 앞에 놓인 글을 매우 깊이, 잘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낯모르는 한 사람의 삶에서 섣불리 사회적 맥락을 꺼내기보다 눈앞에 놓인 글만이 전부라는 생각으로 읽어 쓴 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쓴 글이란 무엇일까? 어떤 글이 독자로 하여금 글자 너머로 몸을 기울이게 만들까? 엮은이들의 바람대로 “침묵의 지점”마저 드러내는 글일까? 만약 우리 읽는 사람이 침묵의 지점 같은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오직 글뿐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신호와 표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추천의 글과 서문의 당부가 한편으로 부담스럽기도 했다. 글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우리가 읽으며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글 너머에 나아갈 의무 같은 것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앞의 글이 무엇을 말하든 우리는 제각기의 장소에서 책 혹은 글을 읽는다. 보고 읽는 일은 사실 얼마든지 손쉬울 수 있다. 결국 잘 써야 하는 문제 아닐까.


결국 이 책에서 나름의 교훈을 하나 얻었다. 잘 쓰려면 잘 읽어야 한다는 것, 손에 익은 단어를 붙잡히는 대로 꺼내 놓을 것이 아니라 한 번, 또 한 번 멈추며 써야 한다는 것.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저자
인권운동사랑방 (엮음), , 김준우, 허오영숙, 김일란 지음
출판사
오월의봄 | 2013-04-19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어느새 눈물이 고이다가도 미소가 번지는 이 시대 소수자들의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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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 이리> 12월 호. 이렇게 또 한 번의 마감을 겨우 넘겼다.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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