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만리장정

홍은택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바깥의 일로 기뻐하지 말고 스스로의 일로 슬퍼하지 말라(不以物喜 不以己悲).” 

(범중엄, 『악양루기』, 『중국 만리장정』 64쪽에서 인용)


본래 기행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기행문에서 내가 읽을 수 있는 것은 대략 다음의 세 가지다. 낯선 사회에 발 들인 한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 익숙지 않은 원칙으로 작동하는 사회를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새로운 관점, 그의 관점으로 접하는 한 사회의 모습이다. 내 생각에 첫 번째는 오랜 경험과 진지한 성찰 없이는 감상적인 일기가 되기 쉽고 뒤의 두 가지는 날카로운 관찰이나 풍성한 사실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내용 없는 글에 그친다.


『중국 만리장정』은 오십 대 중반의 한국인 남성이 60일 동안 중국을 자전거로 여행하고 쓴 기행문이다. 상하이에서 서쪽의 시안까지, 시안에서 북쪽의 베이징까지, 거기서 다시 남쪽의 항저우까지 삼각형 모양을 그리며 4800여 킬로미터를 달렸다. 책의 형식은 특별하지 않다. 짧은 글을 마흔여섯 개의 장으로 묶고 장을 절로 나누어 절 제목을 달았다. 본문 곳곳에 저자가 찍은 사진이 컬러로 들어 있다. 때문에 본문 전체를 4도, 즉 컬러로 인쇄했다. 전형적인 여행서의 모양새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저자의 전작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한겨레출판) 때문이다.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은 미국 동부의 대서양 연안에서 서부의 태평양 연안까지 6천 킬로미터를 자전거로 여행하고 쓴 기행문이다. 3년 전 군대에 있을 때 버스에 책을 실어 대여해 주는 이동도서관에서 무심코 골라 읽었다. 제목과 표지 모두 특별할 것 없었고 저자의 이름도 낯설었다.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다. 


“겨우 몇 주 전까지도 몸이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아서 힘들어했는데, 이제는 몸이 나를 끌고 가려고 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니라 '나는 움직인다. 고로 존재한다'로 바뀌어가고 있다. 전부터 나는 내 몸을 손님처럼 잘 모셔야 할 별도의 존재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몸이 점차 주인이 되고 그 전에 내 주인이라고 생각하던 정신이 몸의 지시를 따라간다. 이번 여행의 주제가 몸의 발견으로 변해간다. 원래부터 몸과 정신이 분리된 두 개의 실체가 아니라, 움직임을 통해 합쳐지는 자기의 두 가지 질료인지도 모른다.”(『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245쪽)


당시 근무하던 사무실이 남향으로 되어 있어서 등 뒤로 해가 가득 비쳤다. 사무실에는 갖가지 음료가 구비되어 있었고 주말이면 두 다리 쭉 뻗은 채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곤 했다. 그때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을 읽고 이렇게 썼다. “읽기 본래의 실상을 인정하지 않고 그 이상으로 과도하게 기대해서도 안 된다. 마치 더 많은 책을 읽기만 하면 무조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거나, 더 지혜로운 사람 혹은 더 이성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정신은 정신만으로 독보적이지 않다.” 미국 동부에 있는 애팔래치아 산맥을 꾸역꾸역 넘어가는 이야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괴로운 육체의 운동을 정신이 견딘다. 육체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손쉽게 변한다. 적어도 정신보다는 쉽게 변한다. 우리는 흔히 육체가 정신에 길들여진다고 생각하지만, 가혹한 여행 동안 저자의 정신은 육체에 길들여졌다. 


이번 책 『중국 만리장정』은 저자의 네 번째 저서다.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과 비슷한 콘셉트이지만 길과 길을 달리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줄고 여행하며 보고 들은 삶과 그에 대한 생각이 늘었다. 언론사에서 일한 이력이 있는 저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문장이 간결하고 명료하다. 중국에 관한 지리적, 역사적 사실을 수시로 곁들이면서 현대 중국 사회를 설명한다. 학문적 책임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기행문으로서는 수준 높은 글이다. 


“한국의 단군신화가 건국신화인 반면 중국은 황허문명의 발상지답게 창세신화가 있다. 특이한 점은 기독교의 창세기와 달리 중국에서는 천지를 창조한 반고가 피곤해서 죽었다는 점. 이것은 중국의 내세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신이 죽어서 자연이 된 나라와 이 땅에 신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해 사는 나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는 한시나 서화 모두 자연을 그린다. 왕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말은 있어도 하늘을 위해 그렇게 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177쪽)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글은 읽을수록 좋은데 책으로서의 만듦새, 즉 편집이 탐탁지 않았다. 기존의 여러 여행 서적을 닮도록 본문 곳곳에 컬러 사진을 넣고 별면(별개의 면)을 삽입해 본문 속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 사진을 아기자기하게 배치했다. 내가 편집자였다면 아기자기한 별면 대신 여행의 동선을 자세히 보여주는 지도 이미지를 보강했을 것이다. 본문 전체에서 지도는 책 맨 앞의 중국 전체 지도 하나뿐이고 그마저 많은 정보가 생략되어 있다. 저자가 지리 및 역사적인 사실을 곁들여 중국 사회를 설명하는데 정작 독자는 황허의 위치와 모양새를 모르니 답답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최근 들어 중국 지명을 표기할 때 현대 중국식 발음을 따르게 되면서 대부분의 중국 지명이 한국 독자들에게 생소하다. 그럴수록 지도가 중요하다. 


책의 만듦새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편집자는 원고, 즉 나중에 책의 내용이 될 것을 가지고 그것에 가장 어울리는 형식, 즉 책의 꼴을 설계해야 한다. 편집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독자는 정답을 가지고 있다. 편집자가 가장 잘 아는 독자, 그리고 유일하게 아는 독자는 자기 자신이다. 결국 편집자는 독자인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는 책을 만들려고 한다. 매번 실패하는데도 그렇다. 




중국 만리장정

저자
홍은택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3-05-22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상하이, 시안, 베이징, 중국 역사의 세 꼭짓점을 따라 달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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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 이리> 1월 호.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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