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 교사들과 함께 쓴 학교현장의 이야기

엄기호 지음 | 따비 | 2013년



“개인들은 침묵함으로써 스스로를 세계와 단절하여 고립한다. 이런 세상에서는 취향만 남게 된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감시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공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강도가 강해질수록 사람들은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에 집착한다. (…) 이 시대가 가진 취향과 사교에 대한 강박은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다.”(293쪽)


책을 다 읽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책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었다. 만약 친구가 내게 자기가 이 책을 왜 읽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읽는 이유뿐만이 아니라 쓰는 이유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런 우울한 현실을 굳이 묘사하고 서술함으로써, 즉 언어화함으로써 확정하려는 것일까?

책을 읽는 동안 나의 지난 삶을 생각했다. 고통받는 타인의 얼굴을 대면하고 직시하는 일이 두려운 내가 여전히 책을 읽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사람들과 공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불편해지면서 그런 화제가 나올 때면 언제나 침묵했고 아예 자리를 피하게 되었다. 이젠 내가 이 책에 등장하는 침묵하고 자기 단속하는 교사들을 닮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말이 필요 없지만 말하기 쉬운” 익숙한 친구들과의 만남, 즉 정치가 아니라 사교의 장에만 머무르고 있었다. 공적 장에 참여하고 나서는 일을 그만둔 나는 나의 냉소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일까?

이 책은 오늘날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과 그곳의 사람들에 대한 생생하고 마음 아픈 보고서이다. 하지만 저자가 그리는 학교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책을 읽는 내내 숱한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저자는 성장을 이렇게 정의한다. “인간은 다름을 만나고 마주쳤을 때에만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 (…)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람의 성장이, 자기 주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과 함께 나와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한다면, 다름/타자성은 인간의 성장에 필수적이다.” 학교가 성장의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면, 학교는 “나와 다른 이질적인 존재들과 일상적으로 부딪치고 만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무관심하고 적대하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학생과 교사뿐만 아니라 교사와 교사도 그렇다. 1부 ‘교실이라는 정글’은 학생과 학생 사이, 학생과 교사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노바디(nobody)와 섬바디(somebody)라는 개념을 들어 학생 간의 신분 체계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풀러가 쓴 『신분의 종말』에서 노바디는 “모욕을 당하고, 괄시를 받으며, 착취와 무시에 시달”리는 사람이고 섬바디는 “추종과 추앙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다른 노바디를 괴롭힘으로써 섬바디가 되려고 한다. 노바디를 파괴하는 것을 통해서만 섬바디 간의 결속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특정한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의 탄생이 매우 동질적인 방식으로 일어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무언가를 ‘적’으로 삼을 때 ‘우리’는 매우 손쉽게 탄생한다.

요즘 인류의 사회적 불평등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형태로 탄생했는지를 설명하는 고고학 책을 편집하고 있다. 이 책을 편집하면서 ‘우리’와 ‘다른 자들’의 구분이 인류에게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인류라는 종의 생물학적 본성이 아닌가 싶었다. 여기서 ‘다른 자들’이 곧 타자이다. 역사를 공부할수록, 특히 20세기 역사를 공부한 뒤로는 타자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곧 한 사회의 지성과 양식의 수준을 반영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 사회의 동료 시민들은 장애인, 동성애자, 노숙인, 이주 노동자를 어떤 존재로 여기며 어떻게 대우하는가? 그런데 이 책에 등장하는 어느 교사는 교육의 목적이 타자를 이해하고 관계가 넓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류 교사에 따르면 타자란 원래 공유한 부분이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불편하고,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내해야 한다.”

이 책의 백미는 2부 ‘교무실, 침묵의 공간’이다. 학교 현장의 절망스러운 현실에 누구보다 먼저 고민하고 토론하고 대화해야 할 교사들이 어떻게 침묵과 자기 단속에 급급하게 되었는지를 분석한다. 많은 시민들이 한가한 업무, 이른 퇴근, 방학 등을 들어 교직을 선망과 질투의 대상으로 여기지만 실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저자는 교사의 노동 구조뿐만 아니라 그들의 소통 방식까지 들여다본다.


“한 교사는 이것이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교직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말했다. 교사들이 보기에 다른 직업에서는 업무가 회의로 시작해서 회의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회의는 정규적인 노동 시간의 앞과 뒤에 공식적으로 배치된다. 그런데 교사들의 업무는 수업을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함께 모여 회의하는 것은 거의 퇴근 시간에 임박해서나 퇴근 시간을 넘겨 진행된다.”(157~158쪽)


교사 노동의 특징을 “바쁨이라는 압축적 시간 경험”과 “노동이 전혀 공유되지 않고 있다”로 요약할 수 있다. 긴 시간을 들여서 해야 하는 일, 즉 학생을 상담하거나 수업을 준비하고 동료 교사와 토론하고 협력하는 등의 “진짜 업무”는 퇴근 시간 이후에나 할 수 있는 일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 학교에서 “동료 교사의 교육 방식에 대해 조언하고 충고하는 일은 공연한 간섭이나 공격, 주제넘은 짓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사실 이런 모습은 학교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공적 공간에도 해당한다. 나는 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의견과 의견이 부딪히는 것은 “서로 간의 ‘취향’이 다른 것이기 때문에, 토론할 만한 문제가 아니라 서로 건드리지 말고 존중해야 하는 것이 되어 있었다.” 공적 문제를 정치로 해결하지 않고 사교로만 해결하는 습관이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다.

이 글의 첫머리에서 던진 물음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냉소에 도전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이 폐허를 응시해야 한다. 희망은 그 폐허에 대한 응시에서 나온다.” 세상의 많은 문제에 대해 우리는 이미 제각각의 근거를 가지고 판단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을 우리는 모르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는 읽고 대화함으로써만 알 수 있다.


“취향을 공유하는 사적인 친밀감으로서의 우정이 아니라 공동의 세계를 창조하는 평등한 이들의 우정이 정치를 가능하게 한다. 학교는 망하더라도 가르치는 이가 아직 그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319쪽)


결국 친구들이 던질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내 친구들이 이 책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저자
엄기호 지음
출판사
따비 | 2013-09-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한국사회에서 학교와 교사는 공공의 적이다. 한편에서는 경쟁력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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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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