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실 비치에서 On Chesil Beach (2007년)

이언 매큐언 장편소설 Ian McEwan |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948년생. 1975년에 발표한 첫 소설집으로 이미 서머싯 몸 상을 수상했다. 이 책의 발표 연도가 작가 소개 글에 따로 적혀 있지 않아서 20세기 후반으로 대강 짐작했는데, 확실히 하려고 검색을 해 보니 2007년이었다. 역시 싶었다. 뛰어난 소설가가 노년에 쓴 소설답다. 소설은 60년대 초반 잉글랜드를 배경으로 한다. 피로연을 치르고 호텔 방에 있는 두 남녀의 첫날밤 이야기가 이 소설의 전부다. 늦은 저녁, 창 밖으로 체실 비치가 내려다보이는 그 방에서 두 남녀의 연애와, 각자의 어린 시절, 보수적이었던 당시 시대 분위기에서 그들이 서로 사랑한 방식이 어땠는지, 그 안에서 각자의 마음이 어떤 모양이었는지 아주 잘 묘사한다. 결말을 알고 읽었는데도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리고 소설 전체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데, 특히 마무리를 보면 남자가 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청춘의 문장들+>에서 소설가 김연수가 "작가로서 좋은 소설은 미학적으로 새로운 소설이고, 독자 입장에서는 자기 얘기처럼 읽히는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고 말했다는데, 읽고 쓰는 사람들은 모두 어느 정도 작가이면서 독자이지만, 내 경우에는 이 책이 독자로서 내게 자기 얘기처럼 읽히는 부분이 많아서 마음이 차분하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어느 날 아마도 샤워를 하다가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 책은 미셸 우엘벡의 『소립자』(1998년)만큼 훌륭하게 연애(혹은 풍속)를 다루는 소설이지만 『소립자』와는 그 방식이 매우 다른 소설이라고. 전형적인 구도로 표현하자면, 각각 프랑스와 영국의 연애 소설답다. 재밌었다.


그럼에도 그의 몸부림에는 명확치 않은 일종의 수치심이 드러워 있었다. 실패했고 허비했다는 느낌, 그리고 물론 외롭다는 느낌도. 그리고 쾌락은 정말이지 부수적인 이득일 뿐, 목표는 해방이었다. 즉각 가질 수 없는 것, 생각을 마비시키는 절박한 욕망으로부터의 해방. 몸에서 한 숟가락 분량의 생산물이 터져나오자마자 정신이 해방되어 새로운 마음으로 아부키르 만에서 넬슨이 보인 결단력과 마주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말이다. 30쪽


에드워드가 기분은 어때? 무슨 생각해? 하고 물을 때마다 그녀는 늘 서툰 대답만 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가지고 있는 간단한 심리적 반응, 너무나 평범한 것이라서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던, 감각을 통해 사람과 사건, 그리고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즉시 인지하는 능력이 자신에게 결핍되어 있음을 발견하는 데 이렇게나 오래 걸렸던 것이다. 그녀는 요 몇 년 동안 쭉, 자기 안에 고립된 상태로 살아왔고, 또 희한하게도 시선을 자신에게서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다는 욕망이나 그렇게 해보겠다는 용기가 전혀 생기지 않았다. 78쪽


그녀는 그가 자신과 함께 있고, 자기편이며 자신을 이용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또 그가 자신의 친구이고 상냥하고 온화한 사람이라는 것을 계속 확인받고 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모든 게 매우 쓸쓸한 방식으로 어긋나버릴 수도 있었다. 125쪽




체실 비치에서

저자
이언 매큐언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8-03-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독자에게도 사랑받지만, 특히 작가들에게 사랑을 받는 작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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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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