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윙댄스, 어디서 어떻게 배울까 (1)

2015. 11. 15. 



스윙을 배운 지 2년 1개월이 지났다. 어느새 3년차 댄서가 되었다. 스윙을 배우는 사람 열 중 여덟은 춤을 배운 지 네 달 안에 더 이상 플로어에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 여덟 중 넷은 연애를 한다. 나는 남은 둘 중 덕후가 되는 하나에 해당했다. 첫 달부터 깊이 빠졌고 그 뒤로 두세 달은 마음을 억눌렀지만 결국 일 년 두세 달 동안 모든 여유 시간과 돈을 스윙에 썼다. 일주일에 사오 일 춤을 추고, 매달 월급의 20~30퍼센트를 플로어 입장료와 강습료로 썼다. 저작권이 소멸한 1930~1940년대 스윙 재즈 곡을 한 달에 수백 곡씩 들었다. 

이런 글을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다. 춤을 시작하고 배우면서 서울의 스윙 씬에 대해 미리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자주 아쉬워했었다. 현재로서는 주위에 먼저 시작한 지인이 없는 문외한이 인터넷이나 그 밖의 곳에서 자료를 찾기는 힘들다. 서점에 <서른 살에 처음 시작하는 살사 스윙 탱고>라는 책이 있기는 하다. 아직 절판은 안 되어서 구할 수 있지만, 6년 전의 내용이라 실제 선택에 별 도움은 안 될 것이다. 만약 내 친구가 린디합을 시작하고 싶다면 나는 어떤 내용을 조언해 줄까? 


스윙댄스


스윙댄스swing dance는, 스윙재즈에 추는 모든 소셜 댄스다. 한국에서 스윙댄스로 알려진 춤은 실제로는 스윙댄스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장르인 린디합Lindy Hop이다. 스윙댄스에는 그 밖에도 발보아balboa, 셰그shag, 부기우기boogie-woogie 등이 있다.(탭댄스는 스윙댄스가 아니지만 스윙 재즈와 잘 어울리는 솔로 댄스다.) 린디합은 1920년대 미국 뉴욕 할렘의 재즈 클럽에서 흑인들이 탄생시켰고, 2차 대전이 끝날 때쯤에는 백인들 사이에서도 크게 유행했다. 하지만 1944년에 미국 연방정부가 클럽과 볼룸ballroom(무도회장)에 30퍼센트의 특별소비세를 부과하면서 스윙재즈 씬과 함께 쇠퇴했다. 이후 20세기 중반에 듀크 엘링턴, 카운트 베이시, 그 밖의 많은 스윙재즈 뮤지션들은 유럽에서 공연을 열고 음반을 판매했다. 

많은 린디하퍼들이 직업 댄서로 일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재즈는 스윙에서 동부의 비밥과 서부의 쿨재즈로 변화해 갔다. 1980년대까지 린디합과 다른 스윙댄스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미국 동부와 서부에서 각기 다른 스타일로 분화되었고, 유럽에서는 영국, 스웨덴, 프랑스 등 재즈 씬이 일정 수준 이상 형성된 나라에서 꾸준하게 이어졌다. 1980년대에 린디합은 다시 부흥기를 맞았다. 영문판 위키피디아 항목 ‘lindy hop’, ‘history of lindy hop’, ‘frankie manning’ 등을 모두 읽어 보았지만 왜 이 춤이 잊혀지지 않았는지, 어떻게 해서 오래된 영상과 책으로 린디합을 연습하던 영국, 스웨덴, 미국의 젊은 댄서들이 미국까지 와서 1세대 흑인 린디하퍼들을 찾아다니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어쨌든 이 젊은 댄서들이 1930~1940년대 뉴욕 할렘의 사보이볼룸에서 린디합을 추던, 이제는 노인이 된 흑인 댄서들을 찾아냈고, 오늘날 린디합의 상징 같은 존재로 알려진 프랭키 매닝Frankie Manning도 이때 우체부 일을 그만두고 강사가 되어 전 세계에 린디합을 가르친다. 매닝은 <헬자파핀>에 나오는 댄서들의 아크로바틱 동작인 에어리얼 스텝aerial step을 1935년 사보이볼룸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댄서다. 물론 에어리얼은 공연에서 주로 쓰이고 일반적인 소셜 플로어에서는 보기 힘들다.


▲영화 <헬자파핀Hellzapoppin>(1941년)의 한 장면. 영상 속 댄서들은 뉴욕 할렘의 무도회장 사보이볼룸에서 가장 잘나가던 린디합 팀 '화이티스 린디하퍼스whitey's lindy hoppers' 멤버들이다. 멜빵 바지를 입은 사람이 프랭키 매닝.


(영어판 위키피디아 'lindy hop', 'history of lindy hop', 'Frankie Manning' 참조.)


스윙재즈


이 글에서 재즈*의 유래까지 모두 설명하기는 힘들 것 같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재즈는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탄생한 음악이다. 흑인 노예들이 부르던 노동요, 기독교의 교회 음악, 도시 축제의 행진곡 등이 뒤섞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미국 남부에 있는 도시 뉴올리언스는 재즈가 탄생한 도시여서 오늘날도 각종 행사가 열리고 재즈 문화가 활발하다. 재즈의 특징을 한 가지만 들자면, 당김음(싱코페이션)이다. 싱코페이션의 이 리듬감을 ‘스윙’이라고 부른다. 스윙재즈는 곡 전체에 걸쳐 드럼, 피아노, 더블베이스 같은 리듬 파트의 악기들이 싱코페이션을 만들고 유지한다. 


'on the sunny side of street'


라이오넬 햄프턴이 편곡.


에롤 가너가 편곡.


'shiny stockings'


카운트 베이시가 편곡하고 엘라 피츠제럴드가 노래를 불렀다.


 

챔피언 댄서 토마 블랑샤흐와 알리스 메이가 'shiny stockings'에 맞춰 소셜 공연 한 영상.


스윙재즈는 우리 일상에 흔하다. 스타벅스에서 나오는 재즈 음악이 거의 대부분 스윙재즈이고, 엘라 피츠제럴드가 부른 노래들이 대부분 스윙재즈이다. 실제로 스타벅스에서 스윙재즈의 스탠더드 곡인 ‘on the sunny side of street’, ‘shiny stockings’ 같은 노래를 하루에 모두 들었던 적도 있다. 스윙재즈는 1920년대에 대중가요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 일상에서 흔히 들을 수 있었고, 사람들은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이런 제약이 스윙재즈의 특징이 되었다. 그 결과 노래가 지나치게 빨라서는 안 되었고, 곡의 구성이나 박자가 복잡해서도 안 되었고, 곡이 너무 길어서도 안 되었다. 1950년대에 비밥이 등장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스윙재즈는 4분이 넘지 않는다. 초기에는 기본 열 명이 넘는 빅밴드big band 방식으로 스윙 재즈를 연주하고 녹음했다. 오늘날 린디합 씬에서 많은 사람들이 빅밴드 스윙을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취향이 아니어서 아쉬울 때가 많다. 

내가 생각하는 린디합의 가장 큰 매력은, 재즈 음악에 춤을 춘다는 점이다. 다른 음악이 아니라 재즈에 춤을 춘다는 사실은 이 춤의 영역을 어마어마하게 넓힌다. 왜냐하면 클래식이 ‘음’으로 된 음악이라면, 재즈는 ‘리듬’으로 된 음악이기 때문이다. 물론 스윙에 이어서 등장한 비밥 같은 재즈 장르에 린디합을 추기는 사실상 힘들지만, 찰리 파커까지는 아니어도 아트 블레이키의 노래 정도는 린디합에 잘 어울리는 경우가 많다.


* 재즈가 어떤 음악인지 알 수 있는 좋은 자료가 있다. CBS 라디오 '올댓재즈'에 2015년 10월부터 '재즈가 들린다'라는 특집을 하고 있다. 재즈 평론가 황덕호 씨가 해설을 하고 색소포니스트 이정식 씨와 밴드가 별도로 녹음해서 음악을 들려준다. 모두 10회로 예정되어 있다. 팟빵, 아이튠즈 팟캐스트, 유튜브, CBS에서 무료로 들을 수 있다.


린디합


린디합은 20세기 중반에 한 세대 가까이 단절되었기 때문에, 씬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다. 린디합은 1980년대 이후에 급격하게 변화했고, 지금도 변화하는 중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나라나 지역마다 춤의 기본 스타일이 많이 달랐지만, 오늘날은 대부분의 챔피언 댄서들이 기본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에너지를 만들어서 춤춘다. 몸에서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고 유지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 원리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운스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팔뤄가 자기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리더에게 매달리거나, 리더가 바운스로 에너지를 전달하지 않고 팔로 팔뤄를 잡아당기거나 하면, 빠른 노래에 춤추기는 불가능하다.

내가 생각하는 린디합은 우아함과 폭발적인 에너지가 함께 있는 춤이다. 린디합의 폭발적인 에너지는 190bpm이 넘는 빠른 템포의 노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궁합이 잘 맞는 댄서와 빠른 템포에 춤추면, 스트레칭을 한 것처럼 어깨와 허리 근육이 시원하고 기분 좋게 노곤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챔피언들의 춤도 다르지 않다. 서로 에너지를 만들고 몸을 움직이는 방식이 다르면 두 사람의 움직임이 잘 맞지 않고 조금씩 박자가 어긋난다. 미디엄 템포에서는 시간이나 체력에 여유가 많기 때문에 이런 모습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빠른 노래에서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반대의 경우에는 춤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생긴다.  


ILHC 2013 Invitational Jack &Jill 1등. 토마 블랑샤흐, 프리다 세게르달.(200bpm) 


사실 나는 린디합이 우아한 춤이라고 생각한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적잖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몇몇 영상들을 수십 번 보면서 나는 린디합이 정말 우아한 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내가 좋아하는 영상들은 대부분 음악에서 피아노가 곡을 리드한다. 그리고 춤을 추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고부터 빅밴드보다 피아노트리오를 훨씬 더 좋아했다. 어쩌면 이런 음악 취향 탓에 린디합이 우아하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마이크 로버츠, 로라 글레이스의 소셜. 두 사람은 실제 부부로,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커플이다. 


토마 블랑샤흐, 알리스 메이의 소셜. 


린디합 씬은 스스로를 댄스 스포츠가 아니라 스트릿 댄스로 여긴다. 재즈라는 음악의 특징 때문일 수도 있고, 본래 할렘의 흑인들이 추던 춤이라는 역사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댄스 스포츠처럼 정해진 안무와 동작을 얼마나 완성도 있게 하는지가 경연에서 기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심사에 기준 항목이 있기는 하지만, 경연을 심사하는 챔피언 댄서들도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이 서로 다르다. 그래서 많은 댄서들이 남의 춤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일을 조심스러워한다. 게다가 지금은 어색해 보이는 움직임이나 스타일이 시간이 지나면 그 댄서의 개성이나 독특한 스타일이 될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아름다운 춤과 그렇지 않은 춤을 구분하는 기준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린디합은 춤이다. 춤은 몸으로 음악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린디합은 두 사람의 몸으로 재즈라는 음악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두 사람이 서로의 몸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해서 함께 춤춰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지 않거나 상대의 것을 방해하면 다른 쪽이 힘들어진다. 두 사람의 몸이 긴장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움직일 때, 패스트라면 에너지와 익살스러움이, 미디엄이라면 우아함이 생긴다. 로큰롤이나 가요에 린디합의 스텝을 밟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내게는 그 춤이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고, 그래서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트리플 스텝뿐만 아니라 린디합의 많은 동작들이 재즈의 리듬을 표현하려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두 번째 글에서 이 점을 좀 더 자세히 적을 생각이다.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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