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일본 문학 리뷰 참 오랜만에 올린다. 그것도 모두 네버 시절에 썼다. GO, 남쪽으로 튀어, 인간실격 정도? 셋 다 무척 재밌게 읽었다. 특히 GO의 한 문장으로 인해 작년 가을부터 3~4달 동안 소설만 줄창 읽어댔다. 그동안 읽지 않고 살아온 것을 만회하기라도 하듯.
후배가 추천해준 책이다. 연대 도서관엔 있는데 울 학교 도서관엔 없다. 울 학교에서 아주 드물게 마음에 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도서관이다. 건물 외관도 다른 학교들과 무척 다르고, 게다가 내부 구조가 개가식이다(요즘은 대다수 도서관들이 개가식이라는데 도서관 처음 만들 당시만 해도 개가식 도서관이 아주 드물었단다. 알바 하기 전 교양 들으며 알게 됐다). 볕이 아주 잘 들어와서 창가 자리에 앉으면 정말 근사하다. 그런 도서관에서 알바를 하고 있지만, 불행히도 내가 근무하는 건물은 제3관으로서 나중에 덧대어 지은 건물이라 볕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도 좋은 점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노고산 자락의 나무들을 창 밖으로 자세히 볼 수 있다는 것. 건물과 산자락 사이 좁은 틈새로 바람이 잦아 나무들이 자주 흔들릴 때면 따라서 데스크에 앉아 있는 나도 흔들리곤 한다. 리뷰 쓸 때면 꼭 이렇게 잡담으로 시작한다. 흐흐

실제 표지는 색이 좀 더 짙다. 그래서 다소 음침하고 공포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애 표정도 범상치 않아 보이고. 게다가 내가 산 책 표지에는 '조선일보.소년조선 선정 좋은 책'이라는 광고가 박혀 있다. 지금도 짜증난다. 
작품은, 아주 좋았다! 치밀한 구성이나 생생한 인물묘사가 아니라 동화같기도 한 뭔가 묘한 부분이 있는데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소녀는 천재 소리를 듣는 동생, 그림틀 만드는 아빠, 그림 그리는 엄마, 화가를 남편으로 뒀던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동생은 5살 때부터 노트에 이야기를 끄적이는 걸 좋아했다. 소녀는 동생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고 동생은 누나에게 이야기해주는 걸 좋아했다. 어느 날, 학교의 그 누구보다 그네를 잘 타던 동생이, 하늘에서 떨어진 우박을 맞아 다친다. 그 뒤로, 동생의 목소리는, 들으면 누구나 토할 정도로 흉측하게 변해 버린다. 동생은 집 마당 나무 위에 그네를 만들어 놓고 그곳에서 지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밤이 되면 찾아오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단지 들을 수만 있었다.

소녀는 동생이 노트에 적어놓은 이야기들을 진실이 아닌 '이야기'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동물원에 가게 되었다. 친구들에게 동생이 해준 이야기를 농담삼아 말해주려고 한다. 그 순간 사육사가 소녀에게 말을 건다. 사육사는 소녀에게 그 이야기는 일급 비밀이라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까지 한다!

북극의 펭귄들이 큰 빙산 위에 빼곡히 무리를 이루고 있다. 추워서 그렇게 모여 있는 것일까? 밀어내기 놀이인 양 이리 밀리고 저리 쏠리다 가장 바깥쪽에 있는 펭귄이 차례차례 바다로 뛰어든다.
놀이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힘센 놈이 무리 한가운데 자리잡고 힘없는 펭귄을 밖으로 밖으로 밀어내서 바다에 빠뜨린다.
무엇을 위해?
바닷속에 숭어랑 범고래가 숨어 있지 않은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해면이 붉게 물들면, 힘센 펭귄들은 바다에 들어가지 않고 가운데를 향해 몰려드는 무리를 밖으로 밀쳐 내 약한 펭귄을 자꾸자꾸 빠뜨린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나면 바다는 다시 조용해진다. 송어가 식사를 끝낸 거다. 숭어는 멀리 가 버렸다. 힘센 펭귄은 이제야 바다로 뛰어들어 먹이를 찾는다. 그러나 어렵사리 잡은 청어를 하늘에서 날아 내려온 갈매기가 보기 좋게 채 가 버린다.
(100~101쪽, '밀어내기 놀이(늙은 갈매기가 목격한 광경)')

나는 이 이야기를 후배 입을 통해 들었다. 후배가 책에서 읽었다는 말을 안 하고 이야기해줬는데 정말 그럴싸했다. 덕택에 나 역시 책을 읽게 되었지만, 지금도 이 이야기의 사실 여부는 모르고 있다. 책을 다 읽은 뒤 나도 시험삼아 친구 몇에게 "펭귄들 떨어지는 장면 알지? 사실은 그게..."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줬는데, 내가 책에서 읽은 이야기라고 말해주기 전까지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하나같이 충격받아 멍한 표정을 한 채로. 책에는 펭귄에 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코알라, 캥거루, 코끼리, 원숭이, 나무늘보 등에 관한 이야기들도 있다. 모두, 하나같이, 충격적, 이다. 나는 특히 나무늘보 이야기를 읽고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이 동화같은 이야기들을 통해서 나무 위 그네에 혼자 앉아 동물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동생의 외로움을 상상한다. 말할 수 있으나 말하지 않는 아이. 그네에 앉아, 늦은 밤 동물들의 끔찍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저 세계로 끌려들어갈 것만 같다. 그네는 흔들린다. 다시 이 세계로 되돌아오는 것은 진자의 원리 때문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으며 웃어주었던 누나 때문이다. 누나마저 자신의 이야기를 의심했을 때 그의 외로움은 어마어마해 저 세계 직전까지 갔을 것 같다.
삽화도 곁들여져 있다. 나쁘지 않다. 별로 길지 않다. 하루면 다 읽는다. 뭔가 묘한 게 있다. 많은 작품들이 외로움이란 걸 표현해내기 위해 그럴싸한 인물을 만들고 생생한 세계 속에 집어 넣는다. 동물들에 대한 몇 편의 기묘한 이야기들, 그리고 소녀와 동생의 이야기가 다른 어느 소설 못지 않게 외로움을 마음 속 깊이 느끼게 만든다.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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