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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제목은 저렇게 유치짬뽕하지 않고 아주 문학적인 표현이다. 'Neither Hear nor There'.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우리 말로 번역은 못하겠다. ..

조르바를 읽는동안 짬짬이 읽었다. 잠들기 전 조르바를 한 시간 반 정도 읽다가 무거워진 머리를 가벼이 하기 위해 읽는다거나, 화장실에서 일 볼 때, 등.

여행기는 읽어본 적이 없다. 별로 좋게 보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여행기를 왜 읽을까? 어느 아나운서가 스페인에 대한 여행기를 썼던데, 배아프고 부러워 죽을 것 같지 않을까?
음, 여행기를 읽는 이유를 두 가지 정도 들어볼 수 있겠다. 책으로나마 여행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이전의 나 같았으면 그런 사람들에게 "돈 모아서 직접 여행 가세요"라고 말했을 거다. 두번째는, 여행과 여행지에 대한 실제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이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일단 이적씨의 서재에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책 소개를 대충 읽어봤는데 웃음 넘치는 문체가 매력적이란다. 며칠 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대충 훑어보다가 결국 다른 책을 빌리긴 했는데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었다. 두 세 달이 지난 며칠 전, 도서관에 앉아 열심히 중국어 공부를 하다가 지긋지긋한 단어들이 꼴도 보기 싫어져 챙겨온 조르바를 읽다가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아 마찬가지로 꼴도 보기 싫었다. 가볍고 흥겹고 시원시원한 책을 읽고 싶다! 그래서 외국문학이 있는 층으로 가 옛 기억을 더듬어 이 책을 찾아보았는데 마침 쉽게 발견했다.
읽는동안 자주 히죽 혹은 깔깔대며 웃었다. 미국에서 자라나 영국에서 10여년 이상 기자일을 해온 빌 브라이슨 이라는 영국인이 17년만에 유럽 대륙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쓴 여행기다. 여행 당시의 나이는 아마 30대 후반이었던 듯, 여행을 다녔던 때는 1990년이다. 거의 20년 전 이야기니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문장만큼이나 사람도 웃음넘치고 매력적인 사람인 것 같다. 여행의 동선을 살펴보면 별로 일관성이 없다. 시작은 북유럽이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 노르웨이 극북의 어느 소도시에서 한 달 이상 머무르고, 대륙 북부를 돌아다니다 지긋지긋한 추움과 흐린 날씨가 싫어 스톡홀름에서 갑자기 로마행 비행기를 타고 떠난다.
얼마 전에 산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라는 여행기와는 여러모로 많이 다르다. 실제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야기는 많이 들은 선배 부부가 3년동안 배낭여행을 다녀온 뒤 쓴 책이다. 제목처럼 그들 부부의 여행은 '사람'과 '인연'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빌 브라이슨은, 그 나라 언어를 모르는 채로 여행하는 게 더 재밌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의 책에서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웨이터, 호텔 주인, 상인, 이름없는 그 사람들이 거의 전부이다. 가끔 17년 전에 떠난 여행 이야기를 할 땐 이름을 가진 사람이 등장하긴 하는데, 곁들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도시의 풍경에 집중한다. 어느 도시든 거리에 대한 이야기가 항상 등장한다. 강, 공원, 건축물 이야기도 마찬가지. 물론 그 풍경 속에는 사람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들은 풍경의 일부인 '보여지는 사람'일 뿐이다. 사람 혹은 풍경, 둘 다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즐거움이다. 그치만 나는 풍경보다는 사람 쪽에 더 매력을 느낀다.

재밌고, 즐겁고, 유익한 여행기인 건 확실한데, 그와 비슷한 여행을 하긴 어려울 것 같다. 여행기 곳곳에서 그가 꽤 넉넉한 돈을 들고 여행을 다녔다는 걸 알게 된다. 어쨌든 나로서는, 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쉐라톤 호텔에 묵을 일은 없을테니 말이다.


으흐흐. 더 여행이 가고 싶어졌다!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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