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리뷰를 빙자한 잡문이 될 듯 하다.
마음이 힘들어 무언가 쓰고 싶으나 그건 내가 쓸 수 없는 것이다. 글로 쓰고 풀어내고 싶었다. 자 봐, 짜잔! 그림도 음악도 아닌 허깨비 같은 활자들이지만 그래도 나는 써 내고 말았단다. 자 봐, 이게 니 '것'들이야. 그러나 힘에 겨웠다. 어떻게 하면 쓸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나 도무지 무엇 하나 손에 잡히는 게 없다. 나는 아주 철저히 무기력하다.
무거운 마음을 안은 채 일요일을 마무리해야 하다니. 우울한 일이다. 내일은 월요일. 책 한 번 제대로 들여다보기도 힘든 며칠을 보내야 하는 새로운 일주일. 나는 힘을 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체념도 에너지가 필요한 것임을 방금 깨달았다. 체념 역시 마음을 다지는 일이니까. 그래서 잠깐 고민하다, 며칠 전 다 읽었던 폴 오스터의 책을 씹을거리 삼아 이것저것 끄적이고 있다.

뭔가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듯 하면서도 못 알아들었다. 그러나 읽는 속도는 무척 빨랐다. 사건의 전개나 인물의 움직임은 비교적 긴박한 편이기 때문이다. 마치 추리 소설을 읽는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 '잠겨 있는 방'에 가서 앞선 두 작품의 등장 인물들이 언급되면서 전체적인 아귀가 들어맞는 느낌이 들었지만 느낌만 들었을 뿐이다. 대니얼 퀸이, 블루가, 블랙이, 화이트가, '폴 오스터'가, 스틸먼이, 팬쇼가, 헨리 다크가, 이 모든 인물들이 서로 어떻게 맞물려 있는건지 며칠동안 고민했다. 정말 모르겠다.
흥미진진함은 '유리의 도시'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유령들'이나 '잠겨 있는 방'은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한 번 더 찬찬히 읽어보면 더 나을 것 같은데 이건 뭐.. 읽고 싶은 책들은 책상 위에 늘어서 있고, 읽어야 하는 책들은 머리 속에서 마감 기한을 경고하며 맴돌고, 무엇보다 가장 두려운 바다 건너 서쪽 나라의 단어들이 내 심장까지 내려와 경고를 하는 것 같다. "너 이러다 큰 일 난다". 그럼 난 찍소리도 못하겠다. 
이 책 역시 선물받은 책이다. 2월에 받아 4월에 읽었다.
 
보들레르 : Il me semble que je serais toujours bien la ou je ne suis pas. 다른 말로 하자면 : 나는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아닌 곳에서라면 언제나 행복할 것 같다. 좀 더 의미에 맞게 해석한다면 : 어디든 지금 내가 있지 않은 곳이 내가 나 자신인 곳이다. 또는 아주 대담무쌍하게 옮기면 : 어디든 세상 밖이기만 하다면. (128쪽)

이제는 어느 것도, 그 모든 아름다움 외에는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 아름다움에 대해서 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괴로웠다. 그렇더라도 일단 용기를 내어 빨간 공책의 마지막에 직면해 보기로 했다. 그는 설령 빛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자기가 펜 없이 마음속에 글을 적을 수 있을지, 그 대신 말을 배워 어둠을 자기의 목소리로 가득 채우고 허공에, 벽에, 그 도시에 말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150쪽)

<글을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글을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 (276쪽)

뉴욕 3부작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폴 오스터 (열린책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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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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