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세 달만의 리뷰다. 글을 쓰려고 블로그 창을 마주하고 있으니 순간적으로 불쑥, '아 귀찮아….' 하는 마음이 생긴다.
2004년에 발표된 마르케스의 최신작이다. 151쪽 밖에 안 되는 작은 양장본이다. 글자가 짙은 갈색이다. 마음에 안 들었다.
5월 17일에 샀다. 이음책방에서 였다. 7월 초에 읽기 시작해 금방 다 읽었다. 마음에 차도록 읽지 못했다. 공부방 오고 가는 지하철에서 침침한 눈을 부벼 가며 읽었기 때문이다. 안경알을 바꾸던가 해야지. 오히려 안경을 벗으면 활자가 더 선명하게 보이니.

마르케스는 1927년에 태어났다. 책이 발표될 당시에 곧 아흔을 앞둔 나이였다. 소설은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했고, 중년 이후에는 매주 일요 칼럼을 쓰며 살아온 한 노인이 아흔살 생일을 맞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노인은 자신의 아흔살 생일을 위해 선물을 하나 하기로 결심한다. 아직 성경험이 없는 여성과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
노인은 지금껏 결혼한 적이 한번도 없었고, 썩 준수한 외모도 아니었고, 그가 젊은 시절 함께 했던 여인들은 모두 창녀들이었다. 그는 창녀들과 여러 밤을 함께 하며 사랑을 나누었다. 남미의 경우 성매매가 합법화되어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작가 본인이 젊은 시절 후일 유명해지는 여러 예술가들과 함께 성매매 지역을 들락거렸다고 한다. 그들은 그녀들과 하룻밤을 함께 보냈지만,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기를 원했다고 한다(쉽게 믿기는 힘들다). 옮긴이의 말에서 옛 이야기들을 읽어볼 수 있다.
노인이 만난 여자는 14살 아이였다. 낮에는 가족을 위해 일을 해야만 했다. 노인은 아이를 건드리지 못한 채 바라보기만 한다. 잠들어 있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지켜보며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그녀를 위해 온갖 것을 하기 시작하고, 시의성 있는 글을 써왔던 일요 칼럼은 그녀에게 보내는 연애 편지로 뒤바뀌고, 클래식 음악이 아니라 한국으로 치면 발라드 음악을 들으며 몸이 달아 오른다. 그러나 작품이 끝날 때까지 14살 델가디나(이 이름조차 노인이 붙여주었다)는 노인을 직접 본 적이 없다. 노인은 잠든 그녀의 몸에 키스를 하며, 그녀의 몸이 뿜어 내는 향기와 육체의 변화에 놀라워 하며, 해가 뜰 때까지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아흔살, 이라는 나이가 어떤 것인지 정말정말 상상도 못 하겠다. 아흔살에 가까운 외할머니는 실은 원활한 사고가 거의 불가능해지셨다. 아흔살, 이라는 나이 만으로도 경이롭다. 그런데 그가 글을 썼다. 소설을 썼다. 사랑을 했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그날 밤 나는 욕망에 쫓기거나 부끄러움에 방해받지 않고 잠든 여자의 몸을 응시하는 것이 그 무엇과도 비할 바 없는 쾌락이라는 사실을 알았다.”(43쪽)고 한다. 늙는다는 것은 “마음으로는 느끼지 못하지만, 바깥에서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보는” 것일 뿐이라고도 했다. 아흔살 노인이 이런 고백을 했다. “나는 사랑 때문에 죽는 것은 시적 방종에 불과하다고 늘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날 오후, 그녀도 고양이도 없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사랑 때문에 죽는 것은 가능한 일일 뿐만 아니라, 늙고 외로운 나 자신이 사랑 때문에 죽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와 정반대의 것도 사실임을 깨달았다. 즉, 내 고통의 달콤함을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으리라는 것이다.”(112~113쪽)
뭐라 답할 수 있을지. 사랑이란 ‘아름다운 것’이라는 확신이 점점 더 강해진다.  

“나는 글 쓰는 것 이외의 일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천부적인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이나 자질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나는 극적 구성의 원칙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른다. 그런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다만 내가 평생 동안 읽어온 수많은 것들로부터 세상에 빛이 될 무언가를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설프게나마 시적인 표현을 써본다면, 나는 아무런 공적도 영예도 없는 종족의 대장이며, 지금 이 회고록에서 최선을 다해 이야기해 보려는 내 위대한 사랑에 얽힌 사건들 말고는 우리 종족의 생존자들에게 남겨줄 것이 하나도 없다.” (14쪽)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가르시아 마르케스 (민음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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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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