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위기론은 허구다, 우석훈.박권일 지음, 개마고원, 2007

지금은 절판된 책. '조직의 재발견'이라는 이름으로 개정판이 나왔다. 2007년 당시 '샌드위치 위기론'이라는 담론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게 '경제학의 껍데기를 뒤집어 쓰고 있지만 실은 이데올로기이자 단순반복명제에 지나지 않은 담론이다'를 서문에서 잠깐 언급한다. 그리고 나서 이 책의 나머지 전부는 샌드위치위기론과 직접적으로는 전혀 관련이 없는 '조직론'에 대한 이야기다.
작년 봄에 읽고 며칠 전 친구들과 또다시 읽은 책이다. 작년에 처음 읽었을 때 느낌이 아직 생생하다. 아주 흥미로웠고, 실감났으며, 경험적인 영감을 가득 얻은 기분이었다. 나는 당시 그리 크지 않은 어떤 단체에서 중앙 운영진으로 일하고 있었다. 5년여간 몸담았고 마침내 단체를 운영하는 실무진이 되기까지, 즉 이 조직이 외부의 대중을 어떤 식으로 만나고 구성원을 어떻게 모집하는지, 조직이 구성원들에게 주는 것이 물질적으로는 아무 것도 없는데 왜 이들은 이렇게 열심히 조직에 몸담고 있는지를 몸으로 생각해왔었다. 한편 확실한 한계가 보이기도 했다. 나 자신이 그 한계를 절감하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나, 다른 대학생들에게는 어찌 읽힐지 모르겠다. 그러나 회사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20대, 학생회에서 집행국 혹은 대표자를 해본 적 있는 대학생, 동아리 운영 등등, 실제로 조직의 깊은 곳을 체험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치 자신의 현재를 분석하면서 미래의 전망을 그려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굉장히 뛰어난 저작이라고 생각한다. 문장의 질, 특히 '인간의 말을 빌어' 경제학과 조직론을 설명해주는 대목들은 간간이 유머러스하고 적절하게 이해를 돕는다. 목차도 잘 짜여져 있다. 처음에는 조직론 일반에 대한 소개, 두번째는 조직론과 한국 사회가 만나는 주요 개념에 대한 소개, 세번째는 기업 조직을 중심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조직들 - 교회, 군대, 시민단체 등 - 에 대해 접목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가 조직론과 관계되어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문제를 다섯 가지 꼽는다. 하나같이 구구절절 마음에 드는 말들이다. 책 전체에 걸쳐 생태학적 관점이 근본에 깔려 있다. 그리고 현실의 조직을 보는 시선은 인류학적이다. 이런 것들이 보여 더욱 재밌었다.
많은 사람들이 조직과 관계에 대해 경험적으로 가지고 있는 법칙들이 몇 가지 있다. 친구들과, 동료들과 술 한잔 하면서 뒷담화할 때는 구체적인 맥락이 공유되어 있기 때문에 실명을 빌어 누가 어떻다는 둥 일은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둥 말할 수 있다. 근데 이걸 글로 정리해서 하는 게 참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개인적 영역에 속해 있다고만 생각해 왔던 문제들이 학문의 언어로 서술될 수 있음을 목격하게 해준 책이었다. 책 읽고 나서 조직 컨설턴트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금도 내게 '조직'은 여전히 흥미로운 주제. 도대체 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약간만 바뀌면 훨씬 많은 직장인들의 삶이 보다 윤택하고 행복해지지 않을까? 등등. 이 물음들은 내게 생생한 화두로 남아 있다. 
한국 사회에서 꼭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다른 어느 책도 조직론에 대해서 이토록 쉽게, 이토록 적절하게 설명해주지 못했을 것이다. 우석훈씨의 여러 책들 중에 친구에게 소개해줄 만한 책을 하나 꼽으라면 첫째는 '88만원 세대'이겠으나 두번째는 이 책이다. 많이 안 팔렸다고 하는데 꼭 읽어볼만한 책이다. 특히 회사 생활 하는 20대, 혹은 회사 생활을 앞둔 20대들에게. 


세상 어떤 나라도 '황우석 사건' 같은 일이 등장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그런 일은 생기고, 또 생기고, 다시 생겨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구조화된 오류들을 어떻게 줄여나갈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래서 문학이 필요하고, 예술이 필요하고, 철학도 필요하다. 13쪽
 
5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한국 조직은 아직 노동자들과 대화하고 노조에게서 협조를 끌어내는 방법을 잘 모른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잘 교육되고 훈련된 한국의 여성들과 일하는 법도 아직은 잘 모른다. 그리고 20대와 일하는 법을 모르고, 고령노동자들의 지식을 활용하는 법을 잘 모른다. 술 마시지 않고 조직의 중요한 일드를 결정하는 법을 잘 모르고, 접대를 하거나 봉투를 건내지 않고도 정부 기관과 협의하고 협조를 이끌어내는 법을 잘 모른다. 조직 내부에 다양한 방식으로 생겨난 비공식 조직들을 제어하는 법을 잘 모르고, 사회로부터 신뢰를 얻는 방법을 잘 모른다. 146쪽

다양성을 높이면 균질 집단이 가지고 있는 신속한 변화라는 고유의 장점이 사라지게 되고, 다양한 이해와 갈등에 대한 조정이라는 정말 어려운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내부 메커니즘을 갖추어야 한다. 191쪽

지방대 출신이나 장애인 혹은 정말 단순 언어 구사능력인 영어 외에 다른 장기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일부러 뽑고 이들이 내부 경쟁에서 즉각적으로 패배하지 않도록 여러 보호장치들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런 노력들이 조직의 선형독립성을 높여서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조직 내부에서 예상치 않은 기여를 하게 되는 일이 많은 것도 다 같은 이유로 설명된다. 305쪽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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