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다 괜찮다 / 공지영.지승호 지음 / 알마 / 2008

  그러니까 한마디로 공지영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주는 책이다.
  친구가 선물해줬다. 올 봄부터 여름까지 잠수탄 채 방황하는 동안 많은 힘을 준 책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화장실에서 읽었다. 인터뷰집이기도 하고, 공지영씨의 지난 삶이 워낙 역동적이고 흥미로워(역동적이다, 다이내믹하다, 흥미진진하다, 이것들 말 말고 다른 형용사가 없을까) 아주 몰입하게 되자 지난 추석 연휴 때 챙겨 고향에 내려 가 다 읽었다.
  공지영씨의 소설은 단 한 편도 읽어본 적이 없다. 싫어서 라기 보다는 그냥 인연이 닿지 않아서 였다. 그녀는 한국 문학 출판계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만들어낸 소설가다. '공지영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사람도 무척 많다.
  인격적으로 보자면 공지영이라는 사람은 어쨌든 일종의 ‘경지’에 올라선 사람 같다. 무지막지한 상처들을 그녀는 이겨냈다. 인터뷰집이든 소설이든 뭐든 간에 글으로 글쓴이의 인격을 판단하는 것은 아주 섣부른 짓이다. 글이란 건 언제든 뻥일 수 있기 때문이고, 또한 아주 많은 사람들의 글에는 대체로 뻥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400쪽 가까이 되는 인터뷰집을 읽으며 나는 공지영이라는 사람의 인격만큼은 인정하고, 또 그녀를 존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알게 된다면 정말 존경하고 싶어지는 누나, 같은 느낌이었다.(누나라 하기에는 나이가 많으시나 표지 속 그녀의 모습은 30대 후반 정도로 밖에 안 보인다.)
  아마 여기에는 이 책이 공지영씨 본인의 산문이 아니라 ‘인터뷰집’인 것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말을 글로 담은 기묘한 형식의, 어쨌든 글인 ‘인터뷰’라는 것, 한국에서는 딱히 독립된 글쓰기의 분야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해외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들었다.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인터뷰어도 있고, 저널리스트 중 인터뷰어라는 독립된 직업군도 있다고 한다.(그렇게 따지자면 ‘르포’라는 분야 역시 한국과 외국은 천지차이다.)

  책을 읽다 어떤 실마리를 얻은 듯 했다. 한국 문학과 해외 문학 간의 뚜렷한 차이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는 이웃은 한국 주류 소설이라 할만한 작품들을 꽤 싫어한다. 그의 말을 듣고 난 뒤부터 어떤 점이 다른지 생각해보곤 했다.
  내 생각에 한국 주류 소설들의 특징이라면 강하고 뚜렷한 서사가 아닐까, 싶다. 공지영 본인이 자기 소설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한다. 서사를 중요시한다고. 물론 대체로 그렇다는 말이다. 여느 소설가가 서사만 신경쓰겠나. 또 황석영씨가 공지영씨와 사적으로 가진 자리에서 본인과 공지영씨의 작품을 두고 ‘인생파 소설’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바로 이 표현, ‘인생파 소설’이 한국 주류 소설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것 같다. 잘은 모르지만, 믿기지 않을 정도로(그러나 남미처럼 아예 환상과 현실이 뒤섞여 버릴 정도는 아닌) 어마어마한 역사를 가득 겪은 나라에서 소설가들은 적나라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싶었을 것이다. 즉 한반도의 근현대사가 리얼리즘을 요구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흐름이 한국 주류 소설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

  서사를 중요시하는 작품들은 대개 매우 흥미롭다.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있어 그리 어렵게 쓰지 않고, 이야기 자체가 재밌기 때문이다. 반면 흔히 사람들이 어렵다 말하는 작품들은 직선적이고 쉬운 방식으로 서사를 풀어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화자가 여럿이든, 시간의 전개가 복잡하든, 아는 게 없어 섣불리 말하긴 힘들지만, 여튼 그런 작품들을 사람들은 어렵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반응들은 한편으로 한국 문학 독자들의 전반적인 지적 수준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몇달 전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모데라토 칸타빌레>를 처음 읽었을 때, 대체 이게 무슨 소리냐고, 이 짧은 소설에 대해 A4 5장 분량의 레포트를 쓰라는 게 말이 되냐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최현무 선생님은 한국 독자들의 감상주의적인 정서가 지성적인 독서를 억압한다고 비판했던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정서가 한국 문학의 반(anti)지성적인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파트릭 모디아노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감상적이고 멜랑꼴리한 문체와 소설 속 분위기에 한국 사람들이 열광(열광까지는 아니겠다만)하는 것이 이러한 단면을 보여준다. 분명 뒤라스의 <모데라토 칸타빌레>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를 이해하는 데에는 적정 수준의 지식이 필요하고, 소설을 깊고 자세히 읽는 능력도 필요하다. 그리고 만약 뒤라스의 소설을 잘 읽고 충분할 만큼 이해하게 된다면, 쉽고 재밌는 서사의 여느 소설보다 100쪽도 안 되는 뒤라스의 소설이 훨씬 재밌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이 왜 명작이고 훌륭한 소설인지를 알 수 있다.
  굉장히 선험적인 분석이어서 섣불리 일반화해서는 안될 것이다. 점점 더 집중력과 치밀한 논리를 요구하는 지점으로 글이 향하고 있어 이어가는 게 망설여진다. 일단 한국 주류 소설이라 할만한 것들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으니 분명 위의 분석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섣부르다. 그러므로 일단 여기까지.

  재밌는 책이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아마 공지영씨의 소설보다는 공선옥씨의 소설들을 훨씬 더 좋아할 것 같다. 만약 ‘인생파 소설’이라는 게 있다면 공선옥씨의 소설들이야말로 백미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터뷰 중에 공지영씨 본인도 공선옥씨의 소설을 무척 좋아한다고 말한다. 나는 한국 문학이 싫지만은 않다.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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