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일 즈음 시험 기간 중에 다 읽어버렸다. 공부는 안 하고 잔디밭에 앉아 오후의 햇살을 쬐며.
yes24 뉴스레터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사실 굳이 살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붕가붕가레코드가 낸 예전 앨범들에서 몇곡을 모은 비매품 앨범이 딸려 온다길래. 청년실업, 관악청년포크협의회, 장기하와얼굴들, 술탄오브더디스코, 치즈스테레오, 아침, 등등. 이것 때메 샀다. yes24에서 책 산 사람들 중에 추첨해 콘서트에도 초대해준다. 제발 당첨되면 좋겠다. 진행하는 이벤트가 장난 아니게 많더라. 출판사에서 제대로 미는 모양이다. 지금까지는 썩 많이 팔린 것 같은데, 시기가 좀 많이 늦은 감은 있다.


생계야 어떻게 되건 말건 일단 음악에 매달리겠다고 질러볼 만한 깜냥은 못 된다. 그렇다고 열악한 음악 시장 상황을 의지로 돌파해낼 만한 근성도 없다. 하지만 즐거운 음악 활동을 포기하고 돈 버는 일에 매여 살 만한 용기도 내질 못한다. 결국 어중간하게 두 가지를 함께 한다. 생업과 음악 취미 활동을 공존시키겠다는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은 이렇게 소심하고 근성 없는 이들이 찾은 방법이다. 지속을 위해서는 절실하게 필요한 근성도 없는 주제에 말이다. 73쪽

장기하와얼굴들, 불별쏘를 계기로 붕가붕가레코드 라는 회사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었다. 게다가 그 슬로건,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 아주 아주 인상 깊었다.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들인지, 대번에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레코드 측의 정의에 따르자면 "인디음악인이 자신의 음악을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생계적인 필요를 충족하는 음악 작업"이라고 한다. 그에 따라 "생계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딴따라질"(57쪽)이라는 개념이 확립되었다고 한다. 지나치게 문장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면, 정확하시다. 본인들이 밝히듯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를 패러디한 구절이기 때문이다. 그치만 적확하게 들어맞는다. 패러디도 아주 제대로 했다.
책의 구성은 연대기적이다. 붕가붕가 레코드라는 조직이 탄생하게 된 과정을 시간순으로 그린다. 2000년 무렵 '재미'를 목말라 하던 서울대생들이 모여 스누나우라는 웹진을 만들고, 메아리라는 노래패를 만나고, 자작곡 불러 보겠다는 모임을 꾸리고, '우리 레코드 회사를 차리자'라는 무모한 선언, 그리고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라는 슬로건의 등장까지가 2004~5년까지 있었던 일들이다. 그 이후 2007년까지는 몇달 씩 휴지기가 띄엄띄엄 있었다. 이런 류의 청년 조직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붕가붕가레코드가 의례 그랬을 법하게 사라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죽이 되는 밥이 되든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다는 마음으로 어쨌든 포기는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붕가붕가레코드의 대박 요인은 무엇보다 음악이 꽤 좋기 때문이다. 요즘 한창 청년실업 1집을 듣고 있는데, 좋은 노래가 꽤 많다. 아마도이자람밴드 나 브로콜리너마저 야 싸이 돌아다니며 간혹 들을 정도로 인기있는 밴드가 되었고, 장기하와얼굴들은 말할 것 없고, 눈뜨고코베인도 낄낄 대다가도 '우쒸.. 이게 대체 무신 소리야' 하며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기도 한다.(눈뜨고코베인 1집은.. 사실 조금 과장되게 말한다면 '획기적'인 앨범이라고도 생각한다.)  술탄오브더디스코는 안 들어봐서 모르고, 치즈스테레오는 요즘 자주 듣는데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확실히 웰메이드.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은 아마 요즘 홍대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밴드 중 하나일테고, 얼마 전에 첫 앨범을 낸 아침이나 생각의여름은 자기만의 색깔이 명확하면서 노래도 괜찮다.
책의 앞부분은 눈코의 깜악귀씨가 썼고, 나머지는 아마도 곰사장씨가 쓰신 것 같다. 아예 글쓴이 이름으로 회사 이름을 내걸었지만.(책을 다 읽어 보면 그 이유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멋지다.) 자신들의 지난 시간을 돌이키며 성공과 실패의 요인 그리고 현재의 문제와 앞으로의 전망 등을 담담하게 써내는 솜씨가 훌륭하다. 본인은 글을 잘 쓰지 못한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이 정도면 책으로서 충분히 괜찮다. 솜씨 뿐만 아니라 관찰과 분석의 시선도 날카롭고 적확하다. 왜 성공했는지, 어떻게 해서 성공했는지는 분석의 영역에 속한다. 현재의 문제와 앞으로의 전망은 조직에 대한 명확한 목표 의식과 조직 구성원들의 의견을 목표 의식으로 수렴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함으로써 이 책의 내용은 수준급이다. 어떤 사람들은 대체 이런 이야기를 왜 굳이 책으로 내냐, 고도 할 법한데, 일단 그 수준으로 보자면 꽤 괜찮다.
 
... 애초 시작은 재미나게 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럼 뭐가 재밌는 건가. 각자 하고 싶은 걸 하는 것. 그렇다면 거기서 붕가붕가레코드가 해야 할 일은? 이걸로 돈을 벌건 말건, 회사에 돈을 많이 벌어다 주건 말건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서로 같이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271쪽

뭣보다... 내가 이 책을 아주 즐겁게 읽었던 것은, 이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오늘날 대학생들에게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두려워 벌벌 떨지만 '재밌게 살고 싶다', '하고 싶은 일 하며 살고 싶다'는 바람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다. '어떻게든 재밌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같은데, 같은데......' 하며 여태 갈피 못 잡는 나 같은 인간들에게 붕가붕가레코드의 성공적인 데뷔와 앞으로의 지속가능성은 '희망의 불빛'이다. 서문에서 보듯 '그래 쟤들도 저렇게 사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책을 다 읽고 하루 지나 기숙사에서 한 학생이 과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내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재밌게 살아야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사라졌던 의욕도 자그맣게 생겼다. 본래 나는 일을 끌고 가는 건 잘 못해도 벌리는 건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그럭저럭 잘 해내는 타입이었다. '아, 뭔가 벌려보고 싶다', 그런 열정이 미미하게 가슴 속에서 꿈틀 했다. 지난 2년여 동안 사라졌던 그 열정이.

물론 말은 말일 뿐이다. 말 자체가 불타오르는 연탄이 되지는 못한다. 하지만 말도 불을 붙이는 번개탄 정도는 될 수 있다. 그냥 내버려두면 묻혀서 잊히고 말 꿈을 말로 만들어 붙들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런 꿈들 중 어떤 건 너무 위험하고 어떤 건 말이 안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일단 이름을 지어 붙이는 순간, 꿈은 기록이 되고 이뤄질 가능성은 높아진다. 이제 내용을 채워나가면 된다. 붕가붕가레코드의 시작이 그랬듯이 말이다. 138~139쪽

말을 만들어내는 것. 꿈을 말로 만드는 것. 그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새삼 깨달았다. 집행국할 때 그나마 나는 요런 건 잘 하지 않나, 어렴풋이 그런 생각을 했었더랬다.
'비평이 없으면 문화도 없다.'(26쪽). 이거 깜악귀씨가 직접 한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솔직히 말하면 꽤 감동 먹었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 적지 않게 위안이 되었고, '아, 그런 거였어?' 하며 괜히 뿌듯했다.
하여간 시험 기간에 이 책을 읽고 오만 생각이 들었다. 친구 붙잡고 앉아 이 책에 대한 내 나름의 평가(사실은 찬사)와, 붕가붕가레코드라는 회사가 지금 이곳에서 내게(조금 더 넓히자면 나와 내 친구들에게, 그러니까 '그래도 재밌게 살고자 하는 모든 대학생'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주절주절 늘어 놓았다. 여느 소설보다 더 많은 교훈과 진지한 생각거리를 던져줬다, 진짜로!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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