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사와 프레시안에서 팍팍 밀어준 책. 근데 밀어준 만큼 팔린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책을 읽기 전 가지고 있었던 기대와 비교해 본다면, 그 결과가 그리 이해하기 힘든 것은 아니다.
물론 이 책이 그리 나쁜 책은 아니다. 앞날개에 있는 저자 소개는 매우 화려하다. 저자 수디르 벤카테시는 대학원 1년차 되는 해(1980년대 후반)에 시카고 빈민지역 주택단지에서 지역 갱단의 보스를 만나 친구가 된다. 그 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주택단지의 삶을 사회학자의 눈으로 관찰하고, 기록하고, 때로는 휘말린다. 10여년은 갱들과 진실로 친구가 될 수 있는 시간이다. 갱단의 재정을 관리하던 친구로부터 비밀 장부를 건네받아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과 함께 마약과 갱단의 지하 경제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이색적인 이력과 구체적인 결과물이 결합되면서 각종 방송에서 그를 인터뷰하고 그는 일찌감치 컬럼비아대학교 사회학 교수가 되었던 모양이다. 미국에서는 2008년에 발표되었고 그 직후에 영화화하기로 계약한 모양이다.
지금 당장 리모콘 버튼만 누르면 미국 사람들 총질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미국은 총기 소유가 합법화된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는, 빈곤층 밀집 지역의 인도를 걷는 일조차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인 듯 하다. 수디르가 대학원 과정을 이수한 시카고대학에서는 신입생들에게, 대학을 둘러싸고 있는 빈민 지역으로 다니지 말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20여년 전의 그 어느 날, 비록 아버지가 대학 교수이긴 했지만 인도계 이민자 2세였던 그는, 학자적 의무감과 대학원생적 설렘 등등의 복합적인 무모함으로 깡패들이 총 들고 설치는 흑인 거주 지역으로 무작정 쳐들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갱단 보스의 호의를 얻어 공영 주택단지의 경제적 범위에 속하는 다양한 행위자들을 직접 만났다. 포주에 소속된 성매매 여성, 그렇지 않은 성매매 여성, 노숙인 출신이면서 지역 사회 내에서 다양한 허드렛일과 수리업에 종사하는 남성 무리들, 경찰, 갱단과 관 양쪽 모두와 관계를 맺는 주민 대표, 사회 운동가 등등. 이 이야기들이 흥미롭지 않을 리가 없다. 실제로 초반부는 띄엄 띄엄 읽다가 중반 이후부터 너무 흥미로워서 결국 그날 밤을 새면서 책을 다 읽었다. 전혀 예정에 없었고, 다음날 일찍 수업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하지만 빌리는 자신이 내린 잘못된 결정에 대해 처음으로 책임을 인정한 사람이었다. 빌리가 대학을 그만두고 이 주택단지로 돌아왔을 때 한 말을 나는 잊지 못한다. "난 단지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필요했어. 정말 죽을 것처럼 힘들고 혼란스러웠지만 아무하고도 의논할 수가 없었어." 182쪽
언젠가부터 나는 사회학 분야 전반에 걸쳐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는 어느 정도 나 자싱네게 화가 나 있음을 의미했다. 정평 난 사회학자들의 다양한 방편들이, 지금 내가 목격하고 있는 고통들을 예방하는 데는 전혀 무력하다는 사실에 점점 화가 치밀었다. 동료 사회학자들이 주택, 교육, 고용을 위해 개발하고 있는 추상적인 사회 정책들은 가난한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241쪽
그런데, 그런 신선하고 화려한 현실 세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발췌하고 싶은 구절은 모두 두 곳 뿐이었다. 분명 재미있으나 발췌할 만한 구절들은 많지 않았다. 수디르가 자신과 관계 맺은 사람들을 노출하기 꺼려 일부러 책을 가볍게 쓴 것은 아니다. 90년대 후반 공영 주택단지는 철거되었고 갱단은 해체되었으며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은, 미국 갱들이 총을 쏴 대는 여느 할리우드 영화 이상의, 학문적인 내용을 깊이있게 만족스러울 정도로 드러내주지 않았다. 책의 광고 카피들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 이건... 연구라기 보다는 에세이에 가깝고, 르포라고 보는 게 무방하다. 문장은 철저히 구어체로 쓰여졌고 개념어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덕목 역시 훌륭하다. 사회학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또한 학부 때는 생물공학을 전공했던 한 인도계 청년이 그 누구보다 무모한 용기로 날 것 그대로의 현실 한복판을 향해 뛰어든 행동에 대해서는 경이로울 따름이다. 그는 그렇게 가장 적나라한 현실과 직접 맞부딪히면서 고민하고 회의하고 슬럼프에 빠졌다.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다. 그리 진지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여유만 있다면 2~3일 만에 다 읽을 수 있다. 워낙 흥미로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