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경제학 시리즈 1권 <생태요괴전>은 친구에게 빌려준 상태다. 그래서 2권 먼저 리뷰를 올린다.
나오자마자 며칠 안 돼서 샀다. 두 권을 같이 산 다음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를 광화문 교보에서 샀다.
읽은지 두어달 지나서 발췌하려고 표시한 구절들을 확인하는 김에 조금 더 꼼곰히 읽어 보았다. 저자는 이 책을 두고 교육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생태학 안내서 정도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스스로 부언하듯, 아주 어렵지는 않아 일부 고등학생들 정도는 충분히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은 생태학의 기본 개념들을 중점적으로 설명해주는 데에 가장 큰 장점이 있다. 수용 능력, 지속가능성(강지속가능성과 약지속가능성), 다양성, 공진화, 규모, 등등. 그와 더불어 평소 우석훈씨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 생각해오던 한국의 교육 구조 및 산업, 특히 사교육 산업의 폐해에 대한 논리적인 지적과 그것이 국민경제가 생태적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다양성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함의는 생태계 보호와 생태계 건전성의 지표라는 의미보다 훨신 더 심층적이다. 다양성은 획일성과는 반대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다양성의 감성이란 마치 세상을 거대한 하나의 생태계처럼 이해하고 그 속에서 '약한 것' 혹은 '보호받아야 할 것'들에 대한 감성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에 대비해 자국 영화가 보호받아야 하는 이유를 지금은 경제적 국수주의라는 일방적 보호주의보다는 문화다양성이라는 개념에서 주로 그 근거들을 찾는 것도 비슷한 궤다. 90쪽
'지속가능하다'는 말에는, 이렇게 최소한의 가느다란 희망이 담겨 있다. 수식어 역할을 하는 '지속성'이라는 낱말은 그 자체로는 그럴 듯하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현재로서는 이를 대체할 만한 다른 개념이 있는 것도 아니니, 아쉽더라도 당분간 이 개념을 써야 한다. 그야말로 지식은 너무 적고 윤리는 땅에 떨어져 있고, 세상은 기계적인 경제성장론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셈이다. 지속가능성은 어쩌면 80년대가 인류에게 남긴 그 시대의 최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최선은? 145~146쪽
한 명 한 명에게는 분명 큰 변화가 아니지만, 이게 '모든 사람'으로 적용되면 규모의 효과라는 것이 발생하게 된다. 냉장고를 생각해 보자. 보통 가전제품은 신혼 부부가 마련하는 혼수용 제품을 사회적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외국과는 달리 한국은 냉장고를 두 개씩 갖는 게 어느덧 표준이 되어 있다. 우리는 '김치 냉장고'라는 별도의 냉장고를 하나 더 사용하기 때문이다. 냉장고 하나가 더 필요하게 된 것은 일종의 문화현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행위가 생태적 부하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136~137쪽
부동산 등의 투기 형태가 활성화된다고 하여 지역경제가 살아나거나 경제가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돈의 언어와 논리가 한국 사회에서 거의 신처럼 군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흔히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시장 환원주의가 한국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굳이 표현하자면 '경제 신권주의 시대'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면서 생겨난 근대라는 공간이 한국에서는 그야말로 기묘하게 뒤틀려 종교와 경제가 한몸이 되고, 돈을 신으로 숭배하는 그런 사회가 온 셈이다. 188쪽
요즘 들어 그의 책을 두고 부실하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가끔 눈에 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리뷰를 쓰려 이 책을 다시 한번 살펴 보니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겠다. <생태요괴전>이나 <촌놈들의 제국주의>는 중학생들도 읽을 수 있도록 썼다고 했다. 그러니 쉽다. 그러나 쉬움과 가벼움은 같지 않다. <생태요괴전>은 쉽게 쓰려는 그의 노력이 빛난 저작이었다. 물론 후반부는 다소 식상했지만, 초중반부는 아주아주 재밌었다. <생태페다고지>도 교사들이 읽으리라 예상하며 글을 썼다고 하지만, 생태학에 대해 찰나의 순간조차 생각해본 적 없는 교사도 이해할 수 있도록 쓴 글은 문장과 단어가 쉬울 수밖에 없다. 그가 평소 자주 하던 말들이어서 그렇지 시리즈라는 체계 속에서 한 권의 책으로 정착되는 과정이므로 식상하다는 불평도 썩 정당하지는 않다.
다양성, 문화적 경제, 수용 능력, 규모 등 생태학의 기본 개념은 지금의 나에게는 아주 자연스럽게 자리잡혀 있다. 이런 단어가 있다면 사용하고 싶을 정도인데, '다양성주의자'. 사실 생태학의 몇몇 개념들은 사람들이 그 생각덩어리를 개념어로 호칭하지 않을 뿐 너무나 자연스럽고 상식적이다. 그러나 이름을 붙이고 개념으로서 이해해야만 나의 생각을 남에게 설명하고 남의 생각을 풀어 해석할 수 있으므로 되새겨가며 공부를 한다. 더 쓰기 귀찮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