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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했고 고분고분 살았지만, 어쩌면 그래서인지도 모르지만, 씹고 있는 통조림의 맛처럼 삶이 너무 자명해진 느낌이었다. 미래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지나버린 것 같았다. 지나버린 미래는 공장장의 현재와 다름없을 거였다. 193쪽 - 편혜영, <통조림공장> 중에서
군생활이 그렇다고 생각했다. 미래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지나버린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어쩌면 소중한 인연을 만나거나 지적 열정이 식지 않은 채로 지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달 전의 내게는, 실은 지금도 여전히, 미래는 내게 미지의 시간으로서 기대되지 않는다. 내 안에서는 이미 지나버린 것 같다.
주로 이곳에서 나는 공부工夫를 한다. 문학가니 소설가니, 작가여서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조차도, 이 터무니없고 말도 안 되는 나라는 괴물도 실은 알고 보니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턱없이 늦은 공부고, 물론 독학이다. 그래서 최선을 다한다. 아무 것도 모르고 태어난 인간이기 때문이며, 아무것도 모르고 글을 쓰기 시작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다 그렇지 뭐, 라고 하기엔 나라는 인간이 너무나 불쌍하다. 공부는 불쌍한 인간이 스스로에게 바칠 수 있는 유일한 공양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312쪽 - 박민규, <자서전은 얼어 죽을> 중에서
그렇대는데 믿지 않을 이유는 없다. 나는 마음까지 부르르 떨 정도로 감동했다.
창작의 고통은 따로 있다.
글을 쓰면 쓸수록, 또 아무리 글을 써도... 결국 나는 인간일 뿐이라는 '고통'이다. 변하지 않는 인간의 고통... 아무리 글을 써도 변하지 않는 세계의 고통. 우리가 인간이라는 이 실질적이고... 물질적인 고통. 단어와 문장, 6하원칙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이 고통. 우주를 창조한 신에게도
결국 어떤 우주를 만들어도 나는 '신'일 뿐이라는 고통이 따랐을 것이다. 아무도 없는 창 밖의 하늘을 바라 보노라면, 그래서 이 고통이 때로 합당하고 감사한 일임을 나는 깨닫게 된다. 당신과 나는 실은 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다. 살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그래서 꼭
거듭, 당신에게 전하고 싶다. 315~316쪽 - 박민규, "
글을 쓰면 쓸수록, 또 아무리 글을 써도... 결국 나는 인간일 뿐이라는 '고통'이다. 변하지 않는 인간의 고통... 아무리 글을 써도 변하지 않는 세계의 고통. 우리가 인간이라는 이 실질적이고... 물질적인 고통. 단어와 문장, 6하원칙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이 고통. 우주를 창조한 신에게도
결국 어떤 우주를 만들어도 나는 '신'일 뿐이라는 고통이 따랐을 것이다. 아무도 없는 창 밖의 하늘을 바라 보노라면, 그래서 이 고통이 때로 합당하고 감사한 일임을 나는 깨닫게 된다. 당신과 나는 실은 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다. 살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그래서 꼭
거듭, 당신에게 전하고 싶다. 315~316쪽 - 박민규, "
이 시대 한국 사회와 그리고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목격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절망과 좌절은 합당해 보인다. 거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 있어 멋지다고 생각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더불어서, 이 구절들 덕택에 내 안에서는 신이 들어앉을 자리(혹은 여지)가 생겼다. 그가 우리 모두를 사랑한다 해도 그로서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좋은 것을 주시리라는 한비야씨의 종교적 낙관은 내 안의, 혹은 박민규씨의 신과는 양립하기 힘들지 않을까.
작년 김연수의 대상 수상작, 그리고 자선작만큼 좋은 작품은 별로 없어 보였다. 그의 두 단편은 정말로 '단편다웠다'. 배수아씨의 작품 '무종'은 내게 어렵고 버거웠다. 김애란씨의 작품은 다소 밋밋하고 덜했다. 전성태씨의 작품은 다소 인상적이었다. 작년 수상집에서 조용태의 '신천옹'을 연상케 했다. 김중혁씨의 작품은... 아 글쎄 재밌긴 했는데 나의 상상력이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