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제3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2009)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김연수 (문학사상,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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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렇게 사람들로 북적대는 길을 걸어가는 일은 혼자 집에서 걱정하는 일들의 목록을 작성하면서 지내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살마들이 존재하는 데도 그가 말하는 실제적인 고통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자각에 이른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가 지구를 던진다고 해도 사람들이 받는 건 저마다 각자의 공일 것이다. 21쪽, 김연수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중에서

애당초 그에게는 많은 문장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 문장들이 자신을 그토록 위로해주리라고는 그도 생각하지 못했다. 46쪽,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진중문고를 뒤지다가 우연히, 그리고 놀랍게도, 2009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발견했다. 작년 2월, 내 생일 즈음에 윤종이에게서 편지와 함께 선물로 받은 그 책 말이다. 그때 나는 김연수의 대상 수상작과 자선작을 읽으면서 마음 안쪽이 서서히 오래도록 뒤흔들림을 경험했다. 코끼리 라는 존재는 그 후 몇달 동안 내게 뚜렷한 실체로서 곁에 머무르게 되었다. 아프고 힘들었지만, 그 당시 누군가에게 말했던 것처럼 나의 고통이 코끼리로 형상화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더 오래 더 깊이 괴롭고 힘들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전성태의 <두번째 왈츠>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나와 상관없이 존재한다는 고독감이 파도처럼 뼛속을 들랑거렸다.' 매력적인 의태어가 돋보이는 문장이지만 그보다 순식간에 내 눈을 잡아끈 부분은 '상관없이 존재한다'는 구절. 당시 세상 모두가, 너와 내가, 모든 것들이 나와는 '상관없는' 것들 이라고 여겨졌다.
김연수의 두 단편을 다시 읽으니 확연히 느껴진다. 이 작품들이야말로 '단편'다운 작품이다. 작품집에 실린 다른 단편들과는 냄새 자체가 다르다. 2010년도 작품집은 더욱 그렇다. 장편을 압축시켜 놓거나 혹은 장편이 되고 싶었으나 스스로의 힘이 모자라 되지 못한, 그런 작품들은 그 자체로는 잘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김연수의 작품들 같은, 즉 '짧을 뿐인' 단편이 아니라 '짧아야만 가능한' 단편들과 비교해보면 아주 느낌이 다르다.
책상에 앉아 이 노트에 뭔가를 적고 있으니 사람들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모양이다. 흠. 서평 같은 건 앞으로 수첩에 적자.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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