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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읽게 된 책. 당시 베스트셀러여서 문고에 꽂혀 있었다. <칼의노래> 이후 두번째로 읽는 김훈의 소설. 한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소설가로 불릴 만한 남자, 김훈 이다.
<칼의노래>에서 보여준 그의 문체는 나를 무지하게 놀래켰다. 훌륭한 기행문 <자전거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이 시간까지 돌이켜 봐도 문체 만으로 나를 그 정도로 놀래킨 사람은 하루키 외에는 더 없다. 그렇다면 <남한산성>은? 동기의 물음에 대답했듯, 옛 양반들이 주고 받는 말이 어떠 했는지 오늘날은 알 길이 없을 것이다. 말과 다른 문자를 썼으니까. 김훈이 상상하여 복원한 옛 구어는 오묘했다. 흥미롭고 재밌어 보였다. 문장 역시 그랬다. 사료를 토대로 하여 한글로 번역한 왕들의 말, 문장. <칼의 노래>만큼 극도로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남한산성> 역시 여전했다. 한국 작가 중 드물게 문체만으로 감동을 주는 사람이다.
책을 읽으면서 찾아내려 애썼던 것, 고민하던 것은. 김훈은 왜 이 소설을 썼을까. 작가 김훈은 당대에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지 않을까, 그런 의심. 특히, 그는 척화파 김상헌을 절개있고 강직한 선비로 그려낸다. 주화파 최명길보다 인물 묘사가 조금 더 풍성하다. 머리말에서였나. 당대 조국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대목과 겹쳐지자 마침내 그가 미심쩍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좁고 갇힌 성벽 안에 창궐한 것은 단지 사대부들의 말(言)들이었다. 사대부들은 말로 목숨을 부지하던 사람들이었다. 김상헌 역시 문신이었고, 말로만 채워진 존재 였던 건지도 모른다. 스스로 디딜 수 있는 길만을 걸었던 인물은 수어사 이시백, 말과 행동과 노동이 일치하던 대장간지기 서날쇠, 언 강 위에서 쓰러진 나루터 사공. 그 외에 더 있을까?
나의 미심쩍은 시선은 일단 연기되었다. <현의 노래>를 문고에서 찾아낸 상태다. 대체 왜 그렇게 한국 사람들이 김훈을 읽는지, 궁금해졌다. 내키면 그의 소설 모두를 찾아내어 읽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