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어보는 이상문학상 작품집.
대상 수상 작가는 김연수. 우수상은 이혜경, 정지아, 공선옥, 전성태, 조용호, 박민규, 윤이형씨가 수상했다. 이전에 다른 작품을 읽어본 적 있는 작가로는 김연수, 공선옥, 박민규, 전성태 뿐이다. 나머지 작가들은 이 작품집에서 처음 만났다.
나오자마자 초판 16쇄까지 찍어낸 걸 보면 이름값이 꽤 높은 모양이다. 나는 각종 문학상의 특성과 역사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 이상문학상은 어떤 문학상이어서 어떤 작품을 높이 사는건지 도통 모른다.

대상 수상작,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은 좀 어렵긴 했다. 감상적이지 않으며 깔끔하고 지적인 느낌의 문체는 그대로 인데, 이건 뭐.. 상징이란 역시 어렵구나, 새삼 실감하게 했다.
오래 전부터 나는 시에게 가끔 간절한 구애를 표했으나 번번이 스스로 지쳐서 나가떨어지곤 했다. 물론 쉽고 자상한 시들은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감동할 수 있었으나 그 유명한 고 기형도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솔직히 말해 마음 속까지 울려온 건 몇 편 안 됐다. 얼마 전까진 그냥 나는 시랑 잘 안 맞나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소설을 읽기 시작하니 보다 정확한 원인이라 생각되는 게 있었다. 문장을 두번 세번 읽는 경우가 드물다. 그리고 상징, 이 상징이란 것에 나는 도통 쥐약이다.
고통을 묘사하는 표현, '심장 위에 슬쩍 발을 얹고 힘을 줄까 말까 고민하는 코끼리'는 인상적이었다. 코끼리가 크고 무거워서 그런 거겠지? 블로그를 새로 만들며 생각해내 닉네임과도 관계가 있어 개인적으로도 흥미로웠다. 역시 코끼리는 참 매력적인 동물이다.
조용호씨의 '신천옹(信天翁)'이 인상적이었다. 이제 쉰이 다 되어 가는, 직업을 갖고 돈을 벌며 나름대로 글쓰기에도 충실하게 살아왔을 것 같은 평범한 남성 작가 같아 보인다. 그러나 그러기에 가능한 단편인 것 같다. 한 직장에서 20년을 넘게 붙박혀 살아가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그 20년의 무게는 20년다운 것일까, 아니면 '아 어느새 20년이나 지났나'하며 깃털같이 가벼운 것일까. '신천옹'은 알바트로스라는 새의 한자 이름이다. 우리 말로는 '나그네새'라는 이름이 있다.
박민규씨의 작품 제목은 '龍'이라는 같은 글자 4개가 정사각형을 만들어내는 문자인데, 이걸 '말 많을 절'이라고 심사평에는 적혀 있는데, 한글2002에서 찾아봐도 그런 글자는 없다. 뭐지? 여튼, 박민규씨다운 작품인데 비꼬기로 작정하고 쓴 작품답게 킬킬 대는 유머가 각별하다. 지금 yes24에서 소설 연재도 하는 등 작품 무척 열심히 쓰고 계신 것 같은데 소설집이라도 한 권 나오면 좋겠다.
그리고 정지아씨의 '봄날 오후, 과부 셋'도 재밌었다. 70살 넘게 먹은 세 할머니의 어느 날 오후 풍경을 그린다. 세 할머니 모두 남편과 사별했다. 고등학교 적부터 친했던 세 명의 한국 여자들은 그들의 삶 자체로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과 굴곡을 새겨놓고 있다. 막 진지하고 우울한 이야기가 아니고, 제목처럼, 봄날 오후에 따뜻한 햇살 아래 세 할머니들의 웃음과 인생에 대한 통찰이 돋보인다.

후배한테 생일 선물로 받은 책이다. 지는 안 읽어 놓고 급히 서점 들러서 사왔댄다. ㅎㅎ 어쨌든, 참 고마운 일이다.

교수님은 혜초를 다 이해하지잖아요. 어머니를 아내로 삼는 나라에 대해서도 다 이해하시잖아요. 혹시라도 이해하지 못할까 봐 주석을 다 달아놓으시잖아요. 저는 제 여자친구가 왜 자살했는지도 이해하지 못하거든요. 그걸 이해하려고 소설까지 썼는데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거든요. 제 여자친구가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교수님이 펴낸 <<왕오천축국전>>이에요. 걔가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죽기 전에 그런 책을 읽었는지 그것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교수님은 다 아시잖아요. 고작 227행 뿐인 두루마리를 가지고 한 권의 책을 쓰시잖아요. (김연수,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63쪽)

심성이 여리고 착한 냐마는 모두에게 친절했고 그것을 호감으로 착각한 사내들이 날아들었다가 데는 것 같았다. 그러나 호의와 호감을 구분 못하는 남자들이 바보이지 냐마를 성토할 이유는 없었다. (전성태, 두번째 왈츠, 174쪽)

다섯 가지 즐거움(제3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2009)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김연수 (문학사상,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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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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