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빌려봤다. 사서 봤어야 되는데.. 나중에 기회 생기면 사야겠다. 이런 책은 사서 봐야된다!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았다. 70년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기 시작하고 딸들은 거의 다 도시의 공장에서 공순이로 살았던 시기. 최규석씨네 집은 마치 해방 이전의 농촌 풍경과 다를 것 없었다. 6남매의 막내로 살았던 작가는 큰 누나의 지원 덕택에 미술 학원을 다닐 수 있었고 서울의 대학에 입학해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지만 그를 제외한 나머지 자식들은 '어릴 적 행복한 추억이라곤 단 하나도 없는' 그런 삶을 살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굉장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제목과 표지 그림이었다. 정말 어울리는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소름돋을 정도로. 한국의 70대 이상 되는 노인들, 그들의 과거는 전쟁과 가난과 이데올로기와 학살과 산업화로 가득한 흥미진진한 역사책과도 같다. 그들이 만들어낸 한국은 여러모로 못난 점이 많았지만 다소 부유해진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 귀기울여주는 이 누가 있는가? 그나마 문학은 부지런히 그들의 삶을 조명해주었다. 박완서, 황석영, 김원일, 이문구 등 194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작가들이 그랬다. 그래서 그나마 나 같은 20대가 알 수 있는 게 있었다. 그렇지만 막상 당사자인 내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머니에게 그들의 과거에 대해 물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노인들과 함께 있으면 불편할 뿐이다. 장애라 생각될 정도의 극심한 단절.
이 책에서 그려낸 작가의 부모, 맏형, 누나들의 삶은 위의 작가들의 소설 속에서 그리고 신경숙의 '외딴 방'에서 잘 그려내고 있다. 그렇지만 이제 갓 서른 넘은 청년이 그것을 '만화'로 그려냈다는 게 남다르다. 최규석씨, 정말 힘내고 행복하게 살아가면 좋겠다.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없지만 내 마음 깊숙한 곳에는,
도시에서 태어나 유치원이나 피아노학원을 다녔고 초등학교 때 소풍을 엄마와 함께 가봤거나 생일파티란 걸 해본 사람들에 대한 피해의식, 분노, 경멸, 조소 등이 한데 뭉쳐진 자그마한 덩어리가 있다. 부모님이 종종 결혼을 재촉하는 요즘 이전에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어쩌면 존재하게 될지도 모를 내 자식을 상상하게 된다.

상상하다보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 아이의 부모는 모두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고
아버지는 화려하거나 부유하지 않아도 가끔 신문에 얼굴을 들이밀기도 하는 나름 예술가요
아버지의 친구라는 사람들 중에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인사들이 섞여 있어
그 아이는 그들을 삼촌이라 부르며 따르기도 할 것이다.
엄마가 할머니라 놀림 받지도 않을 것이고
친구들에게 제 부모나 집을 들킬까봐 숨죽일 일도 없을 것이고
부모는 학교 선생님과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할 것이며
어쩌면 그 교사는 제 아비의 만화를 인상 깊게 본 기억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간혹 아버지를 선생님 혹은 작가님 드물게는 화백님이라 부르는
번듯하게 입은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들 것이고 이런저런 행사에 엄마아빠 손을 잡고 참가하기도 하리라.
집에는 책도 있고 차도 있고 저만을 위한 방도 있으리라.
그리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지도 않을 것이고
고함을 치지도 술에 절어 살지도 않을 것이고 피를 묻히고 돌아오는 일도 없어서
아이는 아버지의 귀가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 아이의 환경이 부러운 것도 아니요,
고통 없는 인생이 없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소리도 아니다.
다만 그 아이가 제 환경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제 것으로 여기는,
그것이 세상의 원래 모습이라 생각하는,
타인의 물리적 비참함에 눈물을 흘릴 줄은 알아도 제 몸으로 느껴보지는 못한
해맑은 눈으로 지어 보일 그 웃음을 마주볼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144쪽)


대한민국 원주민
카테고리 만화
지은이 최규석 (창비,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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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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