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생일 선물로 받은 책. 음, 갑자기 궁금한 게 하나 생겼다. 국문과나 문창과나 한예종에 다니는 사람을 제외하고 곰곰히 생각해보자. 주변 지인 중에서 한달에 5권 이상 '소설'을 읽는 사람(장르 소설 빼고)이 몇 명이나 될까? 범위를 '책'으로 확대하면 자기계발서를 읽는 사람이 포함돼 숫자가 좀 늘어날테고, 혹은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애들은 교재를 포함해서 전공 관련한 책을 5권 정도는 볼 법 한데 '소설'은 참 적은 것 같다. 이기호, 김애란, 박민규 같은 제법 유명한 2000년대 작가들조차 평소 소설에 관심없는 사람에게는 아주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40년대에 태어난 원로 작가들이야 사회 전체에서 아직은 나름대로 원로 대접 받고 있긴 하다.
이 소설을 선물해준 친구는, 내 지인 중 '소설을 즐겨 읽는 5인'에 포함될 만하다. 은희경을 가장 좋아한다는 그는 김연수의 몇몇 작품을 읽어봤고 황석영의 옛 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했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아휴.

은희경씨의 소설은 처음 읽어본다. '마이너리그'가 무척 유명하던데 기회가 없었다. '새의 선물'은 지금까지 71쇄나 팔렸다. 대체 얼마나 벌었을까. 문학동네 참 장사 잘 한다.
흥미롭고 신선하게 읽었다. '이런 종류의 소설은 처음이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신선했다. 형식 면에서 아주 특별하다거나 소재가 기상천외한 건 아닌데 여튼 '이런 종류'라는 말이 어울린다. 소설은 12살 여자아이의 눈으로, 그리 길지 않은 시간과 좁은 소도시를 배경으로 삼아 주변에 흔히 있을법한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통찰한다. 이런 설정이라면 작위적으로 보일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 같은데, 어색한 구석이 거의 없다. 수작임이 틀림없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주인공 '진희'는 여전히 12살이다. 엄마가 자살했다는 점이 진희를 특별한 아이로 만들긴 했지만, 자상한 할머니와 천진난만한 이모 성실한 삼촌 넉넉한 집안 등 특별히 고통을 유발할만한 환경은 아닌 곳에서 자랐다. 진희네 집에 세들어 사는 1950년대 후반의 다양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사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아이들. 인간 일반이 보여주는 가식, 위선, 위악 등을 제법 설득력있게 비판한다.

나쁜 사람이 나쁜 일을 저지르면 이야깃거리일 뿐이지만 착한 사람이 나쁜 일을 저지르면 그것은 비극이 되기 때문이다. (227쪽)

이런 문장이 자주 등장한다. 인간을 일반화하는 문장들. 흔히 멋있다고 생각하는 문장, 격언이니 뭐니 하는 문장들은 대개 인간 다수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경험적 법칙이나 상식을 멋진 수사로 표현한 글귀인 것 같다. 이 소설에서도 역시 그런 문장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너무 자주 등장하면 읽는 사람 기분 나빠진다.
재밌게 읽었다. 그렇지만 은희경씨의 다른 작품을 찾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인연이 닿으면 언젠가 읽어보겠지만.

새의 선물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은희경 (문학동네,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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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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