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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가 눈을 들지 않는 틈을 이용해서 그녀의 모습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은밀하게 쳐다보았지만, 점점 더 과감해졌다. 그녀의 얼굴은 어제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보였다. 그 얼굴의 모든 것이 섬세하고 총명하며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흰색 커튼이 쳐진 창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햇살이 이 커튼을 통과하여 그녀의 부드럽고 숱이 많은 황금빛 머리카락과 천진한 목, 기울어진 어깨 그리고 부드럽고 평온한 가슴에 가벼운 빛을 뿌리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를 바라보는 사이에 그녀는 내게 정말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이 되었다! ...(중략)... '이렇게 나는 그녀 앞에 앉아 있다, 나는 그녀와 알게 되었다...... 행복하다, 세상에, 이런!' 나는 환희에 차, 하마터면 자리에서 일어날 뻔했다. 그렇지만 맛난 음식을 먹는 아이처럼 발만 조금 흔들었을 뿐이다. 47쪽
꽤 오래 전에 선물받은 책.(올해 1월!) 지금 생각해보면 네가 내게 이 책을 선물해주었다는 사실에는 미래를 내다 본 의미(혹은 전언) 같은 게 담겨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좀 간지러운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당시 네게 그런 마음이 없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말야.
"그 많은 단어들이 말들이 모두 무용지물이다..." 말을 처음 배우는 어린아이 같이, 네 앞에서 나는 더듬고 망설이다 겨우 내뱉는다. 그러고도 모자라 한 말을 다시 하고 고쳐 한다. 너를 앞에 두는 내 마음이 놀랍다. 이제껏 외로움과 슬픔과 괴로움과 실패에 대해 익숙했던 내 언어는 갈팡질팡하고 수줍다. 왜 이렇게 바보같담.
내 아는 이웃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더 잘 안다면 좋을텐데. 근데 그러기 전에 우리가 좀 더 같이, 매일, 함께 있으면 좋겠다. 내겐 이제 세상의 모든 사랑 이야기가 진지하게 참고하고 교훈으로 새겨 들을 경험담이 되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 근데 '첫사랑'이라고만 하기에는 좀 이상하다. 소년이 사랑에 빠지는 그 여성은 소년의 아버지와 사랑에 빠지고, 그런 소년은 자신의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는다. 소년이 사랑에 빠지는 그 여인 '지나이다'와 소년의 '아버지', 두 인물은 생생하고 매력적이다. 그들 사이의 관계는 심리학이 혹은 문학이 흥미로워 하며 주목하기에 충분한 광경이다. 있을 법하지 않아 보여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니까.(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일만 해도!) 19세기 초반 러시아 소설이라고 생각하고서 읽으면 그 간드러진 표현 하며 우울하고 기괴해 보이는 시골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소년의 행동과 감정에 나를 이입하기에는 그 시대적 격차가 주는 이질감이 상당해서 개인적으로 처음에는 조금 지루했었다.
의미심장한 책이자, (예전이라면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공감하며 읽은 작품이기도 하다. 뒷마무리가 아쉽지만, 배가 고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