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뒤 표지에는 수전 손택의 추천사가 실려 있다. 수전 손택... 얼마 전 읽은 제발트의 <이민자들>도 수전 손택이 찬사를 보낸 작품이었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한 할머니의 평가가 살아 있는 여느 평론가들의 말보다 더욱 믿음직하다.
내가 산 책은 아니다. 빌려 읽었다. 열 편의 단편은 모두 이백여쪽 분량이다. 상당히 짧다. 표제작 '어젯밤'을 20분 만에 다 읽었었다. 마음이 얻어맞는 느낌, 쿵 쿵 쿵 하는 느낌. 설마 설마 하는 느낌. '둔탁한 무언가로 심장을 얻어 맞는 느낌'. 누군가가 소설 하나 추천 해달라길래 이 책을 추천하며 덧붙인 감상이었다. 동기가 어떤 책이냐고 물어보았을 때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왜 있잖아, 잔인함, 눈에 보이는 그런 잔인함 말고 우리의 일상에 숨겨져 있을 수 있는 잔인함, 그런 걸 보여줘.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정리하지 않고 튀어 나온 말이었다.
코맥 매카시가 한국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와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잘 번역되고 있는 젊은 미국 작가들, 그들 보다 코맥 매카시니 제임스 설터니 하는 영감님들이야말로 미국 소설의 '대가'들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구나. 제임스 설터는 1925년 생, 이 소설집은 미국에서 2005년에 발표되었다. 여든살, 이라.
내가 산 책은 아니다. 빌려 읽었다. 열 편의 단편은 모두 이백여쪽 분량이다. 상당히 짧다. 표제작 '어젯밤'을 20분 만에 다 읽었었다. 마음이 얻어맞는 느낌, 쿵 쿵 쿵 하는 느낌. 설마 설마 하는 느낌. '둔탁한 무언가로 심장을 얻어 맞는 느낌'. 누군가가 소설 하나 추천 해달라길래 이 책을 추천하며 덧붙인 감상이었다. 동기가 어떤 책이냐고 물어보았을 때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왜 있잖아, 잔인함, 눈에 보이는 그런 잔인함 말고 우리의 일상에 숨겨져 있을 수 있는 잔인함, 그런 걸 보여줘.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정리하지 않고 튀어 나온 말이었다.
코맥 매카시가 한국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와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잘 번역되고 있는 젊은 미국 작가들, 그들 보다 코맥 매카시니 제임스 설터니 하는 영감님들이야말로 미국 소설의 '대가'들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구나. 제임스 설터는 1925년 생, 이 소설집은 미국에서 2005년에 발표되었다. 여든살, 이라.
그때 그는 뭔가 금이 가는 것을 느꼈다. 깊게 균열이 생긴 것을. 어떤 참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느꼈다. 129쪽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은, '귀고리'와 '방콕'. 굳이 내용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요약된 줄거리 읽을 시간에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한 두 시간, 그럼 다 읽는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뭔가 찝찝한 느낌. 한번 더 읽고 싶다(읽어야 된다, 가 아니라!), 사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저께 책을 빌려 주었더니 한 친구는 그날 밤 다 읽었다며 '어렵다'는 말 한 마디를 돌려 주었다. 아니 뭐가 어려워?
그는 미미했지만 심장이 박동을 하나 건너뛰는 걸 느꼈다. 163쪽
'심장이 박동을 하나 건너뛰'는 기분, 느낌. 지금까지 전혀 상상해본 적 없는 느낌이지만 문장으로 접하는 순간 순식간에 어떤 건지 알 듯 했다. 이 표현이 책 전체에 걸쳐 너댓번 정도 등장하는데 아주 신선했다. 시간과 공간이 생략되는, 지속되는 의식이 한 순간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 그 생략된 지점은 의식이 허물어지는 때였을까?
지금껏 읽은 그 모든 단편 소설과 다른 종류의 소설집이다. 경이로운 문장. 소설이 다루는 현실의 규모는 길어야 이틀이다. 작은 무대를 배경 삼아 많지 않은 등장 인물들이 등장하고 묘사보다는 대화가 주를 이룬다. 묘사들은 주구장창 길지 않다(지금 읽고 있는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와 비교하자니, 세상에!). 인물의 감정 뿐만 아니라 인물을 둘러싼 공기, 하늘, 그 장면 전부를 지배하는 절대적인 분위기를 한 문장 혹은 짧은 비유로 콱 하고 칼로 그 분위기의 핵심을 찔러버리듯 집어낸다.
아주 인상적인 책이었다. 잠깐 검색을 해보니, 출판계에서는 꽤 주목받은 책이라고도 한다. 앞으로 하나둘씩 설터의 책이 번역되어 나올 모양이다. 찾아 읽어야 겠다.
ps. 방금 검색을 하다 우연히 마음산책 출판사의 네이버 블로그에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 신형철씨가 한겨레21에 이 책에 관한 서평을 썼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금 막 읽기 직전이다. 기대된다. '그래,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신선하다... 돌이킬 수 없음. 진실. 파열의 선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