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혐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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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몰리에르 (지만지고전천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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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휴가 때, 그날 저녁 만나기로 한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냈었다. 충동적으로. 빌려주고 싶은 재밌는 책 있으면 가져와 달라고. 셋 중 둘만 책을 가져 왔고, 둘 다 공교롭게도 지만지에서 나온 책을 들고 왔다. 이 책은 그 중 하나다. 그 친구는 아마도 알세스트의 다음과 같은 성격을 조금 닮았다.

알세스트   ... 적어도 고상한 자존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싸구려 찬사를 절대 바라지 않아. 가장 영광스러운 칭찬이라 해도 그걸 누구나 받을 수 있다면 가치가 없는 것이야. ... 상대의 장단점도 구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용납할 수 없거든. 적어도 나는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고 싶어. ... 28쪽

1667년 프랑스에서 발표된 희곡이다. 당시 프랑스에서 꽤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1789년 이전 유럽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다. 1667년이면, 프랑스가 유럽에선 꽤 잘나가던 시절이었을 것 같은데... 주인공 '알세스트'는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귀족 사회에 염증을 느끼는, 스스로에게 진실됨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청년이다. 입에 발린 말을 늘어놓는 사람들을 경멸한다. 그는 결국 잘 나가는 귀족에게 소송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 이 연극에서 재밌는 구석은 다음과 같은 대목이다. 이 잘난 청년이, 바로 자신이 가장 경멸해야 마땅한 사람, 이 사람과는 저 사람을 험담하고 저 사람과는 이 사람을 험담하고 이 남자에게 당신이 가장 좋고 다른 모든 남자는 형편없다 말하고 저 남자에게도 똑같이 말하는, '셀리멘'이라는 여인을 사랑한다는 점이다.

알세스트   ...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내 약점을 인정하면 그녀가 내 마음에 든다는 사실이야. 셀리멘의 결점을 확인하고 비난도 해보았지만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어. 정말로 매력적인 그녀를 정말로 사랑하기에 세상의 악덕으로부터 그녀의 영혼을 정화시켜 주겠어. 40쪽

'그래 너 잘났다, 그럼 니가 사랑하는 이 여인의 형편없는 품성에 대해서는 어떤 변명을 늘어놓을 작정이냐?' 친구 '필랭트'의 질책에 알세스트가 대답하는 대목이다. 350여년 전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부분에서 현대 사회의 풍경에 어울리지만, 바로 이 대목만큼은 '세상에나'. 시대적 격차도 격차지만, 알세스트가 얼마나 자신만만한 인간인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350년 전이면 정말 오랜 옛날이다. 그런데 작중 인물들의 생각과 말이 그리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결혼'에 대한 부분, 필랭스와 엘리앙트의 결말이 특히 그랬다. 그치만 뭐, 애정 관계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걸 확신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사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은근히 재밌게 읽은 작품이었다. 고맙다 요환!

알세스트   누구나 자신의 문학적 소양을 인정받고 싶어 하므로 다른 사람의 작품을 평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어느 분이 언젠가 선생처럼 시를 썼기에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명예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글쓰기에 대한 근질근질한 욕구를 자제해야 하고 장난삼아 그것을 일반에 공개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도 억제하시라고요. 자기 작품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을 참지 못하면 남들에게 형편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으니까요. 49~50쪽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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