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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사무실 소파 밑에 짱박혀 있던 책이었는데! '프랑스' '소설' 책이어서 꺼냈을 뿐이었는데! 이렇게 유명한 책이었다니! 프랑스에선 200만부 이상 팔리며 113주동안 베스트셀러 였고, 유럽 각지와 미국에서도 엄청 팔렸댄다. <가디언>이 세계의 주요 몇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08년 가장 많이 읽힌 작가' 5위에 들었다고.(조앤 롤링은 9위.)
솔직히 말해 책을 읽는 동안, 난 이 책이 그 정도로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일단 표지 일러스트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소설책 표지에다 그림부터 때려박는 한국의 관행이 혐오스럽다!) 그리 유명하지 않은 한국의 한 출판사가 프랑스에서만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신예 작가의 신작을 야심차게 번역해냈다, '프랑스' 소설이라는 점에서 높이 쳐줄 만하다 - 상품에 값을 매기는 심정으로 서술하자면 이런 생각이었다.
텍스트만 봐도 프랑스 소설이라는 점을 잘 알 수 있다. 일단 <자기앞의 생>의 두 주인공과 비슷한 점이 많은 두 인물이 등장하고 - 뚱뚱한 아줌마와 영리한 꼬마 사이의 우정 - , 공간적 배경 - 고층 아파트와 계단들 - 또한 그렇다. 철학과 문학과 음악과 영화, 온갖 문화에 대한 이야기로 소설 전체가 풍성하다. 주제와 동떨어져 있는 곁가지로 이렇게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왠지 프랑스적이고, 실제로 프랑스 소설들이 대체로 그렇기도 한 것 같다.
다 읽고 나서 생각해 보니 유일하게 가능한 결말이다. 그렇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혹여나 소설을 읽어보실지도 모르니 밝히지 못하겠다. 에이 마음에 안 들어!
난 처음으로, 사람들을 살피고, 저 너머를 바라보는 어떤 사람을 만났다. ... 우리는 결코 우리가 확신하는 저 너머를 보지 않으며,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우리가 만남을 단념했다는 것, 이 영원한 거울들 속에서 우리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면서 자기 자신만을 만나려 한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걸 깨닫는다면, 만약 우리가 타인 속에서 결코 자신밖에 바라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사막 속에 홀로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린 미쳐버릴 것이다. 208쪽
우리는 아름다운 표현이나 문체를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문법을 공부하면, 언어의 아름다움을 다른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다. 문법을 공부한다는 것은 언어의 껍질을 벗기는 것이고, 언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바라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언어의 벌거벗은 몸을 보는 것이다. 229쪽
지성에는 뭔가 마력적인 것이 있다. 하지만 내겐 지성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지성인은 널리고 널렸다. ... 그러나 다수의 지성인들은 어떤 버그 같은 것을 갖고 있다. 그들은 지성을 하나의 목표로 생각한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 뿐이다. 똑똑해지는 것. 정말 멍청한 짓이다. 그리고 지성이 자신을 목적으로 삼을 때, 그것은 이상하게 작동한다. 241쪽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것은 자기의 영혼을 맡기는 것이 아니며, 내가 마누엘라를 친동생처럼 좋아할 수는 있지만 볼품없는 내 존재가 우주로부터 캐낸 약간의 의미와 감동을 그녀와 나눌 수는 없다. 329쪽
우리는 아름다운 표현이나 문체를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문법을 공부하면, 언어의 아름다움을 다른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다. 문법을 공부한다는 것은 언어의 껍질을 벗기는 것이고, 언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바라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언어의 벌거벗은 몸을 보는 것이다. 229쪽
지성에는 뭔가 마력적인 것이 있다. 하지만 내겐 지성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지성인은 널리고 널렸다. ... 그러나 다수의 지성인들은 어떤 버그 같은 것을 갖고 있다. 그들은 지성을 하나의 목표로 생각한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 뿐이다. 똑똑해지는 것. 정말 멍청한 짓이다. 그리고 지성이 자신을 목적으로 삼을 때, 그것은 이상하게 작동한다. 241쪽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것은 자기의 영혼을 맡기는 것이 아니며, 내가 마누엘라를 친동생처럼 좋아할 수는 있지만 볼품없는 내 존재가 우주로부터 캐낸 약간의 의미와 감동을 그녀와 나눌 수는 없다. 329쪽
'문화적으로 풍성한' 많은 이웃들에게는 동지를 만난 심정으로 반가운 소설일 것이다. 작품은 프랑스의 우리 동지들, 문화적으로 풍성하고 지성을 사랑하는 이웃들이 문화와 사회와 지성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리고 작가 본인이 밝혔듯, 뚱뚱하고 평범해 보이는 수위 아줌마가 스스로 쌓은 빛나는 지성에 대해 '문화는 나눔'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많은 시민들의 가슴은 뭉클해질 게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