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투를빈다김어준의정면돌파인생매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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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어준 (푸른숲,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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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류의 책 별로 안 읽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이런 류의 책이 다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들이란 대체로 '그래 너 잘났다', '그래서 대체 나보고 어쩌라고', '그래 알겠는데.. 근데 너 어디 사냐?' 등등이다.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공병호다.

그 시간에 고전 소설 한 권 읽는 게 백배 낫다고 생각한다. 애초 시작점부터 다른 남의 인생 매뉴얼 읽느니 상상도 해보지 못한 세계로 나를 인도해주는 소설 읽는 게 더 도움된다고 믿고 있다. 나보다 더 찌질한 인물도 있고, 이해못할 정도로 나쁜 놈도 있고, 나처럼 비겁한 놈도 있고, 나보다 훨씬 착한 놈도 있고, 하여튼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살고 있는 곳이 소설 아니겠나.

그래서 이 책도 처음에 사서 읽은 건 아니다. 학교 서점 갔다가 마침 편히 앉아 책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길래 신간 코너에 이 책을 골라서 읽기 시작했다. 읽어보니, 내가 생각했던 거랑은 다르다. 며칠 지나지 않아 당장 샀다. 중학교 시절 친구 소개로 들어가본 딴지일보의 '총수'라는 김어준씨, 욕 섞은 문체로 인터넷에서 장사하는 재미난 사람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근데 이 사람 삶이 나 정도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다이나믹하고 떳떳하다. 누군가가 인도해줘서 이 정도의 생각과 고민의 수준까지 다다른 게 아니고 순전히 자기 힘으로 혼자 여행하고 돈 벌고 이 일 저 일 하며 부딪히는동안 깨져본 사람이다.

대체로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다. 살면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문구를 사용하는 사람은 운동하는 사람들 빼고는 본 적 없는데 이 책에서 자주 접했다. 이 단어를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이고, 그게 뭔지 아는 사람이고, 최소한 그거 지키면서 사는 사람이면 꽤 괜찮은 사람인 게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주 멋진 문장도 간간이 있었다. 특히 '세상사 결국 다 행복하자는 수작 아니더냐'와 책 제목이기도 한 '건투를 빈다', 정말 명문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내가 보기에도 딱하다 싶은 질문에는 솔직하게 그의 처지를 불쌍하다고 말해준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도저히 답이 없다 싶은 문제는 그 상황을 탈출하는 수밖에 없겠다고 위로하기도 한다. 대체 질문한 이 인간의 정신 상태가 의심스럽다 싶을 때는 꿈 깨라, 너 자신부터 제대로 알아라, 식으로 타박을 준다. 그는 질문한 자의 처지를 심사숙고하고, 그가 알고 그가 경험하고 그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의 선택지를 두셋 정도 제시하고, 문제가 되는 상황 혹은 관계의 근본적인 부분, 바로 질문한 사람 자기 자신을 돌아보도록 충고한다. 솔직하되 자상하지는 않고, 핵심적이되 친절하게 우회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한다.

책 전체에서 자주 등장하고 그가 강조하는 게 '자기객관화'와 '여행 많이 다녀라'라고 볼 수 있겠다. 자기객관화 라는 게 다들 알고 있는 건데, 자기 자신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 객관적으로 자기의 능력은 어디까지이고 나는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고 나는 언제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등등을 아는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거의 누구나 배우게 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배우기가 힘들다. 첫째로 부모의 과잉 보호, 둘째로 수용소나 다름없는 공교육 체제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가 간곡히 강조하는 게 '여행 많이 다녀라'다. 돈 펑펑 쓰는 여행도 여행이지만 일단 많이 다니고 보고 듣고 만나보다보면 어느 순간 자기 자신을 깨는 순간이 온다는 건데. 내가 제대로 된 여행이라고는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책도 비슷한 효과를 줄 수 있을텐데 여행이 더 직접적이고 순간적으로 자아와 꽝 부딪히는 정도가 더 강렬할 것 같다.

나, 가족, 친구, 직장, 연애. 고민을 5개 분류로 나누고 사이사이에 더 하고 싶은 말을 따로 실었다. '나'와 '직장' 부분은 진지하게 읽었고 도움도 많이 얻었다. '가족'은 대체로 '사람들 진짜 어리다'라고 생각하면서 읽었고 '연애'는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초롱초롱대며 읽었다. 제일 재밌는 부분이기도 했다.

어줍잖은 위로 같은 거 안 한다. 본인도 알고 있다, 한국이 지랄 같은 나라 라는 거. 근데 어쨌든 여기서 지지고 볶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니 같이 고민하고, 아주 가끔 위로하고, 주저앉지 말고 하고 싶은 거 향해서 달려보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그의 거친 문장과 욕설에 눈살 찌푸리기보다 경험많은 동네 선배가 하는 이야기 듣는 것처럼 경청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내년 여름에는 꼭 여행간다'.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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