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남자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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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박완서 (현대문학,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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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참 예쁘다. 현대문학 창간50주년기념사업도서 로 나왔다고 한다. 한데 책 편집에서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딱 한 가지. 종이가 너무 굵다. 너무 굵다! 보통 책의 종이로 치면 지금 두께의 2/3까지 줄일 수 있다. 책이 두꺼워서 와 분량이 많은갑다 하고 쪽수를 확인했더니 300쪽, 보통의 소설 책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대체 무슨 심보로 이렇게 만들었을까? 실수였을까? 책 들고 다니는데 괜히 가방 무겁게 만들기나 하고.

한 후배가 빌려준 책이다. 그 후배 말이 참 감동적이다. "최근 어떤 책을 읽다가 고마쌤 생각이 났어요"라는 말에 어찌나 궁금하던지. 그 말을 듣고 3주 가까이 지난 후에야 책을 받았다. 나는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빌려줬다.

2004년에 초판을 찍어서 2007년 3월 2일까지 모두 초판 28쇄!!! 하여간 박완서씨라니까! 39, 혹은 마흔이 돼서야 '나목'이라는 장편소설로 등단한 이후 40여년동안 많은 작품을 발표해 왔는데 모든 작품이 골고루 사랑받아오지 않았을까? 작가로서 참 행복할 것이다.

박완서씨의 책은 '아주 오래된 농담'이라는 소설집 하나 읽은 적이 있는데 대충 1년 전이었다. 블로그에 리뷰를 올린 적이 있으니까. 그닥 인상깊은 책이 아니어서 얼마 전에 숨어있는책방에 팔았다. 그 책 한 권 읽고 나니 다른 작품들도 영 관심이 없었다. 왠지 자기계발서적과 헷갈리는 어느 책의 제목 때문에 더 그랬다.

'그 남자네 집'은 50년대 초 전쟁동안 이웃 살던 '그 남자'와의 연애, 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주인공의 결혼생활이 대략적인 내용이다. 물론 당시 사회상의 풍경도 빠질 수 없다. 다른 여러 작품과 마찬가지로 매우 자전적인 소설인 것 같다. 다른 작품에서 아버지와 오빠의 죽음과 어린 시절의 생활을 이미 다뤘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보다는 어쩌면 말랑말랑하다 할 수 있는 연애 이야기가 주 소재인 셈이다.

평소의 나 같았으면 아무래도 작품 속 주인공의 삶이 시대의 현실적인 아픔에서 조금은 비켜서 있기에 열심히 집중해서 읽진 않았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는, 주인공의 결혼 이후 친정 가족들도 시댁에서의 생활도 당시 만연한 가난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 요령껏 적응하며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후배의 말 때문에 개인적인 이유로 열심히 집중했다. 그리고는 쉽게 빠져들었다. 참 좋았다. 뭐랄까, 이청준씨의 '꽃 지고 강물 흘러'처럼 40여년 글을 써온 사람의 매끈매끈하고 착착 감기는 문장이 새삼 아름답게 느껴졌다. 또 막 고통스럽고 처절한 리얼리즘은 없더라도 쉬우면서도 포근하고 재밌었다. 경험한 바는 없지만 흔히 이야기하는 시골집 아랫목 뜨뜻한 방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듣는 옛날이야기 같은 포근함이 있었다.

그리고.. 이 작품을 발표했을 때 작가의 나이가 74살이다. 황석영씨보다도 10살 넘게 나이가 많다. 오랫동안 살아온 이의 삶에 대한 깨달음, 거창하게 말하면 은은한 통찰 같은 것이 곳곳에 담겨 있어서 자주 감탄했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게 그 자리에 그냥 있었던 적이 어디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서운하면서도 마음이 놓였다. (12쪽)

후배한테 참 고맙다. 아마도 '그 남자'와 내 이미지가 조금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말을 했을 것 같은데. 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런가?;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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