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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참 인상적이다. 위에 제목 배경이 빨간 색이고 그 아래 노란 표지는 덧씌운 거다. 이걸 벗기면 같은 그림이 검은색 선으로만 그려져 있고 원래 배경색인 핏빛 빨간색이 드러난다. 정말 핏빛이다. 그러고보니 좀 섬뜩하네. 몰랐는데. 으.
1930년대 초반 간도에서 일어난 '민생단 사건'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소설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역사적 사실을 알고 읽으면 좋다. 그런 의미에서 한홍구 교수님이 쓴 해제를 미리 읽어보기를 권한다. 소설 줄거리를 직접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는 '밤이 부른 노래'부터는 읽지 말고. 그 전까지만. 3장 정도 된다.
책을 읽으면서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삶을 다룬 님 웨일스의 '아리랑'이 자꾸 생각났다. 김산은 소설 속 인물들과 매우 유사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궁금하신 분들은 꼭 읽어보시길. 강추.
너무 서글프다. 다들 왜 그랬을까. 소설에서 사랑이라는 코드가 좀 강렬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은 조금 아쉬운 대목이다. 그렇지만 박두만, 이정희 같은 인물들의 삶보다는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과 또 다른 여인에 대한 사랑을 계기로 혁명에 뛰어든 김해연 같은 인물을 다루는 게 오히려 신선하기도 했다. 책을 읽는동안 자꾸 생각났던 또 다른 책은 손석춘씨의 '아름다운 집'. 이 책도 강추. 이 사람 소설 쓰는 솜씨도 장난 아니네, 감탄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가끔 후배들한테 사주기도 했다.
아직 신간이니 안 읽어본 분들을 위해 구절 메모는 하지 말고, 해제를 잠깐 옮겨본다.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는 1930년대 초반 동만주의 항일유격근거지에서 벌어진 '민생단 사건'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민생단 사건은 내 박사논문의 주제이기도 한데, 이게 어디 가서 쉽게 꺼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지 모를 얽히고설킨 복잡함과 혼돈이 민생단 사건의 특징이다. 이 참담한 사건을 통해 희생된 항일혁명가가 최소 500여 명, 일제의 자료조차 토벌에 의해 희생된 숫자보다 혁명조직 내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해서 죽고 죽인 숫자가 훨씬 더 많았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 참담한 민생단 사건을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김일성 등 이북의 지도부가 된 항일유격대 출신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중국 당국이 혁명에 승리한 직후, 왜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만들었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500여 명의 혁명가가 적이 아니라 동지의 손에 의해 죽어간 사건이라면 얼마나 기막힌 사연이 많았을까? 박사논문을 쓰는 내내, 이건 논문이 아니라 소설로 써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논문으로는 다 담을 길 없는 그 깊이를 모를 혼돈과 암흑의 심연 속에서 벌어진 민생단 사건에 빠져든 인간들의 이야기를 김연수는 처음으로 끌어안았다. (327쪽)
얼마나 팔릴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었으면 좋겠다. 뜻있는 청춘들이 그렇게 스러져간 역사가 한반도에는 너무 많다. 적어도 우리가 기억이라도 해줘야 되지 않을까.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단지 기억 이라도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삶이, 너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