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끝 새
이제 그곳에는 봉네가 없다
주유남해
여인
깊고 푸른 강
해는 뜨고 해는 지고
복국 끓이는 여자
그 사랑
청춘가를 불러요
꽃 피는 봄이 오면
표지가 마음에 드는 책.
얼마 전 '홍합'을 읽고 관심이 생겨 다른 책을 뒤적이다가 제목과 표지가 인상적이어서 이 책을 골랐다. 그의 책을 모두 살펴보면서 알게 된 건데 작가는 '섬'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자신이 섬에 살아서 그런가? '삶보다 더 진한 소설이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던 작가답게 자기가 보고 듣는 사람 사는 모양새들을 소설로 쓰는 것 같다.
마음에 드는 작품은 '여인', '깊고 푸른 강', '복국 끓이는 여자', '그 사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복국 끓이는 여자'.
이 단편은 시골 어느 시장 구석 자리에서 복국 장사를 하는 아줌마의 이야기다. 추근덕대는 단골 남자 손님이 귀찮기도 하지만 그나마 매상을 올려주는 귀한 손님이라 어쩌지도 못한다. 그런데 어느 날, 하얀 머리의 외국 여자가 문을 열며 쓰러진다. 서로 말도 통하지 않지만, 아줌마는 자기 딸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고, 러시아에서 왔다는 이 여인은 피아노를 전공했다고 손짓을 하고, 그렇게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예전에 에버랜드 무용수들이 임금 문제로 투쟁했던 소식이 어렴풋하게 기억나고, 타쥬 아저씨 생각도 나고, 우리 사회에서 러시아를 비롯한 중앙 아시아에서 온 여자들이 참 많을텐데 어떻게들 살고 있을지...
'깊고 푸른 강'은 한 집 건너 있을법한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지만 인상 깊은 구절도 있었다.
명애는 가슴 한구석이 내내 무거웠다. 세 자매 모두 같았다. 이건 초상집 주인으로 체면 문제이기도 했다. 초상은 모름지기 한쪽은 웃고 한쪽은 울고 해야 한다.
명애 자신도 다른 이들의 초상에를 가면 울어야 할 때는 울었고 일해야 할 때는 일했고 웃고 떠들어야 할 때는 그렇게 했다. 사는 게 그런 것이고 죽는 것 또한 그랬다. 죽음을 숭배하는 이상한 종교집단이 아닌 다음에야 석 달 열흘 울 일도 없고 미치지 않고서는 잔치 났다고 좋아할 까닭도 없었다. 가족이야 시름에 겨워 있기 마련이고 천수를 누리고 돌아간 호상이라 해도 이별의 아픔 때문에 그늘 벗어지지 않지만 마을 사람이야 어디 그런가. 품앗이로 찾아손 손은 이박 삼일 내리 슬퍼할 이유가 없었다. 그 긴 시간을 상제의 눈물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가는 게 훨씬 나았다. 울다 웃다가. 웃다 침울하다가. 그러다가 다시 웃어대는, 돌아간 자가 생전 그랬던 것처럼. ('깊고 푸른 강'에서, 151쪽)
장례식장에는 몇 번 가봤지만 발인을 지켜보고 묘지 터까지 직접 관을 들고 올라가본 적은 올 초가 처음이었다. 그 때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다. 일단 관을 들고 가면서 소리꾼의 타령 내용도 흥미로웠고(이런 식이다. 이 사람아, 가기 전에 나한테 돈 준다고 하지 않았냐, 봉투는 어디로 간거냐) 특히 관을 땅에 묻고 그 위 덮은 흙을 사람들이 밟아 다지는동안 가족들은 곡을 하는데 일하는 사람들은 웃으며 농담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관을 묻고 나자 가족들도 표정을 풀면서 일꾼들에게 음식을 대접했다.
한국의 장례 문화가 참 인류학적으로도 그렇고 문화적으로도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 사랑'은 한 목수가 부인을 사랑하는 이야기인데 이게 참 이상하다.
"그 사람이 그렇게 이쁠 수가 읎는 겨. 부부금실이라는 말 있잖어. 우리 부부는 특별히 금실 좋았던 적이 읎었구 그것이 별루 불편하지도 않았어. 그저 현장서 일하구 술이나 한잔 빨고 들어가믄 새끼들 잘 크구, 그냥 씻구, 생각나믄 끌어댕겨 눕히구... 강씨가 총각이기는 하지만 시 쓴다니께 다 이해할겨. 글 쓴다는 게 사람들 경험을 중심으루다가 하는 거 아녀?"
나는 달리 반론이 생각나지 않았다.
"근디 희한하게 죽고 나서 금실이 좋아졌단 말이여. 이게 말이 돼? 강씨, 이게 문학적으로다가 말이 되냐고."
"..."
"빌어먹을. 문학적으로다가 안 되믄 최소한 시적으로다가는 말이 되지 않겄냐 이 말이여, 내 말은."
나는 문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잘은 모르지만 문학적으로다가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마 없을 거라고 답했다. ('그 사랑'에서, 244쪽)
이럴 수 있을까? 심리학적으로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 어쨌든 내 생각에도 '문학적으로다가 말이 안 되는 것으 아마 없을 거' 같긴 하다. 두 인물이 주고 받는 대화가 참 재밌다. 문학적으로다가 말이 되냐, 는 질문이 참 의미심장한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