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큰롤보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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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미카엘 니에미 (낭기열라,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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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고잉'이라는 인디고 서원 잡지에서, 올해 초 개최한 북페어 행사 선정도서 목록에서 발견한 책 '로큰롤 보이즈'.
스웨덴 국민 1/8이 읽었다는, 스웨덴 역사를 통틀어 가장 많이 팔리고 읽힌 베스트셀러 라고 한다. 저자는 북극권에 가까운 자신의 고향이자 소설의 배경인 파얄라에서 단 하나 뿐인 서점을 운영하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부럽다.
소설은 묘사와 표현이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한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파얄라는 밤이면 오로라가 보이고 겨울이면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어찌보면 지구의 다른 지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환상적일 수밖에 없는 곳이다.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보면 '마술적 리얼리즘이 적절히 가미된' 과 같은 표현이 등장하는데, 한 밤 중 하늘에서 피어오르는 오로라 같은 게 존재하는 공간을 묘사하려면 당연히 '마술적'이면서 '리얼리즘'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잠시 동작을 멈추고 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내가 눈을 들었을 때 오로라가 찬란하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점점 자라며 부풀어오르는 커다란 초록빛 분수. 거품을 일으키며 넘실대는 광채의 물결. 빨간 도끼의 날랜 일격. 베인 틈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보랏빛 살. 빛은 점점 밝고 선명해졌다. 거품을 내는 소용돌이 속의 커다란 인화물의 파도. 한참 동안 나는 가만히 서서 장관을 즐겼다. 갑자기 저 위에서 마치 핀란드 군인합창단이 부르는 듯한 희미한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오로라의 목소리. 아니면 살을 에는 추위를 뚫고 들려온 택시의 엔진 소리였을까? 너무나 아름다워 나는 무릎을 꿇고 싶어졌다. 얼마나 화려하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작고 숫기 없으며 술까지 취한 토네달렌 소년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338쪽)

소설의 배경은 1960년대. 비포장 도로가 검은 기름의 아스팔트 도로로 바뀌는 시절의 파얄라 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삼는다. 주인공 마티와 친구 니알라가 로큰롤을 접하고 밴드를 만드는 게 소설의 큰 줄거리이지만, 각 장마다 토네달렌 지역 소년들을 다루는 에피소드가 많다. 술 마시기 경연대회, 공기총 전쟁, 마티와 니알라 자신들만의 비밀 언어인 줄 알았는데 처음 본 흑인의 말을 알아듣는 니알라를 통해 그것이 '에스페란토'였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두 아이가 처음 로큰롤을 접하게 되는 장면은 무척 흥미롭고, 전 세계의 독자들이 가장 흔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더니 쾅! 천둥소리가 났다. 화약통이 폭발해서 방을 날려버렸다. 산소가 모두 빨려 나갔고, 우리는 벽에 내동댕이쳐져 벽지에 짓눌려졌고, 집 전체가 무서운 속도로 빙글빙글 돌았다. 우리는 봉투에 붙은 우표처럼 벽에 딱 달라붙었다. 모든 피가 심장으로 몰려들어 붉은 덩어리로 뭉쳐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모든 게 방향을 바꾸었다. 급류가 손가락과 발가락으로 휘몰아쳤고, 우리 몸 구석구석으로 피가 붉게 뿜어져 나갔다. 우리가 대구처럼 눈을 뜬 채 입을 떡 벌릴 때까지.
영원처럼 긴 시간이 지난 뒤 회전이 멈췄다. 공기가 열쇠 구멍으로 다시 빨려 들어왔고, 우리는 조그맣고 축축한 무더기로 바닥에 철썩 떨어졌다.
Rock and Roll Music.
비틀스.
너무 좋아서 꿈만 같았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누워 있었다. 피를 흘리며. 얼이 빠진 채. 메아리치는 고요 속에서 행복하게. 잠시 뒤 내가 일어나서 음반을 다시 한 번 틀었다.
똑같은 일이 다시 일어났다. 믿을 수 없었다. 도저히 인간의 작품일 리가 없었다. (106쪽)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생략하는데, 바로 뒤에 보면 이런 부분이 나온다. 얼어붙은 강물이 다시 녹는 것을 바라보는 장면. 얼음 아래에서 불어난 물이 표면을 압박하고, 얼음이 둥글게 휘어지는 것 같고, 어느 순간, 굉음과 함께 표면이 깨지면서 얼음들이 서로 부딪히며 강물을 따라 흘러간다. 그것을 바라보던 마티가 강물을 가리키며 "로큰롤 뮤직!"이라고 외친다. 니알라는 안다. 그가 뭘 말하는지. 

얼마 전에 읽은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처럼, 이 책 역시 일종의 인류학적 보고서 로서도 큰 가치가 있다. 책에도 등장하듯이 파얄라는 토네달렌 이라는 스웨덴 북단에 속해 있는데, 주민들은 메엔키엘리 라는 핀란드 방언을 쓴다. "우리는 핀란드 사람도 아니면서 핀란드어로 말했고, 스웨덴 사람도 아니면서 스웨덴어로 말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언어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문화 혹은 인류학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토네달렌 고유의 문화를 생생하게 묘사하면서도, 지극히 마초적인 풍경, '크납수'(남자다움)에 대한 강력한 전통, 등도 공정하게 담아낸다.

하지만 가장 위험한 것, 아버지가 다른 무엇보다 앞서 경고해주고 싶은 것, 불쌍한 젊은이들 한 부대를 광기라는 안개 속에 통째로 밀어 넣는 그것은 바로 독서였다. 이 못마땅한 습관은 젊은 세대 사이에서 날로 번져 갔는데, 아버지는 내가 아직까지 그런 경향을 전혀 보이지 않아서 대단히 기쁘게 생각했다. 정신병원은 책을 너무 많이 읽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 매우 조심한다면, 백과사전이나 제품 설명서처럼 우리에게 뭔가 가르쳐줄 수 있는 책을 어쩌다가 들여다보는 것은 괜찮을 수도 있었다. 가장 위험한 책은 소설이었다. 그 안에서 모든 사색들이 유발되고 고무되었다. 빌어먹을! 그처럼 중독성 강하고 위험한 제품은 국가가 관리하는 전매상점에서만 취급해야 하고, 허가증이 있거나 성년이 된 자들에게만 지급하고 팔아야 했다. (259쪽)

그러나 아버지는 모르고 있었으리라. 그의 아들이 더 위험한 마약인 로큰롤을 접하고 있었음을. 훌륭한 책에는 거의 다 담겨 있는 유머와 위트도 책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레게르 선생님이 손가락 잘린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말 한마디 없이 엄지손가락을 흔들고서 무대 옆으로 사라졌다.
그것이 우리의 시작 신호였다.
"저슬랜미 힐써멉댓 롸캔놀 무직!"
... "롸캔놀 무직! 이퓨 워너 땐스 윈미!" (287쪽)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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